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에게 박원순은 친구이지만, 피해자에게는 가해자
그들에게 박원순은 영웅이지만, 국민들에게 수사 대상
이것이 감출 수 없는 진실, 죽음으로 가려져서는 안 돼

교시협 2020
▲인권변호사로서, 성공한 정치인으로서 대중을 모순과 반전의 긴장감 속으로 몰아넣었던 박원순 서울시장. ⓒ크투 DB
가룟 유다는 은 삼십에 예수를 팔았다. 예수가 생각했던 스승이 아니었기 때문일까. 그저 돈이 좋았기 때문일까. 마지막 밤, 유다는 입맞춤으로 예수를 넘겼다.

처음에는 좋았다. 내 미래를 지켰다는 생각에, 쉽게 벌어들인 돈 생각에. 하지만 예수의 고통을 볼수록 죄책감이 밀려왔다. 그와 함께 보냈던 시간들이 마음을 날카롭게 찔렀다. 십자가 위에서 숨을 거둔 예수의 모습을 대면한 순간, 유다는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조금씩 밀려들던 죄책감은 이제 그를 뒤덮었다. 뭐라도 하지 않으면 온전한 정신으로 버틸 수 없었다. 탁자에 놓인 은 삼십을 볼 때마다, 예수의 기억들이 뇌리를 헤집는다. 마지막 정신을 부여잡고 절벽에 오른다. 그렇게 유다는 죄의 삯을 치른다.

유다는 회개하지 않았다. 편해지고 싶었다. 자살은 회개가 아니다. 편해지고 싶은 마음의 결과다. 병든 마음이 자신을 지키려고 선택하는 왜곡된 방법이다. 자살은 아픈 자기 사랑이다.

회개는 자기 부인이다.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한다. 내가 편해지는 것보다, 상대의 마음을 위해 용서를 구한다. 나로 인해 상처받은 그 사람의 마음을 헤아린다. ‘나’가 사라져야 상대가 보인다.

최근 박원순 시장이 안타까운 결정을 했다. 그 또한 유다와 같은 심정이지 않았을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 자부했다. 시장이 되기 전부터 여성 인권을 위해 노력했다. ‘서울대 조교 성희롱 사건’ 승소는 그를 인권변호사로 만들어 주었다. 그에게 인권은 구원이었다. 박원순의 행보에는 늘 ‘인권’이 함께했다.

그의 전 비서 A씨는 그를 성추행 혐의로 고소했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지만, 그는 ‘인권’을 외면했다. 함께한 비서에게는 그가 늘 싸우던 혐오의 대상이 되었다. 가해자였다.

가해자가 된 자신을 보며 죄책감에 빠지지 않았을까. 잠시 잠깐의 쾌락에 눈 멀었던 자신이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여성인권으로 쌓아온 자신의 명성이 스스로를 옭아매지 않았을까. 견딜 수 없는 죄책감이 마지막을 선택하게 하지 않았을까.

자살은 회개가 아니다. 피해자는 아무것도 용서하지 못했다. 아무 위로도 받지 못했다. 오히려 비난받고 있다. 수사도 제대로 진행하지 못해서, 확실한 피해자가 맞는지조차 의심받고 있다.

성추행 의혹과는 상관없이 그의 장례는 서울특별시장(葬)으로 결정됐다. 그녀는 박원순의 삶으로 고통 받았고, 죽음으로 고통받고 있다.

대한민국의 로맨티스트들은 이미 죽음이 가져오는 슬픔에 잠겼다. 그래서 그를 고이 보내고 싶기만 하다. 성대하고 아름답게 그를 보내고 싶다.

그들에게 박원순은 친구이지만, 피해자에게는 가해자다. 그들에게 박원순은 영웅이지만, 국민들에게는 수사 대상이다. 이것이 진실이다. 죽음으로 진실이 가려져서는 안 된다.

장례위원회는 죽음의 무거움을 앞세워, 의혹을 멈춰달라고 말한다. 추측하지 말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우리는 알아야겠다. 피해자가 무슨 일을 당했고, 그가 어떤 죄를 지었는지. 그가 정부 장(葬)을 치를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눅 12:2)”.

진실은 감춰지지 않는다. 조용한 마지막이 고인에 대한 배려가 될 것이다. 부관참시(剖棺斬屍)의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의 마지막 가는 길은 가족들만 지키게 하라.

조성호
▲조성호 청년.
조성호 (1989년생)
침례신학대학원 재학
거룩한대한민국네트워크 회원
(사)대한민국 통일건국회 청년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