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

J. 대니얼 헤이즈 | 홍수연 역 | 새물결플러스 | 256쪽 | 16,000원

성도에게 가장 큰 기쁨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임재의 은혜일 것이다. 그 임재를 하나님이 어떻게 인간에게 약속하고 이루어 가시는지 성경 전체를 통해 살펴보는 것은 대단히 유익한 작업이다.

이 책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역사가 시간을 통해 흘러가며, 공간 속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하나님의 우리와 함께 하시려는 뜨거운 열정을 볼 수 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와 함께 거니시며 그들과 친밀하게 대화를 나누셨다. 에덴동산을 ‘잠근 동산’이라고도 한다. 부부가 침대에 누워서 귀속말로 대화를 주고받듯 그 정도로 사랑이 풍성하고 가까운 장소라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행복한 장소가 아담의 불순종으로 불행한 장소가 되어, 아담과 하와는 동산을 쫓겨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아주 버리지 않으시고 회복의 길을 열어주신다.

하나님의 이 포기하지 않으시는 사랑은 언약궤와 성막을 통해 나타나고,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복을 누릴 수 있도록 세밀하게 가르쳐 주신다. 출애굽 후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장소가 필요했는데, 하나님과 집중적으로 만나기 위한 공간을 원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도 이동식 장막이었지만 주님의 영광이 가득한 곳에서 그들에게 말씀하여 주시고, 친히 당신의 임재를 보여주셨다.

시내산에서 이 모든 설계와 가르침이 주어졌는데, 시내산은 모세의 떨기나무와 같이 하나님의 임재로 불붙는 산이고 모세만이 아니라 백성 모두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제사장으로 임명되는 장소이다.

물론 성막에서 제사를 드릴 때 뜰과 성소와 지성소에 나갈 수 있는 사람이 구별되었듯, 시내산에서도 산 끝자락과 산등성이와 산 정상에 올라올 수 있는 사람이 구별됐다. 하지만 무엇보다 백성 전체가 하나님을 만나고 힘과 능력을 입는 공간에 직접 나올 수 있는 자격의 회복이다.

그러나 이런 놀라운 은혜는 솔로몬 성전으로 인해 변질되고 타락한다. 우리는 흔히 솔로몬을 지혜의 대명사로 알고 있고, 대단히 훌륭한 인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에서(열왕기상하) 묘사되는 솔로몬과 그의 성전은 하나님을 등지는 대명사였고,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게 되는 계기가 된다. 실제 이스라엘 역사에서 솔로몬 성전 이후 나라는 북과 남으로 분열하게 되고, 이후 우상숭배와 영적 간음의 길을 가속도를 붙여서 달려간다.

모세의 성막에 비해, 솔로몬의 성전 크기는 작고 화려함은 초라하다. 그러나 솔로몬의 궁정과 솔로몬의 성전을 비교해 보면, 솔로몬의 성전은 그의 궁전의 일부에 불과하다.

이 말은 솔로몬은 성전을 지을 때 하나님의 지시를 받아 예배와 경배와 만남에 대한 강렬함으로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궁전을 더 멋지게 보이려는 탐욕으로 지은 것이고, 백성의 환심을 사려는 정치적 목적으로 지은 것밖에 되지 않는다.

실제 성막과 성전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성전을 지을 때는 하나님이 주도하셨던 성막의 설계와 건축과 달리, 솔로몬이 직접 지휘하고 건축한다. 그리고 성막을 지을 때는 모든 백성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헌금을 드리고 헌신을 하였지만, 성전은 백성들의 피와 땀과 노력이 강제로 동원되어 고역이 된다.

또한 성막은 하나님의 영이 기술자들에게 임하여 그 지혜를 나누며 공유하였지만, 성전은 이방인 기술자 히람이 주도적으로 건축하게 된다.

그 외에도 성막과 성전의 차이를 비교하며 솔로몬과 그의 성전이 얼마나 불순종의 결과물인지 이 책은 잘 설명해주고 있다.

건축 연수만 해도 솔로몬은 자신의 왕궁을 13년이나 걸려 지었지만 성전은 7년 걸렸으니, 그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여겼고 성전은 어느 정도로 생각했는지 충분히 알 수 있다.

이런 성전이기에 그의 봉헌식 기사를 보면 아주 은혜로운 말들이 있지만 실은 이미 하나님이 떠난 성전 건축이었고, 실제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이 성전을 떠나는 장면을 보면서 근심하고 슬퍼한다.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
▲성전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옆에서 찍었다. 사진에서 보는 계단은 헤롯이 건축한 성전으로 올라갈 때 이용되었던 당시의 계단이다. ⓒ크투 DB
이후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이 다시 성전으로 돌아오시는 장면은 나타나지 않는다. 안타깝게도 솔로몬 성전 이후 하나님의 임재는 다시 드러나지 않고, 불과 빛과 연기같은 현상도 나타나지 않는다.

솔로몬 성전은 이방인들에 의해 값비싼 것들을 빼앗기고 결국은 비참하게 무너진다. 그 화려하고 명성이 화려한 건물이었지만, 하나님의 임재를 잃어버리니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않게 되는 폐허가 되어 버렸다.

70년의 세월이 흐른 뒤, 포로 후 세대들이 무너진 성전을 보고 가슴을 치며 다시 제2성전을 짓는다. 그러나 이 성전의 건축 기사는 짧게만 소개되고, 특별하게 주목받지 못한다. 언약궤에 대한 언급도 없고, 하나님이 다시 그들 가운데 머무신다는 것에 대한 확신도 없다.

다만 여기에서 우리는 구속사적으로 그리스도께서 장차 참 성전으로 오신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분이 참된 이스라엘의 임재가 되신다는 소망을 발견한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학개와 스가랴서를 참 좋아하고 사랑한다. 이 성경들을 보면서 교회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소망의 말씀을 발견한다.

우리는 모두 교회를 세워가는 사람들이고 자신의 성전을 지어가는 사람인데, 성령의 능력으로 세워가게 되기를 기도하게 된다. 무엇보다 참된 성전인 주님이 우리 안에 머무시면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고, 이전보다 더 큰 영광을 보게 된다는 믿음이 생기기에 힘이 된다.

구약이 끝나고 헤롯이 다시 제2성전을 완성하기까지 약 500년의 시간이 지난다. 헤롯은 자신의 명성과 권위를 위해 46년 동안 매년 약 2만명의 노예를 동원하여 화려하게 이 성전을 짓는다.

그러나 끝내 주후 70년 로마의 장군 티투스에 의해 이 성전은 주님 말씀처럼 돌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진다. 성막과 성전에 이어 솔로몬과 헤롯에 이르기까지, 그 성전의 역사가 끝나는 시점이다.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성전이 사라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전은 없지만 참된 성전이 되시는 예수님이 우리에게로 오셨다는 점이다.

이 분은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 안에 내주하시고, 믿는 백성들 사이에 머무신다. 예수님은 자신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시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실 것이라고 약속하였다. 요한도 예수님을 향해 참 성전이라고 하시고, 헤롯 성전은 무너져서 없어지지만 자신은 죽어도 삼일만에 부활하는 성전이라고 알려주신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마지막 22장에서는 하늘에서 성전이 내려와 새 예루살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의 임재가 이 땅과 비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공간이 우리에게 다가온 것이다.

이곳에서는 사람 사이에 어떠한 차별과 구별도 없고, 하나님의 거룩함과 능력과 임재와 교제가 충만한 곳이다. 에덴동산에서 흘렀고 에스겔 성전에서도 보였던 강이 이곳에서는 만국을 적시고 살리는 강으로 나타난다.

이 책에서 드러내고자 하는 성막과 성전의 핵심인 하나님의 임재를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그 줄거리를 요약해 보았다. 이 책을 보면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보를 접할 수 있고, 성경의 큰 물줄기를 작은 배를 타고 여행하며 즐길 수 있다.

이전에 잘못 알았던 내용을 고칠 수 있고, 몰랐던 내용들도 새롭게 배울 수 있다. 무엇보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임재와 구원이 얼마나 강렬하고 세밀한지 그 마음을 느낄 수 있다.

끝으로 우리는 교회를 다니고 그곳에서 예배하고 교제하며 교육하고 봉사하며 선교한다. 회당에서는 구약의 하나님을 전하지만 하나님의 임재가 끊어진 상태였고, 멀어진 하나님에 대해 가르칠 뿐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매주마다 지성소처럼 하나님의 임재 앞으로 나아가 예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과연 오늘 우리는 그러한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 온전하고 충만한 관계를 누리고 있는가? 이 중요한 신학책이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고 세우는데 큰 도전을 준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