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조성래 목사(한국재난구호 이사장, 나눔인교회 담임).
기독교의 교리 중 가장 큰 핵심은 용서입니다. 죄인이 돌아와 회개를 하면 이유를 묻지 않고 무조건 용서하는 것입니다.

“회개”란 자신이 무엇을 잘못했는가를 먼저 깨닫는 것부터 시작합니다. 즉, 자신이 무엇을 잘못 했는가에 대한 철저한 반성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깨달음이 없으면 진정한 회개도 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 말을 합니다. “저 사람은 너무나 뻔뻔해.” 이 말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반성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만약 기독교인들이 이런 말을 듣고 산다면 문제가 있는 신자입니다. 아직 회개가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신자일 것입니다.

첫 번째 회개는 본질적 회개입니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롬 5:18~19). 사람들에게 “당신은 죄인입니다”라고 말을 하면 대다수가 거부 반응을 합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죄인이란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많은 어린이들을 모아놓고 죄를 설명하기 위해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사과가 열렸기 때문에 사과나무입니까?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열리는 것입니까?” 대다수 어린이들이 후자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의 본질을 설명하셨습니다. “또 가라사대 사람에게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속에서 곧 사람의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 곧 음란과 도적질과 살인과 간음과 탐욕과 악독과 속임과 음탕과 흘기는 눈과 훼방과 교만과 광패니 이 모든 악한 것이 다 속에서 나와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막 7:20~23)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가 저절로 열매를 맺듯이 사람은 누구나 죄 공장입니다. 아무리 선행을 하고 수행으로 해도, 사람의 본질 속에 죄의 유전자(성품)는 인간 스스로가 절대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문제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많은 설명이 필요합니다. 오늘은 이 문제를 다루지 않겠습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하나님백성들의 회개란 무엇인가? 이 문제는 신앙인들에게 매우 부분용입니다. 많은 분들이 천국은 믿음으로 축복은 행위로란 말을 많이 합니다. 말은 맞는 듯싶습니다. 그러나 구원의 믿음과 행위는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입니다. 즉 대속의 은혜를 진심으로 깨닫고 발견한 사람은 죄를 저절로 버리게 됩니다. “죄를 짓는 자는 마귀에게 속하나니 마귀는 처음부터 범죄함이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신 것은 마귀의 일을 멸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요일 3:8~9)

“회개”란 앞서 언급한 것처럼 죄에 대한 철저한 깨달음과 반성, 뉘우침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회개”란 다시는 반복적인 죄를 짓지 않겠습니다는 고백입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오해하고 있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 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마 18:21~22)

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짓고 내 스스로가 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죄는 피해를 준 상대가 있습니다. 그 상대자에게 용서를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이 부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하나님께 잘못한 죄는 하나님으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반면에 사람에게 잘못한 죄는 당사자에게 용서를 받는 것이 “회개”입니다. 마태복음 18:21~22의 말씀도 그런 내용입니다.

죄는 모든 복을 가로막는 주범입니다.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1~2) 분명히 구원은 믿음으로 받게 됩니다. 그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람과 관계도 좋아야 합니다. 과거의 사람들과 막혀 있던 담도 모두 헐어야 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질문을 했듯이 상대가 용서를 하고, 하지 않는 것은 내 책임이 아닙니다. 말이나 행위로 사람들에게 피해를 준 것이 있다면 상대에게 용서를 빌고(받고), 그런 잘못을 버리는 것이 진정한 회개입니다.

여호와는 하나님 백성들의 목자입니다. 나는 그분이 기르는 양입니다. 그러므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성도는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하나님 백성으로서 나에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를 깨닫고 의무를 지키면 내 권리(이 땅의 삶)는 내 주변에 저절로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 의무는 거룩한 삶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빛과 소금입니다. 이런 백성들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복음이 전해질 것입니다. “선교”는 어디로 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사는 그곳과 내가 서 있는 장소가 바로 선교 장소입니다. 어디로 가는 것은 사명입니다. 사명보다 더 종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사느냐 입니다. “회개”란 돌이키는 것입니다. 옛 사람이 새 사람으로 삶을 바꾸고 돌이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