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4장 39-42절

십자가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과 용서의 의미를 깊이 이해하고 설명해준다면 가장 강력한 전도의 메시지가 될 것이다. ⓒAaron Burden on Unsplash
본문은 수가성 우물가 사건이 마무리되는 부분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주님은 우연히 사마리아 여인과 만났습니다. 그 만남에서 많은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우물물에서 영생수에 대한 이야기, 예배에 대한 이야기, 구원에 대한 이야기, 전도에 대한 이야기, 추수에 대한 이야기 등이 그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오늘은 수가성 우울가 모든 이야기의 결말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사마리아인의 심령 변화’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여인의 증언으로 가능했다

“여자의 말이 내가 행한 모든 것을 그가 말하였던 것을 증언하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를 믿는지라(39절)”.

수가 마을에 당도하신 주님은 많은 사람을 전도하는 결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이는 사마리아 여인의 수고의 결과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에서 주님을 만난 이 여인은 혼자만 알지 않고, 동네 사람들에게 전했기 때문입니다.

그 여인은 “우리가 기다리는 그 메시아를 내가 만났으니 와서 보라”고 확신 있게 전했습니다. 여기서 은혜의 사역은 반드시 전해야 한다는 원리를 깨닫게 됩니다. 전하지 않으면 은혜의 역사가 중단되기 때문입니다. 물은 흘러야 그 역할이 더 가치 있게 되는 원리입니다.

얼마나 확신을 갖고 전했으면, 사마리아인들이 그리스도를 믿게 됐을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증언의 위력을 보게 됩니다. 증언(證言)이란 법적 용어입니다. 증인이 재판에 출두해 사실적인 말로 행하는 진술입니다. 이 증언은 그대로 법적인 효력을 갖기 때문에 엄청난 위력이 있습니다. 반면 거짓으로 잘못 진술하면, 상응하는 벌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법정에서는 반드시 거짓 없이 말을 해야 하기에, ‘증인 선서’를 하게 됩니다. 선서에는 “거짓을 말하면 그에 상응하는 벌을 받겠다”는 것도 들어 있습니다. 아마 여인은 엄청난 확신으로, 아니 목숨을 다 바쳐 증언을 했으리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했다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머물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머무시매 예수의 말씀으로 인해서 믿는 사람들이 더욱 많아(40-41절)”.

많은 사마리아인들이 주님을 믿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갑자기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갈릴리로 가야 하는 여행길이라 여유가 없으실텐데, 이틀 더 머무셨습니다. 이는 복음을 흔쾌히 받아들인 사마리아인 때문에 기뻐서였을 것입니다. 이는 놀라운 변화인데, 바로 이름 없는 한 여인의 증언 덕분이었습니다.

여기서 증언의 보이지 않는 놀라운 위력을 깨닫게 됩니다. 복음을 증언하는 사역에는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전하는 자도, 듣는 자도 사람이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성령이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때로 어수룩하게 전하거나 매끄럽게 전하지 못한다 해도, 진실함이 있으면 하나님의 성령으로 감동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마리아아인들이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아마 여인도 “살다보니 이런 일도 있구나!” 하고 경험했을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놀라운 결과가 일어난다는 사실을 암시합니다. 나아가 비단 하나님의 사역뿐 아니라, 옳은 일을 하는데 반드시 보이지 않는 힘이 작용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런 사실을 믿고, 옳은 일을 행해야 합니다.

3. 사마리아인들은 내적 체험을 가졌다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로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라 하였더라(42절)”.

사마리아인은 놀라운 심령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변화는 단순히 여인으로부터 전해들은 말이 아니라, 분명한 확신을 갖게 됐다고 고백하게 됩니다.

액면 그대로 보면, 속이 깊지 않은 사마리아인들이 기어히 인격의 미성숙성을 드러내는 측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놀라운 심령의 변화가 미천한 여인 때문이 아니라는 자존심을 보여주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여인의 공로와 자랑을 축소시키고 과장하려는 의도를 봉쇄(封鎖)하려는 빈정거림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마리아인들은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줄 앎이니라”고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어쨌든 이는 내적 체험을 의미합니다. 내적 체험이란 모든 언어적 표현과 논리를 초월하는 영적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내적 체험이 일반적 의식의 경험을 뛰어넘어 영혼과 육체가 하나 되는 신앙의 핵심이 되는 이유입니다.

가톨릭 수도사였던 루터가 가톨릭 교리에 반기를 든 것은 죽음을 의미함에도 왜 그렇게 행동했을까 하는 의문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루터는 “이것이 ‘나의 내적 체험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밖에 없는 사건이 발생한 결과였다”고 말했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가는 인생의 길에 사람의 마음이 변화되는데 좋은 역할을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것은 영혼을 치료하는 치유의 사역자가 되는 역할입니다. 이렇게 하여 넘치는 복을 받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주님을 증언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성령을 체험하며 살게 하소서, 더 나아가 신앙의 내적인 체험을 갖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인생을 살면서 주님 증거하기를 노력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