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 된 음료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의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말미암아 살리라(요 6:55-57)”.

오늘 요한복음에서 우리는 생명의 근원이시고, 영원한 삶의 지표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인류에 대한 사랑의 고백을 경험합니다. ‘이웃을 아끼고 위하는 마음’이라는 사전적 의미에서도 나타나지만, 하나님의 우리에 대한 사랑은 더욱 각별하다고 할 것입니다.

교회 분쟁으로 말미암아 섬기던 많은 성도들이 각자 다른 교회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도 아량 곳하지 않고, 노인 일자리를 하며 받은 수익금 전액인 30만원을 부산시 부전역 무료급식 단체인 사랑의 특공대에 선뜻 기부한 집사님은 맹 집사님과 하 집사님입니다.

생활하기에도 부족하고 빠듯한 처지임에도, 오랫동안 같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한 장로님께서 무료급식에 봉사한다는 말을 듣고 함께하지 못한 데서 오는 미안함에 용기를 내셔서 어려운 형편이지만 선뜻 기부하신 맹 집사님의 그 믿음이야말로, 주님 안에 머무는 삶이 아닐까요?

또 한 분인 하 집사님은 비교적 젊은 50대 초반의 안수집사님이십니다. 한 장로님께서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비록 함께 봉사를 하지 못하는 것을 아쉬워하시며 선뜻 기부하시는 그 마음 역시,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넘어 기독교 미래의 희망의 선한 사마리아인이 아닐까 싶습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어지럽히는 세력들은 이러한 믿음의 집사님들의 선한 행위를 본받으며 높여야 하겠습니다. 교회 안에 헛된 권력을 누리기 위해 자신을 드러내며 많은 시간과 물질을 낭비하는 일부 장로들과 목사들의 교만과 탐심 때문에, 주님의 살과 피는 희석되어 많은 영혼들에게 상처만 주고 있습니다. 이런 겉과 속이 다른 가슴 아픈 행위는 이제 그만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출애굽에서 모세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은, 투정부리고 졸라대는 어린아이 같은 어리석은 백성들이지만 내치거나 버리지 않으시며,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만나를 주시고 목말라 갈급해하는 백성들을 위해 바위에서 샘솟는 시원한 산소 같은 물을 공급해 주시는 자비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430년이라는 길고 먼 노예 생활로부터 해방되어 자유를 얻은 백성들을 완전하고 영구적으로 살게 하기 위하여, 직접 이 땅에 오셔서 우리 같은 인간의 모습처럼 사셨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미워하며 대적하는 무리들로부터 고난을 당하신 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써 우리가 필연적으로 맞이해야 할 죽음이라는 거대한 벽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본래의 모습대로 다시 살아나심으로써, 죽어 소멸해야 할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초대하셨고 영원히 살게 해 주셨음을 날마다 감사하며 높이 찬양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아담과 하와의 원죄로 말미암아 잃었던 하나님의 영을 우리들에게 다시 회복시켜 주심으로 천지창조 때의 모습처럼 가장 순수하고 신실했던 사랑받는 존재로 다시 세워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인들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신실한 예배를 통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구원을 보증받고 하나님 나라인 저 천국을 차지할 수 있게 선택받은 사람들이 되었음을 감사하며 신뢰하고 믿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거룩한 우리 신앙인들은 ‘아바, 아버지’라고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 있음을 감사해야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살과 피를, 영원한 생명의 양식으로 내어 주면서까지 사랑을 보여주시며 베풀어 주심을 금 세 잊은 채, 또 다시 하나님의 마음을 슬프게 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의 영욕만을 위하여 살아감을 안타깝게 여깁니다.

이는 단순히 보여주심뿐 아니라, 하나님의 적극적인 사랑의 고백이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어느 종교 어느 신이 이러한 일을 했으며, 또 할 수 있단 말입니까? 주님의 살을 받아먹고, 피를 받아 마실 때, 더욱 감사하며 주님께서 내 안에 머무르시며, 주님과 하나가 되어 기쁘고 행복한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도록 우리를 위해 몸을 주시고 피를 흘리셨습니다. 주님의 살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신의 몸을 주심으로 이루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주님의 피를 마시는 것은 우리를 위해 피 흘리심으로 성취하신 모든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성찬식 행위는 우리를 위해 짊어지신 십자가의 교훈임을 깨닫고, 날마다 주님을 상기하며 믿음이 변질되지 않도록, 그것이 우리를 위한 생명 공급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특히 요한복음은 예수님의 정체성,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역설합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고 받아들일 수 있는 일은 먹고 마시는 일 만큼이나 쉬운 일입니다.

먹을 것을 주면 먹으면 되고, 마실 것을 주면 마시면 되는 일입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거부하는 것은 곧 배고프지도 목마르지도 않는, 갈급함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신앙생활이지만, 무엇을 추구하기에 앞서 우리는 무엇을 배고파하는지, 또 무엇을 목말라 하는지를 곰곰이 자신에게 따져보며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더 많은 것을 찾아 헤매는 교만과 탐심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에게 굳이 필요 없는 것까지 필요를 느끼며 채우고자 합니다. 더더욱 많이 가지러하고 채우려고 덤비는 오늘의 시대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배고픔을 묵상하는 이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말 배가 고플 때 먹는 음식이 꿀맛이듯, 우리가 무엇에 목말라하고 배고파하는 것인지 살펴보며, 참된 양식의 꿀맛을 위해 주님 안에 거하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의 시대는 편리함에서오는 과학과 첨단기술이 삶의 영역까지 지배하고 있는 세속화된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하나님은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습니다.

자신의 사업을 위해, 그리고 일상의 삶 안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추구하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에 대한 중요성과 의미를 잊어버리는 안타까운 현실에 가슴이 먹먹해질 뿐입니다.

현 시대에 새로운 우상이 되어버린 경제 성장을 위해서는 효율성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해서는 별 의미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체험되는 하나님, 나의 삶과 역사 안에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체험이 요구되는 시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위해 살을 내어주시고 물과 피를 다 쏟아내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슴 속 깊은 곳까지 아로새기는 믿음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인류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하나님께서는 친히 역사 안으로 들어오시어, 고통 받으시고 죽으시고 부활하셨습니다. 거룩한 성령을 통해 우리를 성화시키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도록 하신 하나님의 현존을 믿고 그 분의 사랑을 받아들일 때, 우리 삶에는 장밋빛으로 새로운 태양이 떠오를 것입니다.

또 하나님과의 깊은 만남과 끝없는 생명의 천국으로 초대될 것이며, 주님 안에 머무는 아름다운 삶이 될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