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구
▲김은구 트루스포럼 대표.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상대책위원장이 탈보수를 선언했다. 보수라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그에게 보수는 도대체 어떤 것일까?

사회적인 사람이라고 해서 사회주의자는 아니다. 마찬가지로 보수적인 사람이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중국에서는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진행할 때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보수파라 불렀다. 그들이 보수주의자는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보수적인 사람과 보수주의자를 구별하지 못한다. 김 위원장도 그런 듯하다. 그만의 문제는 아니다.

보수주의는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는 자세다. 그렇게 시작했다. 트루스포럼이 표방하는 보수주의는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출발하고 미국의 건국과 성장을 통해 다듬어진 사상이다. 근본적인 뿌리는 인류 사회에 보편적 가치를 제시한 성경적 세계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역사상 최초의 좌파인 프랑스 혁명가들은 인간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그에 기반한 유토피아를 추구했다. 그리고 앙시앙레짐, 기독교를 포함한 과거의 모든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질서를 세우려 했다. 교회를 파괴하고 이성의 신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자리에 이성을 올려 두고 숭배했다. 하지만 그들의 사회적 실험은 군중의 광기와 살육으로 점철된 광란이었고 최고가격제를 비롯한 강제적 평등정책은 시장을 파괴하고 프랑스의 경제를 무너뜨렸다.

보수주의가 어렵게 느껴지는 이유 중 하나는 프랑스혁명을 찬양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소위 '보수'라는 진영 안에 섞여 있기 때문이다. 왕정을 무너뜨리고 공화정을 시작한 최초의 자유주의 혁명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에 기여했다고 평가하는 것인데 이는 고전적인 의미의 자유주의자의 견해일 수는 있어도 보수주의자의 관점은 아니다.

보수주의의 기독교적 뿌리를 애써 외면하는 태도도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를 더욱 어렵게 한다. 왜냐하면 프랑스혁명에 대한 반성적 고찰에서 출발한 보수주의 철학은 인간이성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이성을 신으로 만들어버린 혁명가들과는 달리, 인간의 한계를 겸손히 인정하고 이성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영성을 인정하는 토대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보수주의는 인간 이성에 기반한 유토피아 건설을 추구하기 보다는 인간의 한계를 인식하고 과거의 경험과 정책의 결과를 존중하며 신중한 자세를 취한다. 과거의 경험을 존중하기 때문에 급격한 변화보다는 점진적 개혁을 지향한다. 하지만 보수주의를 그저 점진적 개혁 정도로 치부하는 것은 커다란 오산이다. 에드먼드 버크는 혁명적 방법으로만 제거될 수 있는 사회악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종교개혁을 지지했다.

보수주의의 가장 본질적인 질문은 과연 무엇을 보수할 것인가, 무엇을 보전하고 지킬 것인가의 문제다. 프랑스혁명에 반대하고 왕정을 수호하거나 덩샤오핑의 개혁개방에 반대하는 것이 보수주의가 아니다. 보수파, 보수적인 사람과 보수주의자를 구별하는 기준도 바로 여기에 있다.

보수주의의 본질적 가치는 성경에 기반한 인간관과 자유의 개념을 통해 도출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기에 존엄하고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는 최후의 심판이라는 책임을 전제한다. 그리고 이 자유의 본래적 목적은 거짓을 떠나 진리이신 하나님을 선택하고 누리는 것이다.

보수주의의 본질적 가치를 살피는 과정에서 보수주의가 태동한 서구문명의 근간인 성경적 세계관을 애써 외면한다면 이는 공허한 논의가 되고 만다. 기준은 항상 필요하기 마련이다. 보편적 가치라는 것도 이미 가치판단을 전제한 개념이고 상대주의의 늪에 빠지면 인간이 왜 존엄한지에 대해서도 답을 찾을 수 없다.

국가가 존재하는 이유는 이 본질적 가치를 수호함에 있다. 경제와 외교, 국방과 복지를 비롯한 모든 국가정책은 이러한 가치를 담아내야 한다. 공산혁명을 비난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존엄을 무산계급이라는 관념적 집단에만 국한하기 때문이고, 중국의 보수파를 보수주의자라 할 수 없는 것은 책임 있는 자유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자유롭고 건강한 시장을 지지하는 것은 그것이 근본적으로 빈곤의 문제를 해결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가능하게 하는 유일한 수단이라는 경험적 진실 때문이다. 현 정권의 사회주의적 포퓰리즘에 반대하는 것도, 기본소득제를 언급하는 김종인 위원장이 불안한 것도 같은 이유다.

히틀러는 독일의 국가사회주의를 소련의 국제사회주의와 구별하기 위해 스스로를 진보 우파라 칭했다. 스탈린도 히틀러를 극우라 불렀다. 좌우는 편리한 구분이지만 상대적인 개념이기에 특정한 가치를 담아내기에는 적절하지 않다. 그래서 트루스포럼은 보수주의를 표방한다.

대한민국에 과연 보수주의 정당이 존재하는가? 미래통합당이 보수주의 정당인가? 정치적 이해타산을 넘어서 인간의 존엄과 책임 있는 자유, 진실의 가치를 추상처럼 받들어 낼 정당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김종인 위원장에게 묻고 싶다.

김은구 대표(서울대 트루스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