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 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행 1:1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셔서 왕위를 차지할 것으로 판단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좌우편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다른 제자들보다 먼저 부탁을 했습니다. 심지어 다른 제자들보다 더 높은 자리에 앉게 해달라고 청탁을 했습니다. 잠시 후 야고보와 요한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제자들은 매우 섭섭해하며 화를 내기까지 합니다(막 10:37).

하지만 예수님의 생각과 전혀 다른, 제자들을 보고 반문을 하십니다. “내가 마시는 잔을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내가 받는 세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잔과 세례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가리키는 것이었으며, 좌우편에 앉겠다는 것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감수하겠다는 뜻인데, 그래도 좌우편에 앉겠느냐는 주님의 말씀입니다(막 10:38).

하지만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시면 권력을 누릴 생각으로,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 밖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중국 우한으로부터 발병이 시작돼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많은 인류들이 질병으로 인한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심지어 수십만 명이 죽음에까지 이르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는 정말로 참혹한 현실이라 할 수 있습니다.

대한민국은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지만, 정부의 이상한 정책으로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했고, 끝내 200명 이상이 죽음을 맞았습니다.

이번 사태는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주었지만, 앞으로 변종 코로나에게 역시 속수무책으로 당할 것을 생각하면 왠지 불안하고 두렵기만 합니다.

우한 코로나19 사태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사회적 거리 두기, 생활 속 거리 두기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잠시 사태가 주춤해진 것 같았지만, 두려움과 불안의 생활은 고스란히 국민의 몫이 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인해 고통받으신 분들, 수고하시는 관계 기관들과 의료진들의 그 동안의 노고에, 주님의 놀라우신 은총과 사랑이 함께하시길 진심으로 축복하고 기도합니다. 특히 지난 주 성령강림주일을 맞이하여, 각 교회 성도들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였습니다.

우한 코로나19 사태로 삶의 현장은 무너졌고, 학교는 온라인 수업으로 대체됐으며, 교회 역시 온라인 예배를 드리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경험했습니다.

이럴 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오직 코로나19가 하루 속히 종식되어, 우리의 일상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희망입니다.

하지만 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좀처럼 이 땅에서 떠날 줄을 모릅니다. 만약 이대로 코로나가 지속된다고 가정하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위 성경 말씀을 보면, 주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제자들은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이 때 흰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신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통해 주님의 승천은 우리와의 영원한 이별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을 준비하시는 희망임을 알려줍니다.

그리고 오늘 주시는 복음 역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으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주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증명해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승천은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시 오시겠다는 희망의 약속이며, 우리를 하늘나라로 부르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겠다는 약속임을 굳게 믿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승천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에게 다시 오시는 주님을 맞이하는 새로운 희망입니다. 주님께서 주신 희망의 선물은, 우리가 겪고 있는 고통과 질병 앞에 결단코 굴복할 수 없다는 메시지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주님의 축복인 미래의 소망으로 살아가는 신앙인들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겪고 있는 코로나19 사태로 적그리스도들은 호기를 맞은 듯, 주님의 교회를 향하여 굴림하며 압제를 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럼에도 주님의 십자가 군병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감히 저들이 무엇이관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예배에 관해 간섭한다는 것입니까? 저들은 자신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교회를 탄압하여 무너뜨리려 하고 있습니다.

어쩌다가 이 지경까지 왔나 싶습니다. 하늘로 올라가신 주님이 다시 오신다는 재림의 역사를 우리 신앙인들의 희망인 의심하는 것일까요?

고흐
▲빈센트 반 고흐, ‘선한 사마리아인’.

교회 지도자들은 왜 하나님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일까요? 주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선한 사마리아인’을 보면, 그는 사회적 거리를 두지 않고 손수 상처를 싸매어 주며 돌봐 주었습니다.

하지만 제사장과 레위인은 사회적 거리를 두면서, 강도 만난 이웃을 피해 사회적 거리 두기를 실천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사마리아인 같이 거리를 두지 말고 좋은 이웃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해 주십니다. 그 사회적 거리 때문에,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신성한 예배에 흠집을 내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강팍했던 로마 시대에도 우리 믿음의 조상들은 어떠한 폭압에도 굴하지 않고 믿음을 지켜내었습니다. 그 결과 로마 제국 자체가 기독교를 국교로 삼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 아닙니까?

구약 시대에 다니엘과 요셉은 어떤 험한 고통과 난관에 부딪쳐도 끝까지 선한 믿음을 지켜냈던 결과, 영광의 승리를 경험하는 쾌거를 이루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좋은 모델이 아닐까요?

교회는 예배 시 성도간 자리에 있어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해야겠지만, 소외되고 가난하며 연약한 이웃들을 향해서는 거리를 두지 않고 더욱 가까이 다가가야 하겠습니다.

이 땅을 찾아온 많은 선교사들의 안타까운 순교의 결과로 하나님을 모르던 많은 우리 국민들이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들은 하나님을 전하면서 이 땅에 소망을 안겨주었습니다.

그 순교자들은 전염병 속에서도 이 땅에서 거리 두기를 하지 않았습니다. 무서운 전염병에도 굴하지 않고 직접 부딪히며, 이 땅에 복음의 사명을 감당한 것입니다.

한국교회 역시 많은 선교사들을 해외로 파송합니다. 그들이 험한 날씨와 환경, 그리고 낯선 미지의 땅에서 고통을 감내하며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걸림돌이 많다 해서 사회적 거리를 두며 그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면, 그들의 선교 역시 물거품이 되지 않을까요?

그리고 기독교는 정부의 정치 놀음에 휘말려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정치는 개인과 공동체의 자유와 평등을 실행하는 것이 목표이고, 경제는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것이 실현되는 사회를 ‘정의사회’라고 합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국민들이 가장 목말라 하는 사회 덕목은 바로 ‘정의’ 구현을 실천하는 일입니다. 나라의 위정자들은 걸핏하면 정의를 부르짖고 공명정대와 소통을 논하지만, 실천력 없는 구호만 외칠 뿐입니다. 그러다 보니 더 이상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는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현재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자유와 평등, 그리고 경제적 풍요로움이 불평등하며 부정의하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조국 사태, 울산시장 선거, 부산시장 성추행, 이용수 위안부 할머니 사태, 사전투표 문제와 불법 금품 착취 등 수많은 사건들이 미래를 더욱 어둡게 하고 있습니다.

국가 지도자들은 무엇보다 청렴해야 하고, 거짓말은 더욱 금물입니다. 정치인이 되기에 앞서 사회의 기본적인 룰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학력위조부터 논문표절, 부동산투기, 금품수수, 병역비리, 세금포탈 등 거짓과 위선의 탈을 쓰고 이 나라를 오염 속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오히려 갑질을 하고 있는 오늘의 실태를 보노라면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습니다. 정의가 사라지고 부정부패가 만연하는 것이 곧 국가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징조 아니겠습니까?

그것이 도를 넘어 이제는 기독교에 대한 탄압까지 시작됐습니다. 그런데도 대형교회를 비롯해 기독교 지도자들은 침묵하며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에 바쁘니 참으로 개탄스럽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지켜준다고 늘 입버릇처럼 단상에서 외치고 있지만, 정작 본인들은 두려움에 휩싸여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는 것은 아닌지요.

정부의 방침에 이만큼 협조했으면, 이제는 나서서 당당하게 외쳐야 할 시점이 아닌가 싶습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사회를 위한 해결책을 내놓아야 합니다. 이러한 고민을 깊게 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국민들은 이 나라가 사회주의로 가는 것 아닐까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한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더 이상 저들의 뜻이 목표에 더 가까이 다다르지 못하고 거리를 두도록 나서야 할 시기입니다. 십자가 군병들은 믿음으로 무장하여, 이 나라와 백성을 위해 거리 두기를 중지합시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우리를 애타게 기다리는 복음의 현장으로 더 가까이 다가갑시다. 하늘로 올라가신 그 모습대로 다시 오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고 기대하며, 담대히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