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스타프 도레
▲귀스타프 도레의 부자와 나사로(목판와 일러스트)

“불러 이르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이 불꽃 가운데서 괴로워하나이다(눅 16:24)”.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비유는 ‘인생 역전’에 대한 말씀입니다. 부자가 과연 어떤 죄를 지었기에 지옥에서 이처럼 처참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것일까요? 단적으로 말해 모세와 선지자의 가르침을 등한시하고 회개하지 않았던 결과입니다.

모세와 선지자가 말한 바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뢰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 자기를 부인하고 궁핍한 자를 도우며 과부와 고아와 미천한 자들을 도우라는 것입니다.

성경 전반에 걸친 이러한 명령을 깨닫지 못하고, 그저 자신의 안일한 편의를 위해 몰두하다 부자는 영원히 지옥에서 고통 속에 살아가야 하는 쓰라린 후회의 삶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이 세상 속 삶에서 모든 수고와 생명이 끝나면 우리가 갈 곳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는 비유의 말씀 가운데, 거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평안의 위로와 쉼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 역시 주님 계신 곳을 향해, 천사들의 손에 이끌려 올라 갈 것임을 약속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부자로 살면서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준은 세상의 기준과 전혀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서 부를 누리고 땅에서 영화롭게 살았던 부자의 눈이, 죽고 나서 아브라함의 품 가운데 평안의 안식을 누리고 있는 나사로의 모습을 향했습니다. 부자는 지옥불에서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는 자신을 위해, 나사로를 보내 자신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것을 요구합니다.

특히 부자가 아브라함을 조상님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볼 때, 그는 아마 이방 사람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거지나 노숙인으로 사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이는 남부러울 것 없이, 남들이 가지지 못한 것들을 다 가지며 살았던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부자와 거지 모두 분명 하나님을 믿는 신앙인들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교회를 다니는 교인들 중에는 부모를 잘 만났든지, 아니면 자신이 세상에서 노력하여 성공을 했든지, 이유는 모두 다르지만 부유한 삶을 사는 이들이 있고 초라한 삶을 사는 사람도 있는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삶과 같은 이치가 아닐까 합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은 말합니다. “부자여 너는 살았을 때 온갖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았고, 나사로는 온갖 불행을 겪으며 살았다. 그래서 나사로는 여기서 위로를 얻고 있으며, 부자 당신은 잠시도 아닌 영원히 고통으로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세상에서의 부귀 영화는 잠시요, 세상에서의 고통은 영원히 위로를 얻게 되는 것임을 조상인 아브라함은 부자들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거지 나사로는 세상의 시각에서는 보잘것 없는 가난뱅이로 보이겠지만, 현세에서 풍족하게 산 사람들보다 구원을 얻을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표현한 예수님의 말씀 중 “나중 된 자로서 먼저 되고, 먼저 된 자로서 나중 되리라(마 20:16)”는 것이 있습니다. 이 말씀의 특징은 세상에서의 원칙은 가장 오래 일한 사람이 가장 많이 받지만, 하나님 나라에서는 공로나 능력의 원칙이 아닌 은혜의 원칙이 지배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선하신 하나님은 합당치 않은 사람에게도 무한히 많이 주시지만, 그러한 보상은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의와 공로를 주장하는 바리새인들보다 창녀와 세리들이 먼저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 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서 나오는 보상은 값없이 주시는 은혜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지만 노아가 마지막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은 먹고 마시며 환락 가운데 쾌락을 누리고, 하나님께서 사전에 당부하신 말씀을 신뢰하지 못한 채 세상에서 누리는 온갖 영광을 누릴 때까지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모두 삼켜버린 슬픈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마지막 심판의 때가 가까이 왔다는 것입니다.

“또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팔고 집을 짓더니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 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7-30)”.

이는 세상 사는 재미에 흠뻑 젖어 하나님을 잊어버린 상태를 묘사한 말씀입니다. 그것은 영적 음행이요 패역입니다. 인간의 심판은 그러한 때에 나타날 것이며, 죄악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나 일어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 말씀을 요약해 보면, 제자들의 생활원리 즉 믿음의 위력과 재림의 시기 등이 나오고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되는 것입니다.

장차 다가올 수난에 직면하여 제자들에게 그의 영적 자만을 경계하고 겸허하게 복음 사역에 매진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입니다.

바벨론 포로, 애굽의 노예생활, 소돔과 고모라 사태, 노아의 대홍수 사건 등은 그야말로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입니다. 극에 달한 인간의 사악한 모습을 끝까지 지켜보시면서도 참고 인내하셨던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용서가 허용되지 않는 즈음에 이르러, 결국 멸망이라는 카드를 꺼내 세상을 심판하고 말았습니다.

이 사건은 지금도 유효한 것임을 깊이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고, 인간으로서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악함을 보이는 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의 그 순수함과 신실한 모습들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사악한 사탄의 모습으로 바뀜을 한탄하시면서, 곧 내려질 심판의 최후를 더디 하시려고 침묵 가운데 지금도 기다려 주고 계십니다. 그 사랑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 우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로 예배가 정상적으로 회복하지 못하고, 적그리스도들의 억압에 짓눌려 있습니다. 그들의 놀음과 장단에 함께 춤을 추는 모습은 거지 나사로와 부자의 결말을 보는 것 같습니다.

지금 나라 안은 어떻습니까? 거짓과 위선으로 무장한 정치꾼들로 인해 부정과 부패, 그리고 비리의 온상들이 백성들의 눈을 흐리게 하며, 판단조차 할 수 없는 지경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이처럼 나라의 앞날이 검은 먹구름으로 번져가고 있음은, 타락한 세상을 향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의 메시지가 하늘에서부터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은 기도로 이 나라를 건국하셨고, 자유 대한민국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놓으며 이 땅을 지켜냈습니다.

하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은 청와대를 비롯한 정부 기관과 입법, 사법, 행정 모두가 부패의 온상으로, 국민은 안중에도 없고 오롯이 자신들의 권력과 영화만을 위하여 애쓰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습들을 보노라면, 피와 땀과 눈물로 나라를 위해 최선을 다해 일했던 분들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 앞에 망연자실할 뿐입니다.

국민들에게 정확하고 빠르게 그리고 진실하게 알 권리를 제공해야 할 언론들 역시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청와대 눈치나 보며, 그들을 위한 기사만 내놓는 것을 보노라면, 울화가 치밀어 가슴을 치며 한탄만 하고 있다 애가 마를 지경입니다.

어쩌다 대한민국이 이 지경까지 왔나 싶어, 위정자들에 대한 분노만 커져갈 뿐입니다.

정의를 외치는 분들이 오히려 정의를 훼손하며, 공명정대를 외치는 분들이 자신들의 그룹들과 한통속이 되어 부정부패를 생산하고 나라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으니,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제 깨어 일어나야 하겠습니다.

이제 오랜 침묵을 깨고 나서야 합니다.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마저 저들의 간섭에 짓눌려 여태 지켜온 신앙이 크게 훼손될까 염려스럽습니다.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 환자들을 복음으로 살피시며, 그들의 몸에 있는 헌데를 입으로 빨면서까지 그들을 돌봐 주셨습니다. 코로나19 전염병 때문에 하나님께 올려 드리는 예배를 훼손한다는 것은 이제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이 가까워 오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 아닐까요?

자유 대한민국은 처음부터 성령님께서 세워주신 나라입니다. 성령님께서 이 나라를 반드시 지켜주실 줄 확실히 믿습니다. 이 땅에 사는 모든 백성은 불신과 두려움이 아닌, 이웃들과 함께 살아가며, 서로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을 모색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 너와 나, 우리 사이에 보호와 위로와 협조, 우리의 모든 삶 속에서는 늘 하나님께서 동행하시며 활동하고 계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육은 늘 헛된 욕망을 쫓지만, 성령께서는 새로운 삶을 베푸십니다. 우리 삶을 거짓 자아나 육에서 영으로, 참된 생명의 길로 바꿔 주시는 분 역시 하나님이심을 깊게 믿어야 하겠습니다.

거지 나사로 부자의 비유 가운데 고통 중에 자신의 혀에 물 한 모금으로 서늘하게 해 달라고 애원하는 부자의 모습은 바로 우리들의 모습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현 시대에서 교회와 나라는 또 다시 노아의 홍수, 소돔과 고모라 바벨론과 애굽의 노예 생활을 다시 겪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지 않도록 모두가 깨어나야 합니다. 모든 것을 만군의 여호와께 의탁하여, 모든 여정을 맡기며 다시 태어나는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