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마을
▲동두천 두레마을 감자밭.
누군가가 나에게 묻기를 나의 목회사상이나 목회정신이 무엇인지를 묻는다면, 나는 “목민신학 목민사상입니다”고 답하고 싶습니다.

목민신학이란 말은 내가 30여 년 전부터 사용하여 온 말입니다. 목민신학이라 할 때의 목민이란 말은 다산 정약용이 쓴 목민심서에서 따온 말입니다.

다산 선생은 250여년 전 조선을 개혁하고 새로운 나라로 세워 나갈 수 있는 탁월한 인재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조정 안 소인배들에게 몰려 전라남도 강진으로 유배를 가서, 18년 세월을 유배로 허비한 아까운 인물입니다.

내가 여러 해 전 일본을 방문하였을 때입니다. 일본인 학자로 조선의 다산 정약용을 전공한 학자를 만났습니다. 그와 대화를 나누는 중에 다산 선생에 대한 그의 소견을 듣고 심히 놀란 적이 있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만약 200여 년 전 조선이 정약용 선생을 영의정으로 세워 정국을 주도하게 하였더라면 일본이 조선의 지배를 받게 되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다산 선생에 대한 평가는 우리 스스로보다 해외에서 더 높습니다. 다산 선생에 대한 해외에서의 일화 중 베트남의 호지명(호치민)에 대한 이야기가 유명합니다. 베트남의 민족주의자이자 공산주의자였던 호지명은 조선의 정약용 선생의 저서인 목민심서를 애지중지하였습니다.

그가 프랑스와 일본의 지배를 받던 시절 독립을 위한 저항 운동을 펼치면서 다산의 목민심서를 유별나게 애독하였습니다. 그래서 목민심서 48권을 늘 가지고 다니며 애독하였습니다. 그가 신분이 드러나 급히 피신하여야 할 때면, 다른 물품은 못 챙겨가도 목민심서만큼은 꼭 챙겨서 들고 다녔다 합니다.

다산 선생의 목민심서의 핵심은 백성들에 대한 극진한 관심과 백성들을 편안하고 행복한 백성들로 이끌어 가고자 하였던 정신입니다. 그는 목민심서에서 쓰고 있습니다. ‘정부란, 정치란 백성들로 편안히 살게 해 주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 한 마디가 백성을 아끼고 섬기려 하였던 자신의 목민정신을 한 마디로 일러 주는 말입니다. 그의 이런 정신은 백성들을 아끼신 예수님의 정신과 흡사하기에 나는 목민심서에서 드러나는 그의 목민정신을 빌려와 예수님의 마음에 견주며 목민신학이란 말을 쓰게 되었습니다.

목민정신에 버금가는 예수님의 마음을 실감나게 나타내 주는 성경 구절이 마가복음 6장 34절입니다.

“예수께서 나오사 큰 무리를 보시고 그 목자 없는 양 같음으로 인하여 불쌍히 여기사 이에 여러 가지로 가르치시더라 (마가복음 6장 34절)”.

이 말씀에서 무리를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바로 다산 선생의 목민정신에 버금가는 말입니다. 그래서 목민신학, 목민목회라 부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