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더우드
언더우드

이희갑 | 강수진 그림 | 생명의말씀사 | 280쪽 | 16,000원

언더우드 없이 한국 교회사는 쓰일 수 없다. 그만큼 중요한 선교사이다. 비록 언더우드가 쓴 기도문은 아니라지만, ‘언더우드 기도문’은 당시 언더우드의 심정을 잘 드러내고 있다.

“지금은 아무 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메마르고 가난한 땅, 나무 한 그루 청청하고 시원하게 자라 오르지 못하고 있는 땅에 저희들은 옮겨와 앉아 있습니다. …”

1885년 4월 5일은, 언더우드가 부인과 함께 인천 제물포항에 첫발을 디딘 날이다. 이날은 부활주일이었다. 언더우드는 부푼 꿈을 안고 조선에 발을 디뎠지만 푸트 공사는 조선의 사정을 이야기하며 입국을 극구 반대했다. 심지어 아펜젤러 부부까지 함께 온 것에 대해 이해할 수 없는 반응을 보였다.

그러나 뉴욕 주립대에서 과학과 의학을 공부한 이력이 있던 탓에, 알렌을 도와 광혜원에서 일할 수 있었다. 물론 선교는 절대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이 책은 소설 형식을 빌려 언더우드 일대기를 그렸다. 국어학자로 선교사들이 활약한 개화기 국어를 연구하고 있는 서울대 민현식 명예교수가 감수를 맡았다. 책 후면에 ‘언더우드의 생애와 선교 정신’이란 제목으로 감수자의 글을 실었다.

감수자가 밝힌 대로, 이 책은 일반인용이 아니라 청소년들에게 눈높이를 맞췄다. 동화 작가이면서 새문안교회 장로로 섬기는 저자는 5년 동안 언더우드에 대해 연구하면서 한 권의 책으로 담아냈다.

책 속의 그림은 새문안교회의 강수진 작가의 것이다. 친분이 있는 감수자와 저자, 그리고 그림 작가가 손을 잡은 것이다. 언더우드의 간략한 생애는 감수자의 글에 담아 놓았다.

책은 4부로 나뉘어져 있다. 1부에서는 영국에서의 출생과 미국으로의 이민, 그리고 조선으로 선교사로 떠나기까지의 과정을 담고 있다. 2부에서는 제중원에서 사역과 새문안교회를 설립하며 한국어를 배워 한국어 성경을 편찬하는 초기의 과정을 담았다.

3부에서는 본격적인 전도여행의 여정을 그린다. 마지막 4부는 ‘조선의 독립과 복음화를 위해’라는 제목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일제강점기 시절의 고통과 마지막 주님의 품에 안기기까지의 여정을 담았다.

부활절 아침, 인천 제물포에 첫 발을 디딘 언더우드는 광혜원에서 알렌을 도와 한국의 삶을 시작한다. 그의 나이 고작 25살이었다. 편안한 미국에서의 목회 사역을 포기하고 조선을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달려간다.

갑신정변으로 조선은 어지럽고 험악했다. 조선 선교사의 꿈이 시작된 건 신학대학 2학년 때 참석한 모임에서 들었던 이야기 때문이다. “동방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습니다.” 단지 그 말 때문이었다.

당시 미국인들에게 선교는 남미와 아프리카였고, 아시아는 인도가 전부였다. 언더우드 역시 인도만을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선’이라는 그 이름, 그리고 그 나라가 문호를 개방했다는 소식은 언더우드를 압도하고 말았다.

양화진 선교사 탁본 언더우드
▲(왼쪽 첫번째) 언더우드 선교사의 묘비명 탁본이 보인다.
당시 일본 명치학원 교사로 있었던 앨트먼 목사는 미국에 돌아와 신학생들에게 조선의 선교사로 누가 갈 것인가 도전하는 설교를 했다. 그 설교를 들은 언더우드는 처음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국 언더우드를 부르신다.

“난 당연히 인도로 갈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으로 인도에 가기 위해 몇 가지 특별한 준비를 해 놓았습니다. … ‘하나님은 조선에 보낼 누군가를 준비하셨을 것이다’라고만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1년이 지나도록 아무도 조선 선교사로 자원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어떤 교회도 선교사를 그곳에 보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 ‘네가 가면 어떻겠느냐?’ 나는 마음이 뜨거웠습니다(61쪽).”

참으로 사람의 일이란 알 수 없다. 미루고 또 미루지만, 조선에 대한 생각이 뇌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결국 주님께 두 손 들고 조선으로 가겠노라고 선언한다. 그렇게 알렌과 함께 제중원에서 첫 선교사역을 시작한다.

알렌이 선교보다 사람의 마음을 사는 것이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면, 언더우드는 선교 우선 주의였다. 이로 인해 알렌과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제중원에 고아들이 많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아원을 설립한다. 그곳에서 4살 소년 김규식을 만난다. 김규식은 언더우드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질 뿐 아니라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고, 후에 독립운동가로 활동한다. 대한민국임시 정부 부주석을 지냈고, 해방 후에는 입원위원 의장을 지낸다.

언더우드가 구세학당을 세운 이유는 수업을 빌미로 아이들에게 성경을 가르치려는 목적이었다. 외국인들에 대해 조선 정부는 의혹의 눈초리를 매섭게 보냈다.

1887년 9월 27일, 언더우드는 정동에 있는 자신의 집 사랑방에서 조선인 신자들과 함께 창립예배를 드린다. 새문안교회의 시작이었다.

비록 14명이라는 소수의 사람들이었지만 어두운 조선의 땅에 복음의 씨가 싹틀 작은 텃밭이 준비되고 있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정동에 자리하고 있어 ‘정동교회’로 불리다, 큰길가로 이사하면서 ‘새문안교회’로 바꾼다. 그 후 언더우드 선교사는 평생으로 한국을 위해 헌신한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언더우드의 생애는 이 책이 처음이다. 한국 교회사를 통해서 수도 없이 들었던 언더우드이지만, 그의 생애는 단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다.

연세대
▲연세대 본관 앞에 세워진 설립자 故 언더우드 선교사의 동상. ⓒ크투 DB
비록 언더우드의 장점만을 강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객관적 서술이 약하기는 하지만, 그의 생애를 빠르고 감동적으로 읽어 나가기에 부족함이 없다.

병원과 학교, 사회운동 등이 언더우드의 영향력 아래 시작되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한국 역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인가를 가늠하게 한다.

언더우드는 조선의 격동기에 선교를 시작하여 일제강점기를 맞이한다. 결국 1916년 10월 12일 오후 3시 즈음에 형 존이 있던 애틀랜타에서 숨을 거둔다. 그의 나이 고작 57세였다.

언더우드를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기꺼이 이 책을 권한다. 영웅적 형식을 빌어쓴 덕분에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언더우드의 영향을 받은 수많은 이들이 독립운동가요 개혁의 선봉에 섰던 것을 안다면, 한국의 초기 기독교가 얼마나 순수했는가를 잘 보여주는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책은 그리 길지 않으며, 한 번 읽기 시작하면 단숨에 마지막 장까지 달려간다. 교회를 사랑하는 성도들과 선물용으로 적합하다.

정현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인, 서평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