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북한 군인 구타
▲탈북했다가 붙잡혀 와 북한 군인에게 구타당하는 여성. ⓒ자유북한방송

“나는 지금 누굴 위해 기도할 처지가 아닙니다. 당장 내 삶도 너무 힘들어요. 내 삶부터 여유를 찾으면 그때 저도 북한을 위해 기도할게요.”

과거 한 청년에게 북한을 위해 기도해달라고 요청했을 때 들었던 답변이다. 그 말을 듣자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런 상황에 있는 크리스천에게는 북한을 위한다든지 다음 세대를 위한다든지 등의 타인을 위한 기도를 요청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그 청년과 다시 대화한다면 이렇게 권면하고 싶다. “그런 이유라면 더욱이 북한을 위해 기도하셔야 합니다. 북한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한다면, 당신의 삶의 문제도 자연히 해결될 거예요.”

오늘 이 순간에도 북한에서는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수령님의 액자에 먼지가 쌓여있다는 이유로, 범죄자의 자녀로 태어났다는 이유로, 정치범수용소에 수감되어 죽어가는 이들이 있다.

굶어 죽고, 맞아 죽고, 강제 노동 중 사고로 죽고, 수십 가지의 질병에 걸려 죽고, 생체 실험을 당하다 죽고, 사냥개에게 잡아먹혀 죽고, 자살하여 죽는다. 죽고 또 죽는다. 시체가 되어서도 또 돌팔매질당한다.

죽음의 소식이 놀랍지 않은 곳. 시체 썩는 냄새가 익숙해지는 곳. 그런 지옥이 50km 떨어진 저 땅에 존재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된 후에도, 여전히 자신의 삶에 대해 연민하고 있을 수 있을까?

북한을 위해 기도할 때, 북한에 대해 알게 될 때, 개인의 삶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 자신이 그동안 고난이라고 여겼던 것이 그저 철없는 어린 아이의 투정 수준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너무나 많은 것을 누리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많이 힘들어 하고 있었다는 사실, 너무나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너무나 자신을 연민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시인하게 된다.

북한에 태어나지 않은 것에 감사했다가, 남한에 태어난 자로서의 무거운 책무를 느끼기도 한다. 죽어있던 양심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하나님께 북한의 비극을 멈추지 않으시는 이유를 묻기도, 따지기도 한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마태복음 22장 39절)”.

그렇다. 예수님은 자기 몸과 같이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셨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기 자신만을 위해서 살아갈 수 없다!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한다.

오늘 우리 곁에 있는 가장 비참한 이웃, 북한 주민들 말이다. 이웃은 강도를 만나 죽을 위기의 상황인데 내 할 일이 더 급하다며 못 본 체 할 수 없지 않은가? 이제 “나에게 복을 주소서!”라는 철없는 기도는 그만두고 “북한에 자유를 주소서!”라고 기도해야 한다.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2장 20-21절)”.

대한민국에서 북한의 자유를 외치는 것은 만만치 않다. 그 외침을 싫어하는 북한 정권의 지지자가 참 많기 때문이다. 만만치 않은 정도가 아니라 고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위해 부르심을 받았다. 남의 일에 신경 끄고 자기를 위해서만 살라고 이 세상에 부름 받은 것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 목숨까지 버리셨던 예수님이 지금 우리 안에 계시기에, 우리도 이웃을 위해서 편안한 삶을 포기할 수 있다.

북한의 자유를 외치는 삶. 거기엔 비록 고난이 있고 눈물이 있지만, 그 분의 자취를 따라가는 삶에야말로 참된 만족이 있고 소망이 있으리라.

한바다
▲한바다 청년.
한바다(1994년생)
백석대학교 물리치료학과 졸업
대한민국 역사지킴이 리박스쿨 연구원
트루스포럼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