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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18장 12-17절


삶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라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미국인들에게 가장 사랑받는 칼럼니스트인 엔 라모트가 쓴 ‘가벼운 삶의 기쁨’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의 서문에 보면 이런 내용이 적여 있습니다.

“글쎄, 나는 인생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난 수십 년을 열심히 살아온 결과, 확실히 하나는 알게 되었다. 순간순간 가볍게 살지 않으면, 삶은 결국 무거워지고 만다는 단순한 진리를 터득했다. 와우.”

인생을 열심히 나름대로 살아온 작가의 결론은, 삶의 모든 문제를 바위처럼 무겁게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새털처럼 가볍게 여기며 살 때 진정한 삶의 기쁨을 누릴 수 있다고 합니다.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살아보니까…

고인이 되신 전 서강대 장영희 교수가 쓴‘살아보니까’라는 글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남의 삶에 그다지 관심이 많지 않다. 그래서 남을 쳐다볼 때는 부러워서든, 불쌍해서든 그저 호기심이나 구경 차원을 넘지 않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정말이지 명품 핸드백을 들고 다니든, 비닐봉지를 들고 다니든 중요한 것은 그 내용물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들의 가치 기준에 따라 내 목표를 세우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고,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이 얼마나 시간 낭비고, 그렇게 함으로써 내 가치를 깎아내리는 바보 같은 짓인 줄 알겠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더라.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더라. 예쁘고 잘 생긴 사람은 TV에서 보거나 거리에서 구경하면 되고, 내 실속 차리는 것이 더 중요하더라. 재미있게 공부해서 실력 쌓고, 진지하게 놀아서 경험 쌓고, 진정으로 남을 대해 덕을 쌓는 것이 결국 내 실속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내가 주는 친절과 사랑은 밑지는 적이 없더라. 소중한 사람을 만나는 것은 한 시간이 걸리고 그를 사랑하게 되는 것은 하루가 걸리지만 그를 잊어버리는 것은 일생이 걸린다는 말이더라.

내가 살아보니까 남의 마음속에 좋은 추억으로 남는 것만큼 보장된 투자는 없더라.”

장영희 교수 역시 살아보니까 어떤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가치 있는 삶인지 알겠더라고 말합니다.

분명한 기준이 있으면 ‘박쥐’가 되지 않는다

사람들 가운데 박쥐 같은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들에게 좀 유리하다 싶으면 새도 되었다 쥐도 되었다 합니다.

왜 박쥐가 새도 되었다가 쥐도 되었다 하는 것입니까? 분명한 자기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줏대가 없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자기기준이 있는 사람들은 어떤 유혹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세상을 멋지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자신만의 삶의 원칙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면 때론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바보스럽게 보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기준을 가진 사람들이 결국 성공하게 됩니다.

기준을 바로 세우라

어떤 모임이든지 모임의 조직을 구성하고 운영을 해 나가기 위해 회칙을 만듭니다. 회칙이란 공동체를 구성하는 사람들이 함께 지켜가야 할 원칙이고 기준입니다. 회칙을 정해놓고도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공동체는 제대로 운영될 수 없습니다. 해체되고 맙니다.

국가마다 국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도 대한민국 헌법이 있습니다. 대한민국에 판사들은 헌법을 기준으로 재판합니다. 헌법이 없다면 기준이 없기 때문에 제대로 재판을 할 수 없습니다.

사람이든 공동체든 나라든 기준을 바로 세우는 것은 너무 중요합니다. 기준이 바로 서면 기준대로 실행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기준을 가진 갈리오 총독

바울은 2차 전도여행 과정에서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 고린도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움도 있었지만, 1년 6개월 동안 바울은 하나님 말씀에 사로잡혀 힘 있게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어느 날 아무소리 없이 잠잠하던 유대인들이 아가야 총독으로 갈리오가 부임을 하자 일을 꾸미기 시작했습니다. 갈리오는 스페인의 뛰어난 수사학자이며 갑부인 세네카의 아들입니다.

그는 사람들로부터 독창적이며 청렴결백하고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평가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은 총독이 새로 부임하자 한 마음으로 바울의 선교도 막고 총독도 시험해 보기 위해 계략을 꾸밉니다.

유대인들은 바울을 붙잡아 법정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바울이 율법을 어기면서 하나님을 경외하라고 현혹한다고 하면서 고발합니다. 곧 유대인들은 바울이 불법 종교를 전하고 있다고 고발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들이 말도 안 되는 것을 가지고 고발을 하자, 그것에 대한 답변을 하고자 입을 열려 했습니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 갈리오는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바울이 입을 열고자 할 때에 갈리오가 유대인들에게 이르되 너희 유대인들아 만일 이것이 무슨 부정한 일이나 불량한 행동이었으면 내가 너희 말을 들어 주는 것이 옳거니와 만일 문제가 언어와 명칭과 너희 법에 관한 것이면 너희가 스스로 처리하라 나는 이러한 일에 재판장이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행 18:14-15)”.

이 말은 이런 의미입니다. 너희들이 고소한 사건이 민·형사상 문제라면 내가 재판을 해주겠지만, 그것이 아니라 너희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법이라면 스스로 처리하라는 것입니다.

갈리오는 이미 이들이 가지고 온 문제가 자신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유대인들 스스로 해결해야 문제를 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을 고발하기 위해 온 유대인들을 다 쫓아 버립니다.

갈리오는 분명한 기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분명한 기준이 있으니 그 기준대로 행동합니다. 분명한 기준이 있으니 흔들리지 않습니다.

기준을 가지지 못한 상관들

사도행전 16장에 보면 바울과 실라가 실컷 맞고 빌립보 감옥에 갇히는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전후 사정을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바울이 복음을 전하러 가는 곳마다 한 귀신들린 여종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그냥 따라다니면 괜찮을텐데, 따라다니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으로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행 16:17)”.

한두 번은 괜찮겠지만 계속 그렇게 하니, 바울이 너무 괴로워서 여종 속에 있는 귀신을 예수 이름으로 쫓아 버렸습니다. 귀신들린 여종을 고침을 받았으니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문제는 귀신들린 여종이 점을 쳐서 주인들에게 큰 수익을 올려 주고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수익을 올려주었는지, 귀신 들린 여종의 주인이 여러 명이나 되었습니다.

여종의 주인들은 일제히 일어나 바울을 고발했습니다. 고발하자 상관들은 사건의 경위가 어떻게 되었는지 자초지종도 알아보지 않고 바울의 옷을 찢어버리고 매질을 했습니다.

매질을 하고 발에 착고를 채워 감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상관들에게 바른 기준이 없으니, 그냥 분위기에 따라 행동합니다. 여종 주인들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들이 좋아하는 것을 했습니다.

바른 기준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개와 달리기를 해서 졌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말했습니다. “개만도 못한 분.”

이번에는 이 사람이 열심히 노력해서 속도를 높여 개와 같이 들어왔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개 같은 분.”

이번에 더 노력해서 이 사람이 개보다 더 빨리 들어왔습니다. 옆에 있는 사람이 무엇이라고 했을까요? “개보다 더한 분.”

우스갯소리지만,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있습니다. 기준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기준도 바른 기준을 세워놓는 것이 중요합니다. 잘못된 기준을 세워 놓고 아무리 노력해서 승리한다고 해도 의미 없는 싸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바른 기준=바른 가치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 바른 기준을 가지고 살기 원합니다. 중요한 것은 바른 기준을 어떻게 세우느냐 하는 겁니다.

많은 사람들이 앞부분에서 말씀드린 앤 라모트 씨와 장영희 교수처럼 살아보니까, ‘기준이 선다’는 말들을 많이 합니다. 곧 기준은 자신의 경험을 통해 얻어진다는 말입니다.

삶에서 바른 기준을 세운다는 것은 바른 가치관을 가진다는 말과 같습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가치관이 결국 삶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심겨진 가치관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세워지게 됩니다. 경험을 통해 형성이 됩니다. 지식을 통해 형성이 됩니다. 모방과 배움을 통해 형성이 되기도 합니다.

이것은 일반적인 사람들이 가치관을 가지는 하나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내가 알고도 때론 모르고도 세워진 가치관을 가지고 그것을 기준으로 삼아 세상을 살아갑니다.

그리스도인 삶의 기준은 성경이다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그리스도들이 가져야 하는 삶의 기준, 가치관은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것일까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친절하게도 이미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야 할 삶의 기준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바로 성경입니다. 성경을 캐논(canon)이라고 합니다. 캐논이란 잣대 혹은 고정된 기준점이라는 의미입니다. 곧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잣대요 기준이라는 말입니다.

왜 성경이 우리의 삶이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성경은 하나님 말씀이요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0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리라.”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변함이 없습니다. 변하는 것에 우리가 기준을 두면 우리는 그것이 변하는 대로 우리의 기준도 바꾸어야 합니다. 하나님 말씀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진리이기에, 우리가 삶의 기준으로 삼아야 합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모든 영역에 적용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특정 부분에만 기준을 삼아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 적용해야 합니다. 이 말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가치관을 자기고 그 가치관을 모든 영역에 적용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물질관도 성경적 물질관을 가져야 합니다. 직업관을 가지는 것도 성경적인 직업관을 가져야 합니다. 결혼관을 가지는 것도 성경적 결혼관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어떤 기준으로 살고 계십니까?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말씀을 기준으로 삼은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고 계십니까?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종교관만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면 안 됩니다. 주일날 교회 한 번 오는 것만 세상 사람들과 다르고 나머지 날들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진정한 크리스천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상의 삶 가운데 성경이 옳다고 말하는 것을 옳다고 말해야합니다. 성경이 죄라고 말할 때 그것을 죄라고 말해야 합니다. 성경이 하라고 명령하는 것을 실천해야 합니다. 반대로 성경이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하는 것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만만치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적 가치관과 세상적 가치관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충돌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충 대충 타협하며 살아가면 안 됩니다. 충돌이 일어나지만 우리는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 그 말씀이 우리를 책임지십니다.

말씀이 책임진다

예수님께서 밤새도록 물고기 한 마리 잡지 못하고 그물을 깁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가십니다. 베드로의 배를 이용해 말씀을 전하신 후, 느닷없이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갈릴리에서 잔뼈가 굵은 베테랑 어부인 베드로에게 목수 출신인 예수님이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베드로의 입장에서는 참으로 어이없는 일입니다.

제가 (대구) 남산동 살 때 ‘남산동 타짜’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별명을 가지게 된 것은 한때 제가 인형뽑기의 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인형뽑기 기계가 처음 나왔을 때, 저희 집은 온통이 인형천지였습니다. 남산 슈퍼마켓 사장이 제가 인형뽑기를 하러 가면, 일부러 인형을 뽑지 못하도록 오백 원짜리를 쌓아놓곤 했습니다.

인형뽑기의 달인인 제가 인형뽑기를 하고 있는데 인형뽑기를 조금 해본 사람이 달인인 제 옆에서 이렇게 저렇게 해보라고 훈수를 뜹니다. 그때 제가 어떤 행동을 취할까요? 특별한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냥 씩 한 번 웃어줍니다. 베드로의 입장은 저도 같은 입장입니다.

주님은 참으로 어이없는 일을 베드로에게 시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누가복음 5장 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우리들이 밤이 새도록 수고하였으되 잡은 것이 없지마는 말씀에 의지하여 내가 그물을 내리이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노력과 수고로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지만 주님께서 말씀하시니 그 말씀에 의지해 그물을 한 번 내려 보겠다고 합니다.

그물을 내렸을 때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를 잡았습니다. 저는 베드로가 이렇게 많은 고기를 잡는 것을 보면서 놀랐던 것은, 물고기도 주님께서 말씀하니까 그냥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원래 깊은 물에 물고기들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베드로에게 깊은 곳으로 가서 그물을 던지라고 하니까, 물고기들이 베드로가 그물 던질 그 곳에 집결합니다. 주님의 말씀이 떨어졌을 때 이미 물고기들은 집결해 있었습니다.

베드로가 물고기들을 집결한 곳에 그물을 던지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베드로 자신의 경험을 기준으로 삼아 주님의 말씀을 무시했다면, 그곳에 물고기가 집결해 있었어도 그 고기들은 베드로와 전혀 상관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말씀대로 살아가면, 그 말씀이 우리 인생을 책임집니다. 이것을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이 있는 사람은 세상적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지 않고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손해 보는 것 같지만 결국 그 말씀을 하신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말씀은 나침반이다

사막을 횡단할 때 지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침반입니다. 실제로 사막에는 지도가 필요 없을 수 있습니다. 사막에는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막에는 건물도 없습니다. 사막에는 바람이 불면 한 순간이 언덕이 사라지기도 하고 만들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이유로 지도가 필요 없습니다. 하지만 나침반을 꼭 있어야 합니다. 나침반은 항상 남과 북을 정확하게 알려주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리에 있어도 항상 남북을 정확하게 가르쳐 주기 때문에, 나침반을 보면서 길을 찾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나침반을 주셨습니다.

나침반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가는 데 바른 방향을 향해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늘 나침반인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우리 삶에 방향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삶의 기준도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십자가 외에 다른 방법이 없겠냐고,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기도를 끝내지 아니하셨습니다. ‘이것은 나의 뜻이고 아버지 뜻대로 해 달라’는 기도를 덧붙이셨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뜻이었기에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예수님 삶의 기준은 언제나 하나님 말씀이었고,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늘 그것을 선택하며 사셨습니다.

우리 선택도 주님도 동일해야 합니다.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고통이요 고난의 길입니다. 그럼에도 십자가를 지고 가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이런 질문을 하실 수도 있습니다. “목사님 저는 아직 하나님 말씀도 잘 모르고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그런 분들은 먼저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몰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삼아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말씀이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 삶의 기준을 예수님으로 삼으면 됩니다. 곧 우리 삶의 현장 가운데 어떤 일을 결정하거나 선택할 때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 까를 생각해보면 됩니다.

그러면 답이 나오게 됩니다. 답이 나오면 그것을 따라가면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사는 삶입니다.

기준이 바로 서면 흔들리지 않습니다. 우리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기준 가운데 우리가 바로 서 있으면, 세상 가운데 당당할 수 있습니다. 어떤 유혹에도 넘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수 있습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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