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사 수많은 신앙 갱신 운동은 여지없이
교회 내부 권한과 경제 평등 실현 노력 수반
초대교회, 온전한 평등사회 내부적 수립해

넷플릭스 설국열차
▲TV 시리즈 <설국열차>의 최하층 계급을 대표하는 레이튼 형사(데이비드 딕스 분)와 최상층 계급을 대표하는 멜라니 카빌(제니퍼 코넬리 분).
이번 박욱주 박사님의‘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에서는 지난 주에 이어 넷플릭스 TV 시리즈로 방영중인 <설국열차>에 대해 분석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를 리메이크한 이 드라마는 제니퍼 코넬리, 다비드 디그스, 앨리슨 라이트, 믹키 섬너, 수잔 박 등이 출연합니다. -편집자 주

◈인류와 평등: 평등 사회를 향한 인류 자체적 가능성의 결여

프랑스의 그래픽 노블로부터 시작해 봉준호 감독의 실사판 영화를 거쳐 최근 리메이크된 TV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설국열차>는 종말 앞에 놓인 인류의 생존 본능과 통속적 사회성을 집약해서 보여주는 작품이다.

인류 전체 인구가 멸종 직전 수준으로 줄어들고, 파괴된 지구 생태가 언제 회복될지, 아니 회복될 수는 있을지 불투명한, 반쯤은 절망적인 상태에서 인류가 구성한 사회가 보여줄 수 있는 비극적인 모습을 매우 현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설국열차>에 펼쳐진 인류 마지막의 사회는 처참하기 그지없다. 극단적으로 불공평한 권력구도는 말할 것도 없고, 줄어들어 가는 자원과 희박해져 가는 생존 기회를 앞에 두고 열차 구성원 전체는 토마스 홉스가 말한 ‘자연상태’, 즉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 달려가고 있다. 한 마디로 파국을 목전에 두고 있는 것이다.

TV 시리즈 <설국열차>는 이 상황을 타개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 정의와 인권 존중의 정신을 되살릴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열차 내 최하층 계급인 꼬리칸 사람들의 공동체 의식에 있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억압받는 사람들이야말로 그 저열한 억압을 무너뜨릴 의지를 갖는다는 계급혁명적 사고가 작품 안에 여실하게 반영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설국열차>는 다분히 계몽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정신을 담은 작품이다. 인류의 종말이 닥쳐오더라도, 보통 사람들의 집단적 선의지와 공동체적 혁명 실천으로 생존과 번영, 정의를 실현할 수 있다는 생각, 인간의 자력구제 가능성에 대한 근본적인 신뢰가 이 작품의 서사 밑바닥에 깔려 있다.

이처럼 TV 시리즈 <설국열차>가 ‘근대적’인 인간이해를 바탕으로 서사를 펼쳐나가는 반면,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영화판 <설국열차>는 사상적 측면으로 보면 오히려 TV 시리즈보다 훨씬 ‘현대적’이고 염세적인 인간 이해를 반영하고 있다.

영화판 <설국열차>는 꼬리칸 사람들의 평등을 위한 열망과 공동체 정신이 실은 열차 내 계급질서 유지를 위한 하나의 조작된 방편이라는 사실을 폭로한다.

이 서사 요소는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 지배욕과 불평등의 실존적-역사적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는 감독의 생각을 반영한다.

소수의 개인은 죄악과 억압의 굴레를 벗어나려 몸부림칠 수 있지만, 인류 전체로 봐서는 비열하리만치 부당한 생존 투쟁과 그로 말미암는 적개심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영화 <설국열차>는 열차 자체의 전복과 인류 멸절(두 명의 어린 생존자 외에는 모두 사망)이 아니고서는 그 원죄의 굴레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영화의 괴멸적 결말을 통해 시사하고 있다.

넷플릭스 설국열차
▲피지배층의 고결한 투쟁 지도자인줄 알았던 길리엄(존 허트 분)이 실은 열차의 지배자 윌포드의 협력자였다는 영화 <설국열차>의 서사는 현실의 인간사회 계급투쟁 역시 허망한 본질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해 준다.
기독교적 관점으로는 TV 시리즈보다 영화판 <설국열차>의 서사가 보다 적절하고 개연성 있는 인간이해를 담아내고 있다고 보여진다. 기독교적 인류 이해 속에는 두 가지의 사회성 개념이 속해 있다.

하나는 신앙이 아니라 인류 스스로의 관념적인 인간가치 규정에 근거한 세속적-통속적 사회성이고, 다른 하나는 성경 계시를 믿는 신앙에 입각한 인간가치 규정에 근거한 기독교적-근원적 사회성이다.

◈인류와 사회: 진정한 평등사회는 신앙의 공동체인 교회

세속적-통속적 사회성 개념을 특징짓는 것은 당연히 자연상태의 파괴적이고 억압적인 인간관계라는 조건과 이를 극복하려는 계급투쟁, 그리고 인류의 손으로 직접 일궈내는 평등을 향한 변증법적 지양과 진보의 미래 등이다.

이 개념이 본격적으로 사람들의 마음에 자리잡기 시작한 것은 18-19세기 서구에서 사회학이 처음 등장하여 인류 사회와 역사에 대한 반성이 사회과학적으로 체계화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이다.

그 이전까지 서구에서 인류의 사회성 개념은 주로 기독교적 공동체 관점에서 사고되어 왔다. 물론 고대, 중세, 근대 초기까지는 사회학이라는 고도로 발전된 학문적 도구가 존재하지 않았지만, 세속 정치와 교회 사이의 관계 윤리, 그리고 교회 내 공동체 윤리를 통해 인류 본연의 사회성을 파악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지속되어 왔다.

현대에 들어와 이 전통적인 기독교적 사회성 개념을 신학적으로 정교하게 다듬어 부활시킨 이들이 있는데, 이 가운데는 독일의 목회자이자 신학자, 종교철학자인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effer)가 포함되어 있다.

히틀러 암살 시도에 참여했다가 나치 독일에 의해 처형당한 행적으로 유명하긴 하지만, 신학적인 업적도 그에 못지않게 대단한 수준이라는 평가를 받는 인물이다.

본회퍼의 대표적 신학사상은 인간 인격의 선험적이고 근원적인 관계적 본질, 사회적 본질에 대한 깊이 있는 관찰과 사고에 바탕을 둔 교회론이다.

그는 창조 시 인간에게 고등한 인격이 부여된 근본적인 이유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맺음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고 밝힌다.

그러나 이 가능성은 원죄에 의해, 인간의 죄성에 의해 훼손되었다. 그리하여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저버리고 고독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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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시리즈 <설국열차>가 인류의 타락한 사회성을 극복하기 위해 유일한 대안으로 제시한 하층민, 억압받는 이들의 공동체 의식. 분명 감동적인 측면이 있기는 하지만, 기독교적 관점으로 볼 때 인간 인격이 근본적으로 처해 있는 타락한 고독의 상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주지는 못한다.
이 고독은 단지 혼자 있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고독은 결여이고, 분노이고, 지배를 향한 집착이 된다. 하나님과의 관계 상실은 곧 인간 인격의 존재 근거의 상실과 결여이다.

이렇게 망가지고 타락하고 결여된 자신을 절감하는 인격은 스스로의 온전하지 못함에 분노하게 된다. 그리고 이 분노를 타자를 지배하고 억압하고 농락함으로써 해소하려 한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은혜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기 전까지 이 부정적 충동들은 결코 해소될 수 없다. 이것들은 오직 이 땅에 존재하고 있는 그리스도의 몸, 교회 공동체를 통해 비로소 근본적인 해결에 이를 수 있다. 이것이 본회퍼가 주장하는 기독교적 사회성 고찰의 요점이다.

본회퍼의 사회성 논의는 실제 교회사의 사례들을 근거로 삼는 실증적인 논의이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거듭난 공동체가 계급 투쟁의 굴레를 제대로 벗어난 사례들은 비록 한시적이긴 해도 교회사 전반에 걸쳐 목격된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었던”, 그러면서도 “그 중에 핍절한 사람이 없었던(행 4:32-34)”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들 수 있다.

간혹 초대 예루살렘 교회를 원시 공산주의의 시초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초대교회 내부의 계급적, 경제적 평등을 공산주의 관점으로 평가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를 낳는다.

초대교회의 평등은 내세를 향한, 하나님 나라를 향한 선의의 경쟁을 전제삼는 것이었던 데 반해, 공산주의적 평등은 철저히 유물론에 기반을 둔 개념이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설국열차
▲TV 시리즈 <설국열차>의 계급질서를 유지하는 상위 행정가들. 체계화된 인류의 사회적 죄성과 지배욕을 떠받들기 위해 봉사하고 있다.
초대교회는 그리스도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이들이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를 회복함으로써 세속 사회의 부조리와 불평등에 대한 상실감, 분노, 집착을 완전히 극복할 수 있었던 공동체였다. 이 때문에 역사상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수준의 온전한 평등사회를 내부적으로 수립할 수 있었다.

물론 이런 신앙의 전통과 정신은 자주 약화되고 후퇴되곤 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기독교회는 항상 이 정신을 되살리기 위해, 온전한 신앙의 사회성을 회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 왔다.

수많은 신앙 갱신 운동은 거의 여지없이 교회 내부적 권한과 경제의 평등 실현 노력을 수반했는데, 중세 초 수도원 운동과 루터-칼빈의 종교개혁 운동을 그 대표적인 사례로 들 수 있다.

인간의 사회성은 오로지 신앙에 근거해서만 정의, 화해, 돌봄, 나눔의 사회성으로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기독교적 관점으로 본다면, TV 시리즈 <설국열차>의 서사 진행방향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마치 ‘순수한’ 계급 투쟁과 혁명이 타락해버린 사회성의 실태를 회복해줄 것처럼 이야기를 끌어가고 있는데, 이는 인간에 대한 ‘순진한’, 그러나 비현실적인 신뢰를 반영할 뿐이다.

그렇지만 한편으로는 종말 직전에 다가간 인류가 어떤 사회를 구축할지, 여전히 죄성과 욕망과 내부투쟁에 골몰하는 가운데 신음하며, 종말에 대한 불안을 떨치려 말초적 욕망과 자극에 의존하고 있을 것이라는 전망을 보여준 점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높게 평가할 만하다.

초대교회, 초기 수도원 운동, 그리고 종교개혁자들이 입증했고, 본회퍼가 되살리고자 노력했던 신앙의 온전한 사회성 개념, 이 개념을 오늘날 교회들이 강력히 주장할 수 있으려면 교회 내부의 이전투구 행태와 계급주의적 권위의식을 먼저 타파해야 할 것이다.

이 힘은 우선적으로 하나님과 성도들의 깊은 인격적 관계로부터 나올 것이다.

신실한 신자들로 이루어진 교회들은 반드시 <설국열차>라는 알레고리 속에 투영되고 있는 투쟁적 사회성의 깊은 수렁을 벗어나 있어야 한다.

바로 이런 신앙의 기준을 일깨워 준다는 점에서, TV 시리즈 <설국열차>의 기독교적 평가 의의를 찾을 수 있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