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도스토옙스키, 지옥으로 추락하는 이들을 위한 신학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 | 손성현 역 | 포이에마 | 188쪽 | 12,800원

도스토옙스키는 신학자가 아니다. 하지만 그의 소설을 읽노라면, 어떤 신학 책보다 인간의 실존을 신학적으로 탁월하게 묘사했음을 경험한다.

그의 글은 그 자체로 신학적 완성도를 가졌다. 뿐만 아니라 위대한 신학자들이 그의 글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소설은 신학적 영감과 통찰을 자극했다. 하지만 방대한 그의 소설에서 명료하게 그의 신학을 제시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다.

에두아르드 투르나이젠(Eduard Thurneysen, 1888-1974)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신학적으로 탁월하게 해석해 냈다. 그는 스위스의 개신교 목사이자 신학자다. 아마 그는 칼 바르트(Karl Barth, 1886-1968)의 친구로 더 잘 알려져 있을 것이다.

하지만 투르나이젠의 이 작품이 없었다면, 바르트의 위대한 작품(자유주의자들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이었던 <로마서> 2판은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1·2차 세계대전은 당시 유럽의 정치와 경제, 사회 전반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는 신학적으로도 매우 큰 파급을 가져왔다.

당시 신학을 주도했던 자유주의는 인간의 종교심과 문화, 역사와 윤리로 인해 세계의 역사는 계속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었다.

하지만 세계대전의 여파와 자유주의자 스승들의 실망스러운 행동과 선택(이들은 적극적으로 히틀러를 옹호하며 지지했고 힘을 보태었다)은 새로운 언어와 논리가 필요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내 주었다.

투르나이젠은 바르트와 함께 인간으로부터의 신학이 아닌 하나님으로부터의 신학에 관심을 기울였고, 하나님의 은혜와 말씀으로부터 시작되는 신학을 전개하기에 이르었다.

그러한 변증법적 신학을 전개함에 있어 결정적 통찰을 준 것이 바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이다. 투르나이젠과 바르트는 이 시기에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만나게 됐고, 그의 넓고 깊은 문학 세계를 통해 ‘타락 가운데 빠져들어가는 인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됐다.

투르나이젠의 도스토옙스키 문학에 대한 신학적 해석은 그의 강연을 다듬어서 나온 단행본이다. 그렇기에 이 책은 강연에서의 열정이 느껴진다.

짧지만 강력한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문학을 다층적으로 이해하고 깊이 연구하여 나온 결과물이다. 이 얇은 책에 담겨 있는 저자의 통찰과 이해는 도스토옙스키의 문학만큼이나 예리하고 신선하며, 풍성하다.

사일런스
▲영화 <사일런스>에서 배교 때문에 고뇌하는 로드리게스(왼쪽)와 그를 설득하는 페레이라 신부. (스틸컷은 본 서평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인간의 실존에 대한 도스토옙스키의 질문과 해답을 적극적으로 모색한다. 또한 도스토옙스키의 작품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들을 통해 기묘한 인간들의 다양성을 드러낸다.

인간의 실존에서 시작하여 결국 도스토옙스키가 그리는 하나님에 대한 이미지와 신학적 해석까지 나아간다. 특히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가장 유명한 대심문관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대목은 매우 흥미롭다.

대심문관 이야기는 다시 한 번 인간의 종교와 교회 안에 숨어 있는 깊은 불신앙을, 하나님을 향한 반역의 실체를 폭로한다. 그런데 이러한 폭로의 목적은 그 반역을 옹호하고 합리화하고 긍정하는 것이다(115쪽).

이 책을 읽으려면, 먼저 도스토옙스키의 소설을 읽어야 한다. 물론 이 책만 읽더라도 날카롭고 명료한 신학의 정수를 맛볼 수 있지만, 더욱 풍성하게 이 글을 음미하고 싶다면 먼저 읽어야 할 것이다.

이 책의 인용빈도와 중요도를 생각했을 때, 최소한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읽어야 한다. 이 책을 읽으면, 많은 부분이 더욱 풍성하게 이해된다.

『죄와 벌』을 함께 읽으면 더 좋고, 『백치』를 곁들인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이 세 소설을 중심으로 하여 논리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를 좋아하는 독자들이라면 한 번은 꼭 읽어보아야 할 책인 것 같다.

모중현
크리스찬북뉴스 명예편집위원, 열방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