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 오명 바로잡기, 건국이념과 정체성 세우는 일
성령체험 통한 기독교 귀의, ‘최초’ 가득한 생애 관통
정읍 연설,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 위한 필생 승부수
한강다리 폭파? 전시 상황에서 계획대로 수행된 작전

이승만
▲이승만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 ⓒ크리스천투데이 DB
건국의 아버지, 그러나 6.25 전쟁 통에 한강다리를 끊고 홀로 도망친 대통령, 미국의 앞잡이. 고백컨대 이승만에 대해 아는 것은 이것이 다였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불의에 거부감을 가진다. 전시에 한강다리를 끊고 홀로 도망쳤다는 이야기는 이승만이 국부임에도 불구하고, 그에 대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조차 들지 않게 했다. 나중에서야 사실과 다름을 알게 됐다.

지구상에는 수많은 인간 양상이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인은 위대한 민족적 양상을 보인다. 가슴 속에 불이 있다. 정의에 대한 갈증을 느끼고, 뜨거운 양심을 따라 행동한다. 나라의 안위에 가슴이 끓은 이들, 불의에 맞서고자 광화문에 나섰던 이들은 공감하리라.

나라의 정체성은 건국이념에서 나온다.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을 세운 이름, 이승만이다. 두 번은 알고 싶지 않았던 그를 통해, 그 이름이 새겨진 대한민국의 시작을 다시 보고자 한다. 오늘날 대다수의 사람들의 이승만 대통령에 대한 인식은 필자가 서두에서 밝힌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지금 나는 그가 받는 평들이 가진 모욕성과 나를 비롯하여 동시대를 살아가는 후대가 함부로 재단하고 왜곡한 그의 생의 업적에 통탄한다. 그의 폭발적인 생애는 나와 같은 범인(凡人)이 열 번을 죽었다 살아나도 따라갈 수 없을 가슴 벅찬 발자취로 가득하다.

그의 생각이 무엇이었는지, 그가 남긴 건국이념이란 과연 무엇인지, 더 알고, 배우고 싶게 만드는 참으로 강렬한 생이다. 건국의 아버지가 남긴 위대한 유산, 대한민국에 대한 존경과 자긍이 가슴에서 우러난다. 이승만의 누명을 벗기는 데 이 한 조각 글이 하나의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승만과 대한민국 건국은 떼어 놓고 논할 수 없다. 대한민국의 국민이라면 이제 결코 그를 ‘독재자’, ‘한강다리 끊고 도망친 지도자’, ‘미국의 앞잡이’ 정도로 오해해서는 안 될 일이다.

그와 같은 위인의 헌신과 사랑으로 이 나라가 시작됐다는 것을 크게 감사하고 자부심을 느껴야 마땅하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어느 한 사람의 공헌과 업적을 찬양하는 것을 결코 즐기지 않는다. 한 사람의 위대한 성취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도움들로 이뤄지는 ‘하모니’이기 때문이다.

다만 “이 나라 건국 대통령의 오명을 바로잡는 것”, 이것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과 정체성을 지키는 일이다. 대한민국이 세워지기까지 어떠한 보이지 않는 수많은 도움과 희생들이 있었는지, 인정하며 감사히 받게 하는 일이다.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가슴 속 불이 이 나라를 태우는 데 감히 악용되지 않도록 하는 일이 될 것이다.

건국 대통령 이승만은 구한말, 일제시대, 임시정부수립, 독립, 건국, 6.25, 4.19의 굵직한 역사를 지나왔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후대로서 감히 다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은 인물이다.

전쟁 전에도 시력을 잃을 위기, 천재로 불렸으나 수없는 과거낙방, 투옥, 고문, 콜레라, 역병 환자와 시신들 틈에서의 생활, 나라 잃은 설움, 간단히 나열해도 진저리나는 경험들이 그에게 있었다.

그를 수식하는 말 또한 한 단어로 끝낼 수 없다. 외교가, 정치가, 언론인, 교육자, 독립운동가, 전도자, 국제법 박사, 독립과 나라를 위한 삶의 발자취가 그를 나타내는 말에 녹아있다.

이승만의 업적에는 유독 ‘최초’가 많다. 대한민국을 시작하는 역사의 부름을 받은 그답다. 한국 최초 일간신문 창간, 영한사전 편찬 최초 시도, 조선 최초 영어 연설, 한국 최초로 남녀공학 추진, 조선 왕족 최초의 개신교 신자,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최초의 한국인, 최초의 자유선거 당선 등등.

동·서양사를 통틀어 이토록 다양한 분야에서 ‘최초’ 수식어가 많은 인물이 또 있을까. 6살에 천자문을 떼고 6개월 만에 배재학당에서 영어를 마스터하여 교사로 활약한 천재성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그의 발자취는 집요할 정도로 나라와 민족을 향한 시작에 서 있었다.

최초의 수식어로 장식된 그의 생을 관통한 사건에 ‘성령체험’이 있었다는 것은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는 배재학당에서 외국인 선교사들로부터 기독교를 접했고, 한성감옥에서 만난 하나님은 그의 중심을 사로잡았다.

성령체험을 통한 기독교로의 귀의는 구한말 당시에는 파격적인 사상이었던 인권존중과 남녀평등을 끊임없이 교육하고 실천하는 기틀이 되었다.

이제 이승만의 오명을 하나씩 바로잡아 보자. 역사에 무지하다는 것은 정체성을 잃는 것이다.

독립 이후 한반도는 세계 강대국들의 장기판이었다. 모스크바 삼상회의 신탁통치 안의 치욕이 바로 그 핵심이었다. 북위 38도선을 기점으로 소련은 북한을 차지하여 공산화에 성공했고, 당시 세계에서 공산주의의 입지는 드높았다.

소련 장교 출신 김일성은 북한을 소련의 위성국가로 전락시켰다. 그는 소련 스탈린에게 충성함으로써 권력을 부여받았다. 북한 주민을 억압했으며, 북한 땅과 주권을 제 손으로 소련에 바쳤다.

일제에서 갓 벗어난 동포와 민족의 영지를 사욕과 이념을 따라 소련에 팔아넘긴 매국노였다. 외세 앞잡이라 불려 마땅한 것은, 미제 앞잡이라는 오명을 쓴 이승만이 아닌 바로 김일성이었다.

당시 남한에도 공산주의자들은 있었다. 갓 전쟁을 치르고 아직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시대. 그 시대의 백성들은 국민의 개념도 몰랐고, 공산주의 이념이 무엇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때였다.

북한과 남한 내 공산 세력은 국민들을 선전선동하며 한반도 적화를 획책했다. 이승만은 안으로는 공산 세력과 싸우고 밖으로는 외세에 맞서며, 한국의 자유와 독립, 주권을 지키기 위해 분투했다.

1946년 6월 3일 정읍에서의 단독정부 수립 발언으로 인해 그가 받은 분단 획책의 오명 또한 살펴보자. 역사적 사실은 1945년 9월 20일 김일성에게 신탁통치를 지지하라 전달한 스탈린의 지령과, 소련에 나라를 판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사실상 이북 지역에 공산 정권이 수립돼 있었다는 것이다.

정읍 발언은 한반도 전체의 공산화를 막고, 외세의 입김에 더 이상 좌우되지 않으며,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워야 한다는 이승만 필생의 신념이 탁월한 정세 판단을 통해서 드러난 승부수였던 것이다.

끝으로 그 유명한 한강다리 폭파 일화는 전시 상황에서 계획대로 수행된 폭파 작전이었으며, 이승만 혼자만 살기 위해 도망친 뒤 폭파시켰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또한 전시 상황의 전략적 관점으로 볼 때 오히려 늦은 결정이었다는 평을 받는다. 소련제 탱크를 앞세우고 내려오는 북한군의 남침을 막기 위해 피하지 못할 결정이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좌경화된 정세와 이승만 대통령이 받는 누명은 실로 우리 가슴에 멍으로 남은 아픔인 동시에, 자유민주주의 체제 수호와 자유통일을 향한 사명감을 일깨운다.

대한민국은 시작부터 자유를 위한 나라였다. 세월이 지나며 흐려진 나라의 근본과 정신을 이제 다시 바로잡아야 한다. 선대의 무수한 피와 눈물, 그리고 기도로 누리는 자유는 결코 공짜가 아니다. 지키고 가꾸는 것은 후대의 사명인 것이다.

평생 자주독립과 대한민국, 국민을 위했던 건국대통령 이승만은 다음의 유언을 남겼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갈라디아서 5장 1절)”.

2020년 대한민국, 자유를 향해 다시 굳세게 일어서라.

이승만 기도
▲이승만 대통령은 평생을 조국과 민족의 자유를 위해 헌신했고,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리 민족이 종의 멍에를 다시 메지 않기를 간구했다.
곽예진
리박스쿨 청년 회원
리박스쿨은 이승만-박정희 스쿨의 약자로, 이승만 건국대통령의 근대화와 한강의 기적을 만든 박정희 대통령의 산업화를 연구하는 아카데미 모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