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 조직적으로 학습시키는 분위기와 국민성,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만으로 해결 가능할까
선동과 정치 프로파간다 집착 공산주의적 행태

포괄적 차별금지법
▲2017년 국회 본청 앞에서 연설하던 문재인 당시 대선 후보에게 달려들어 항의 의사를 표하는 동성애 단체 회원들. 문재인 후보는 당시 TV 대선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대해 명백한 반대의사를 표한 바 있다. ⓒ유튜브
◈법과 도덕: 법으로 간단히 해결할 수 없는 신앙 윤리의 문제

역사상 많은 법들이 원래의 입법 의도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사회 구성원에게 해악만 끼치는 결과를 낳았는데, 그 중 법학자들이 가장 대표적인 사례로 드는 것이 금주법(the Prohibition Law, 1920-1933)이다.

법제화로 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었던 복음주의 개신교 단체들의 청원과 이들의 지지를 받고 있던 공화당 의원들의 결의에 의해, 1920년 미국 전역에 효력을 발휘하는 금주법이 제정되고 시행되었다.

당시 미국 사회에 음주와 관련된 숱한 사회문제, 범죄가 발생했던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문제는 당시 개신교 지도자들이 점차 청교도적 가치와 상충되는 방향으로 퇴락해가는 미국인들의 생활양식 문제의 원인을 사회의 구조적 변화에서 찾기보다, 순전히 개개인의 영적-도덕적 타락에서 찾았던 데 있다.

1910년대 후반 당시, 미국 사회는 격변의 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19세기 중후반부터 가속화된 아일랜드계, 중국계, 이탈리아계 이민자들의 대량 유입으로 미국 대도시들에서는 전통적인 청교도적 생활양식이 점차 퇴색하고 있는 중이었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200만 명 이상의 젊은 미국인 남성들이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고, 1917년 귀향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유럽(특히 프랑스)의 세속화된 생활방식과 전쟁 중 거친 생활방식에 물든데다 전쟁 트라우마까지 겪어야 했던 참전용사들 대다수가 귀국 후 술과 여자에 과도하게 의존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로써 알 카포네의 주류 유통 마피아 조직, <위대한 개츠비>, T형 포드 자동차의 일반화, 대공황 직전의 주식 투기 열풍 등으로 대표되는 이른바 광란의 1920년대(the Roaring 20s)가 시작된다.

금주법 입법을 독려했던 기독교 지도자들과 단체들의 원래 의도는 명백하게 선한 것이었다. 문제는 사회와 가정 전반의 도덕적 갱신을 단순히 법률 하나 제정하는 것으로, 특정 행위를 제도적으로 규제하는 것으로 해결하려 한 편의주의적 사고방식이었다.

금주법은 원래 의도와는 달리 밀주(密酒)의 범람과 이 밀주를 생산하고 유통하는 범죄조직의 발흥을 초래했고, 이들 범죄조직과 결탁하는 부패한 정치인들, 그리고 금지된 행위에 더욱 집착해 이전보다 더 많은 술을 마셔대는 청년들을 양산했다.

결국 당대 기독교 지도자들조차 그 부작용에 기겁을 한 나머지, 1933년 금주법 철폐 당시에는 많은 기독교계 인사들이 안도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차별금지법 금주법 보드워크 엠파이어
▲금주법으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혼란이 더 심해진 미국의 윤리적 퇴락 상태를 묘사한 TV 시리즈 <보드워크 엠파이어>의 한 장면.
소설 <위대한 개츠비>는 술, 돈, 여자, 부패, 범죄, 도덕적 퇴락에 신음하던 당시 미국 사회의 분위기를 매우 진지하게 다루고 있다. 당시의 광기어린 미국 사회의 실상은 오늘날까지도 자주 미디어 콘텐츠의 모티프로 채택되고 있다.

영화 편으로는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1984)나 <언터쳐블>(1987), <위대한 개츠비>(2013) 등이 유명하고, TV 시리즈 편에서는 <보드워크 엠파이어>(2010-2014) 등이 유명하다.

당시 미국 사회의 음주 문제는 단순히 법적으로 하나의 행위만 규제한다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니었다. 그보다 격변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가치관 혼란을 겪고 있던 미국인들의 심령을 위로하고, 지치지 않는 복음화의 열정을 통해 ‘마음이 청결한’ 기독교적 생활양식을 되찾아 주어야 해결될 수 있었던, 보다 근본적이고 복잡한 문제였던 것이다.

◈법과 차별: 한국인 고질적 차별, 법안 하나로 고쳐질 수 있을까?

최근 재추진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 시도를 보면, 처참하게 실패해 버린 금주법의 기억이 떠오른다.

전편 논평에서 언급한 바대로 현재 추진되고 있는 이 법안의 의도 자체부터 불순해 보이는데다가, 백 번 양보해서 그 의도가 진정성이 있다 치더라도 차별 철폐 방법 자체에서 이미 심각한 오류를 보이고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당장의 인권 치적에 집착하는 현 여권 지도부의 행정편의주의, 입법편의주의 성향이 두드러지는데다, 그 근거조차 부적절해 보이는 도덕만능주의 사고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정치사상 및 사회과학 연구에서 서구중심주의 극복에 힘써온 정치학자 강정인은 작년(2019년)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전 정권(박근혜 정권)에서는 ‘법치의 과잉’이, 현 정권(문재인 정권)에서는 ‘도덕성 만능주의’가 최대의 정치적 패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도덕성 만능주의란 쉽게 말해 정권 지도부가 사회경제적 현실을 무시하고, 모든 정책을 정치적 도덕성 논리로 결정하고 추진하는 태도를 말한다. ‘인권, 복지, 그리고 평등’이라는 그들만의 절대선에 집착하는 현 정권 지도부의 행태가, 오히려 대다수 국민들의 삶을 더 피폐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포괄적 차별금지법 입법을 주도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 ⓒ인권위
따지고 보면 현 정권의 굵직한 정책들은 모두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와 민주당 지도부 전반이 신봉하는 ‘사회주의적 당위성’을 기반으로 기획되고 추진되어 왔다.

소득주도성장을 위한 무리한 최저임금 상승, 강압적 방식으로 투기를 억제하겠다는 막무가내식 부동산 대책, ‘겨레와 민족’이라는 구시대적 가치에 집착하다 최근 처참한 실패를 맛본 대북 정책, 일본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는 경제구조와 문화현실을 묵살하고 추진한 반목의 대일정책 등, 정책 전반이 그 정체가 모호한 ‘도덕성’에 근거를 둔 까닭에 실험적 아마추어리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신앙, 종교, 윤리학 등은 이상을 추구할 수 있고, 또 그러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는 이상과 현실을 함께 돌아보는 가운데 민생에 파괴적인 충격을 주지 않도록 점진적인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

하지만 현 정권 수뇌부 가운데 그만한 인내심과 의지, 그리고 통치 철학을 가진 인물을 찾아보기 어렵다.

현재 입법이 거의 확실시되고 있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안 역시 같은 맥락에서 평가될 수 있다. 성별, 인종, 계급, 재산에 따른 근거없는 차별을 정치권이 주도해서 법으로 억제하겠다는 사고방식은 분명 도덕성 만능주의에 기대고 있을 뿐 아니라, 전 정권의 패착으로 지적되었던 법치 과잉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한국인의 사회적-문화적 정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저 인권선진국들의 전철을 따라가겠다는 얄팍한 치적 쌓기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차별금지법
▲폐쇄적이고 자민족중심주의적인 유교적 정신문화 덕분에 한국 사회 전반에는 성별, 인종, 빈부귀천 차별이 구조적으로 고착화되어 있다.
차별을 조직적으로 학습시키는 한국의 전통적 사회 분위기와 국민성 속에서, 과연 포괄적 차별금지법 하나를 제정한다고 차별 문제가 유의미한 수준까지 해결될 수 있을까?

수백 년간 한국인의 심성을 지배해온 유교적 가치는 권위와 질서를 인정하도록 인간을 훈육해 왔다는 점에서 상당한 강점을 지니고 있다.

이는 실제로 한반도에 처음 기독교 선교가 시작될 때 전지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아가페적 사랑으로 인류를 구원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과 순종을 촉진하는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하지만 유교적 심성은 사회, 향촌, 그리고 가정 모든 영역에서 인간의 가치를 차등 평가하는 사고방식을 고착화시켰고, 오늘날 구조적 차별을 정당화하는 한국의 사회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했다.

양반-상민-천민을 구분하고, 식자-무식자를 나누며, 남성-여성을 가르고, 자민족-타민족을 차등화하는 ‘유구한’ 전통이 과연 법안 하나로 해결될 수 있을 것인가?

결국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문제는 동성애자 옹호에 방점을 찍고 있는 모호하고 불순해 보이는 의도에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고질적인 사회 문제에 대응하는 방식에 있어서도 심각한 결함을 보이고 있다.

이렇게 당장 눈에 보이는 치적 중심, 전시 중심의 정책은 현실적 문제 해결 자체보다 선동과 정치 프로파간다에 더 집착하는 공산주의적 정치 행태의 일환이다.

현 정권 지도부가 1980년대식 운동권 선동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아마추어리즘의 한계를 여실하게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수백년간 고착화된 부조리한 차별의 전통을 단번에 해결해 보겠다는 식으로 무리하게 정책을 추진하는 현 정권 지도부의 모습은 마치 인민 전체를 매스게임에 참여시키듯 사회질서를 자의적으로 조종하려 하는 현 중국과 북한의 정치지도부의 행태를 보는 듯하다.

차별금지법 586 선동
▲1980년대 민주, 인권의 가치를 위해 투쟁했던 운동권 인사들(현 586 기득권 세대)의 정치행태는 그들의 사상적 근간이 된 사회주의 혹은 공산주의의 선동 및 정치 프로파간다 방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상황이다. ⓒ유튜브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모든 측면에서 폐쇄적이었던 1980년대 당시, 운동권 인사들이 투쟁에 전념하던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구조적으로 복잡해진 상황에 놓여 있다.

온라인-모바일 네트워크로 사회 전반이 여러 층위에 걸쳐 긴밀하게 연계되어 있고, 사상의 교류 속도와 범위가 전지구적 수준으로 증대된 상황인 것이다.

이런 와중에 사회적으로, 문화적으로 지극히 민감한 문제를 사회주의적 당위성 하나만 가지고 해결해보려 하는 무모함은 무식자의 용기가 아니고 무어라 할 수 있을까?

차라리 넷플릭스, 유튜브, 디즈니 같은 주류 미디어 기업들이 사회 내 차별에 대처하는 방식이 훨씬 효과적이라 여겨진다.

물론 기독교인 입장에서 이들 거대 미디어 기업들의 차별 반대 움직임을 지배하는 정치적 올바름 운동의 본의에 동의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차별에 대응하는 방법적인 측면에서는 정치권보다 훨씬 세련된 모습을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들은 매력적인 문화예술 콘텐츠를 통해 은근하게 성별이나 인종, 혹은 동성애자 차별을 죄악시하는 사상을 주입하는데, 이들의 전략이 훨씬 효과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기독교 신앙인들에게 포괄적 차별금지법안은 내용적으로 심각한 역차별의 위험을 안고 있다. 이 점에 대해서는 수많은 교계 지도자들, 목회자들, 그리고 신자들이 한 목소리를 내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내용적으로도 신앙에 위배되지만, 그에 못지 않게 그 이면에 깔린 정치적 의도나 정책실천 방식 모두 심각한 결함을 갖고 있다는 것 역시 지적하고 공론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단지 기독교계만의 입장을 넘어, 일반 대한민국 시민 입장에서도 포괄적 차별금지법의 무리한 입법 시도가 하나의 심각한 정치적 횡포로 다가올 수 있다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고 그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높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