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과 이데올로기
자본과 이데올로기

토마 피케티 | 안준범 역 | 문학동네 | 1,297쪽 | 38,000원

‘모든 사람 평등’ 美 독립선언문 작성한 제퍼슨
200명 넘는 흑인 노예 소유, 노예 여성 범하기도
200년 후.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 죽음에 분노

미국의 독립선언문에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며, 동일한 자유를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자명한 진리로 인정한다.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태어났고, 창조주는 양도할 수 없는 일정한 권리를 인간에게 부여했으며, 생명권과 자유권과 행복 추구권은 이러한 권리에 속한다.”

이 독립선언문의 초안을 작성한 사람은 토머스 제퍼슨이다. 그런데 정작 토머스 제퍼슨에게는 200명 넘는 흑인 노예가 있었다. 심지어 그는 흑인 노예 여성을 범해서 아이를 낳기도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모든 사람의 평등과 권리를 이야기 하는 독립선언문을 작성했지만, 그가 말하는 ‘모든 사람’에는 흑인이 포함되지 않았다.

토머스 제퍼슨은 피부색이 검다는 이유로, 흑인에게는 평등, 생명권, 행복추구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그가 특별히 악한 사람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1800년대 미국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생각일 뿐이다.

그로부터 200년이 넘는 시간이 흐른 지금. 흑인 청년 ‘조지 플로이드(George Floyd)’의 죽음에 전 미국이 분노하고 있다. “Black Lives Matte(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라는 구호가 전국 각지에서 외쳐지고 있다.

200년 시간동안 많은 것이 달라졌다. 이전에는 시위는커녕 생명의 자유도 없었던 흑인. 지금은 흑인들에게 투표권이 생겼고, 흑인 대통령도 나왔다. 흑인 여성이 가장 존경받는 방송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여전히 차별은 남아 있지만 1800년대와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다.

200년 동안 무엇이 왜 어떻게 달라졌을까
흑인은 달라지지 않아, 사람들 생각 달라져
이데올로기가 차별 정당하게 만든다 주장

왜 이렇게 달라졌을까? 200년 동안 흑인들이 진화(?)했을까? 흑인들에게 200년 전에 없던 능력이 생겼고, 몸에 특별한 변화가 생겼을까? 그렇지 않다.

흑인은 달라지지 않았다. 대신 사람들의 생각이 달라졌다. 사람들의 가치관이 달라졌고, 이데올로기가 달라졌다.

노예제도를 인정하는 이데올로기 속에 살면 흑인 차별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 속에서는 노예 차별이 정당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자본과 이데올로기(Capital et idéologie)> 의 저자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는 <자본과 이데올로기>의 서문에서 이데올로기가 차별을 정당하게 만든다고 말한다.

“어느 인간 사회든 저마다의 불평등에 합당한 근거를 대야만 한다. 그러지 못할 때는 정치사회적 구성물 전체가 붕괴될 위험에 처한다. 그래서 어느 시대든 불평등이 존재하고 응당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불평등을 정당화하고 구조화하는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낸다.”

그의 말처럼 어느 사회든지 불평등은 존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의 불평등이 있다. 돈이 많은 사람과 돈이 적은 사람. 결코 똑같지 않다.

그러나 이 상황 자체를 불평등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본주의 이데올로기는 ‘사유 재산’을 인정하고, 노력과 성과에 따라 다른 대가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같은 회사에서 사장이 받는 월급과 일용직 근로자가 받는 월급은 달라도 된다고 생각한다. 아니 달라야 공평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화 <기생충>에 나오는 이선균의 집과 송강호의 집이 다르고 생활이 달라도, 재산에 따른 차이라고 생각하지 차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불평등을 납득하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조선시대 신분제를 생각해보면 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양반과 천민의 차별을 문제 삼지 않는다. 오히려 똑같이 대접하면 문제가 된다. 너무 불평등한 사회이지만, 사람들이 이 불평등을 쉽게 받아들인다. 그 사회가 신분제 사회 이데올로기이기 때문이다.

2013년 《21세기 자본(Capital in the Twenty-First Century)》으로 전 세계에 주목을 받은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그가 2019년에 <자본과 이데올로기>라는 책을 내서 다시 한 번 전 세계에 주목을 받았다.

앞서 책의 서론을 인용한 것처럼, 이 책은 불평등과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이야기한다. 어떤 사람은 많은 자본(재산)을 가지고 살고, 어떤 이들은 적은 자본(재산)을 가지고 사는 것이 과연 공평한가?

과연 이러한 차이가 개인의 능력 때문에 발생한 것이 맞는가? 사회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닌가?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 이데올로기 때문에 잘못된 불평등을 자신도 모르게 납득하고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문제에 대한 생각과 답을 주는 책이다.

토마 피케티
▲토마 피케티. ⓒ유튜브
1부, 신분제 사회가 끝나가는 과정
2부, 노예제와 식민사회 종결 과정
3부, 불평등 해소와 경제적 불평등
4부, 사회적 불평등, 투표로 개선을

이 책은 서론과 결론을 빼고 총 4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역사에서의 불평등주의체제들’에서는 신분제 사회가 끝나는 과정에 대해 살펴본다. 귀족이라는 신분이 사라지면서 정치적 평등은 이루었지만, 여전히 귀족들이 가지고 있던 재산이 유지되면서 경제적 불평등은 이어지고 있다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2부 ‘노예제사회와 식민사회’에서는 노예제도가 폐지되는 과정과 식민사회가 끝나는 과정을 설명한다. 이 과정 속에서 노예를 소유했던 이들이 어떻게 자연스럽게 부자가 되는지 보여주며, 식민지 과정에서 어떻게 착취가 이어지는지를 알려준다.

3부 ‘20세기의 거대한 전환’에서는 불평등이 해소되어진 시기에 대해서 다룬다. 신분제와 노예제도가 끝나던 시대에 오히려 경제적 불평등은 극대화됐다.

이러한 불평등이 1차 세계대전 이후 줄어들기 시작했다. 각 나라에서 자본에 세금을 걷기 시작했으며 강력한 누진세를 도입하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는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3부에서 설명한다.

4부 ‘정치적 갈등의 차원들을 다시 사유하기’에서는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왜 불평등을 줄이기 어려운지에 대해 설명한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를 따르는 나라에서는 모든 사람이 선거에서 1표를 행사한다. 따라서 사회적 불평등을 투표를 통해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경제적 하위 계층들이 불평등을 줄이려는 정당에 잘 투표하지 않는다. 4부에서는 그 이유를 설명한다.

4부 마지막 장인 ‘제17장 21세기 참여사회주의를 위한 요소들’에서는 심화된 경제적 불평들을 해소할 수 있는 방법들을 제시한다.

이 책의 장점 세 가지
1. 이데올로기를 의심하게 한다
2. 현재, 과거, 미래 역사적 접근
3. 경제적 불평등 이야기로 공감

이 책의 장점은 세 가지다. 첫 번째, 이데올로기를 의심할 수 있게 한다. 토머스 제퍼슨은 인권을 생각하면서도 흑인에 대한 인권은 놓쳤다.

노예제 이데올로기 안에 있었기 때문이다. 토머스 제퍼슨처럼 사람들은 자신이 속한 사회의 가치관을 의심하지 않는다. 명백히 잘못된 문제점도 개선하려고 생각하지 못한다.

심지어 고치려는 시도가 잘못됐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내가 속한 이데올로기를 다시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두 번째는 역사적 접근이다. 현재는 과거의 연속이다. 현재를 바르게 이해하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 또한 미래에 대한 길을 제시하려면 현재를 객관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이 책의 연구대상은 불평등주의체제의 역사와 미래다’라고 분명히 말한다.

그래서 이 책이 가지는 의미는 크다. 경제적 불평등을 현재의 관점에서만 말하지 않고 과거에서부터 설명한다. 귀족 특권층 시대 때부터 시작된 불평등이 어떻게 오늘날 까지 이어졌는지 보여준다.

그리고 앞으로 불평등을 줄이기 위해 어떤 대안이 필요한지 답을 제안한다.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흐름을 설명하면서 제시하는 답이기에 그 무게가 결코 가볍지 않다.

마지막 세 번째는 공감이다. 전작 <21세기 자본>에서부터 저자는 경제적 불평등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전작에 대한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이러한 반응은 저자 자신도 생각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21세기 자본>을 출간하고 이렇게 말했다. “자고 일어나니 유명해져 있었다.” 사람들이 폭발적인 관심을 가질 만큼 시대를 읽은 책이고, 사람들에게 공감이 되는 내용이다. 그만큼 이 시대는 불평등에 대한 해결책을 기다리고 있다.

<자본과 이데올로기>는 이러한 기대에 저자가 답하는 책이다. 그런 측면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답을 경제학자가 어떻게 제안하고 있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기독교인들이 이 책 읽어야 하는 이유
불평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기 때문
사회적 약자 돌아보는 것이 신앙생활

기독교인들에게 이 책을 읽기를 권한다. 이 책이 불평등에 대한 대안을 제시한 책이기 때문이다. 불평등 해소는 기독교인들의 사명이다. 물론 제도 개선이나, 정치적 노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삶을 말한다.

예수님은 작은 자 하나를 섬긴 것이 예수님을 섬긴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말은 사회적 약자들을 돌아보는 것이 곧 신앙생활이라는 의미다. 성도에게 나눔은 선택이 아니라 사명이다. 그런 측면에서 경제학자가 말하는 사회적 나눔은 무엇인지, 그의 답에 귀 기울여 보는 것이 필요하다.

*한 번쯤 읽어 보면 좋은 책이지만, 현실은 읽기 힘든 책이다. 토마 피케티의 전작 《21세기 자본》의 경우 세계 30여 개국에 번역되어 200만부 이상 팔렸다. 그런데 정작 다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전체 800페이지 중에서 독자들이 26쪽을 읽었다고 한다. 호킹 지수가 2.4%로 호킹 지수 측정 이례 역사상 가장 낮은 지수를 기록했다.

(*호킹 지수: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책이 많이 팔렸다. 그러나 물리학 자체가 어려우니, 실제로 그 책을 읽은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서 책이 많이 팔리기는 하지만 읽히지 않는 정도를 나타내는 지수를 측정해서 호킹 지수라고 한다. 이 지수가 낮을수록 많이 읽지 않은 책이 된다. 스티븐 호킹의 <시간의 역사>는 호킹지수가 6.6%다.)

《21세기 자본》은 800쪽에 호킹 지수가 2.4%인데, 이번에 출간된 <자본과 이데올로기> 한글판은 1,300페이지(1297쪽)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서평은 앞으로 두 번 더 연재할 예정이다. 다음 번에는 1부와 2부를 중심으로, 마지막은 3부와 4부를 중심으로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살펴볼 것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