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사도행전 3장 1-10절

프로 그리고 단점 좋은 나쁜 처럼 싫어합니다 비교 의견 엄지손가락 최대 아래로 좋아요
▲있음에 주목하는가, 없음에 주목하는가? ⓒ픽사베이
비교의식이 열등감의 원인이다

세상에는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 가하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 사전에서는 열등감을 이렇게 정의한다. ‘남보다 못하거나 부족하다는 생각에서 오는 느낌’.

사람들이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가 비교의식 때문이다. 사람은 어려서부터 부모나 형제나 친구들과 비교하면서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서울대학교 학생들은 열등감이 없을 것만 같다. 과연 그럴까? 서울대학교도 과마다 들어가는 점수가 다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어야만 좋은 과를 들어갈 수 있다.

서울대학교 학생들 가운데도 좋은 과에 들어간 학생들과 들어가지 못한 자신을 비교해서 열등감을 갖는 학생이 있다.

그러면 제일 좋은 과에 들어간 학생들은 열등감이 없을까? 이들도 자신들보다 더 나은 사람과 비교하면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결국 다른 사람과의 비교를 통해 열등감을 갖는다는 것은, 자신에게 있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없는 것을 주목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에게는 있고 나에게는 없는 것에 주목하면 열등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에게 있는 것을 주목하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다.

‘있음’에 주목한 들꽃

어떤 사람이 여러 종류의 꽃과 나무를 심었다. 열심히 물을 주고 정성을 다해 가꾸었지만 시간이 지나도 꽃이 피지 않았다. 시들어가는 꽃과 나무에게 정원의 주인이 물었다.
“너희는 왜 이렇게 시들어가니?”

은행나무가 말했다. “소나무처럼 높은 기품이 없기 때문이랍니다.”

옆에 있던 소나무도 힘없이 대답했다. “저도 자신이 없어요. 사과나무처럼 맛있는 열매를 맺을 수 없잖아요.”

사과나무도 소나무의 이야기를 듣고 거들었다. “저는 해바라기처럼 크고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없어요.”

그때였다. 축 늘어진 나무들 사이로 꽃을 피운 들꽃 하나가 보였다. 주인이 물었다. “모두들 시들어 가는데 너만 아름다운 꽃을 피웠구나. 비결이 뭐니?”

들꽃이 살포시 웃으며 답했다. “저에게는 작고 소박한 멋이 있답니다. 이런 멋이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도 알고 있지요. 이런 제 모습이 사랑스럽고 좋아요. 예쁜 꽃을 피울 수 있어, 저는 너무 행복하답니다.”

다른 나무들과 꽃들은 자신에게 없는 것에 주목했다. 하지만 들꽃은 없는 것에 주목하지 않고, 있는 것에 주목했다. 자신에게 있는 것을 주목했기에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행복하게 살 수 있었다.

꿈에 주목한 스티븐 호킹

왼쪽 손가락 두 개와 얼굴 근육 일부분밖에 움직일 수 없는 대학생이 있었다. 몇 달 전 루게릭병이라는 희귀병에 걸려 반 식물인간이 된 이 대학생은 남은 평생 휠체어에서 살아가야 한다. 잘못하면 1, 2년 사이에 죽을 수도 있다는 판정까지 받았다.

갑자기 닥쳐온 지옥 같은 불행 앞에서도 대학생은 웃으면서 생활했다. 그는 주위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공부에 매진하며서 이렇게 말했다. “내 몸은 매일 빠르게 죽어가고 있지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 박사 학위를 따고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이 있기에 나에게는 희망이 있습니다.”

1977년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에 강의를 마친 한 교수가 학생들의 경외심 어린 기립박수를 받으며 교수실로 향했다. 교수의 이름은 스티븐 호킹이다. 14년 전 루게릭병에 걸려 반 식물인간이 되고서도 “나에게도 꿈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던 그 대학생이었다.

스티븐 호킹은 휠체어에 앉게 된 뒤 박사 학위를 땄다. 그 이후 영국 학술원 최연소 회원이 되었고, 캠브리지 대학 중력 물리학 정교수가 되었다.

그는 루게릭병에 걸렸어도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주목하지 않았다. 자신이 가진 꿈에 주목했고 그 꿈대로 대학교수가 되었다.

당신은 어디에 주목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는 내가 가지지 못한 ‘없음’이 아니라 내가 가지고 있는 ‘있음’에 주목하며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능력이다

성전 미문에서 구걸하는 한 지제장애인이 있었다. 이 장애인은 날 때부터 한 번도 걸어보지 못한 사람이었다. 베드로와 요한은 정해진 기도시간인 제 구시 기도시간에 우리나라 시간으로 오후 3시에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고 있었다.

이들을 본 장애인은 한 푼 얻을까하여 불쌍한 목소리로 구걸한다. ‘한 푼 줍쇼, 한 푼 줍쇼.’ 베드로와 요한은 구걸을 하는 장애인 앞에 멈춰 섰다. 멈춘 발걸음을 보고 장애인은 한 푼 얻을 것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었다.

장애인 앞에 멈추어 선 베드로는 한 푼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난데없이 우리를 보라고 했다. 장애인은 당황스러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별 말 없이 동전만 던져주고 갔다. 그런데 자신들을 쳐다보라고 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당황스러웠지만, 혹 장애인은 이 사람들이 동전이 아니라 지폐를 주려고 하는가라는 기대를 가지고 그들을 바라본다.

베드로는 자신을 바라보는 장애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행3 :6)”.

베드로가 ‘은과 금은 내게 없다’고 했을 때, 장애인은 실망하였을 것이다. 은과 금 말고 장애인에게 도움이 될 만한 것은 없는데 은과 금이 없다고 하니 장애인에게 있어서 베드로와 요한은 별 볼일 없는 사람이다.

베드로는 이런 인간의 욕망을 채워줄 은과 금은 없지만,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하였다. 이 말은 그 누구도 감히 생각하지 못한 놀라운 선포다. 그런 기적을 바라기는 했지만, 그것이 현실로 이루어지리라고는 아무도 믿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나면서 한 번도 걷지 못했던 사람이 일어나 걸을 수 있으리라고 상상도 못했다.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을 베드로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선포하고 있다.

베드로는 자신에게 없는 것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있는 것을 생각했다. 주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생각했다.

베드로에게 은과 금은 없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주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것이 가장 큰 능력이다.

세상 사람들은 은금이 능력이라고 말한다. 권력이 능력이라고 말한다. 지식이 능력이라고 말한다. 세상이 말하는 능력으로는 한 번도 걸어 보지 못한 장애인을 일으켜 세우지 못한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장애인을 일으켜 세웠다.

하나님은 이미 주신 것을 통해 일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려고 할 때 내게 있는 것보다 없는 것을 생각할 때 많다. 없는 것을 핑계 되며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모세가 80세가 되었을 때 출애굽의 지도자로 부르셨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모세는 온갖 핑계를 다 되면서 응할 수 없다고 했다.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한다.

이런 모세에게 하나님께서는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모세의 손에는 양을 치던 지팡이가 있었다. 모세에게 지팡이를 던지라고 하신다.

지팡이가 땅에 떨어지니 뱀이 되었다. 모세가 다시 뱀의 꼬리를 잡았을 때 뱀은 지팡이로 변했다. 모세는 자신의 ‘없음’을 핑계 삼았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있는 것을 사용하였다.

모세가 결국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너는 이 지팡이를 손에 잡고 이것으로 이적을 행할지니라(출 4:17)”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20절에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모세가 그의 아내와 아들들을 나귀에 태우고 애굽으로 돌아가는데 모세가 하나님의 지팡이를 손에 잡았더라”.

미디안 광야에서 모세의 손에 들린 것은 양을 치는 지팡이었다. 하나님께서 그 지팡이를 하나님의 지팡이로 만드셨다. 기적을 행하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통해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통해 일하신다. 하나님이 이미 주신 것을 통하여 일하신다.

어려울수록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코로나19라는 바이러스로 온 세계가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 어려운 상황 가운데 우리는 ‘없음’에 주목하는 것이 아니라,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생각해 보라. 우리는 없는 것 빼고 다 가진 사람이다. 있는 것 빼고 다 없는 사람이다. 어디를 주목하느냐는 우리의 몫이다.

‘없음’에 주목하면, 원망과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좌절하게 된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다. 돈이 남들보다 없는데 돈에만 주목하면, 삶이 힘들 수밖에 없다. 건강이 약한데 건강에만 집착하면, 불평이 나올 수밖에 없다. 말을 잘 못하는데 그것에만 집중하면, 스트레스가 계속 쌓일 수밖에 없다.

어려울수록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주목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은 세상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가 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은 이미 세상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소중한 것을 주셨다. 베드로에게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주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병든 자를 치유하는 능력이 있다. 귀신을 쫓아내는 능력이 있다. 기도의 응답에 능력이 있다. 예수님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 구하면 응답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뿐 아니라 예수님 자체를 가졌다. 예수님을 구주 영접한 사람에게는 그 속에 예수님이 거하신다.

이뿐인가? 구원받은 백성으로 장차 천국을 기업으로 받을 사람들이다. 어떤 사람이 1조원을 준다 한들, 구원과 바꾸겠는가?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천국의 시민권과 바꾸겠는가?

이 외에도 알몸으로 태어나서 이 땅 가운데 지금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다. 이미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을 생각해 보라.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우리는 이 귀한 것들을 이미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주목하지 못한 채 ‘없음’에 주목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나의 시선이 ‘없음’을 향하고 있다면, ‘있음’로 방향을 틀어야 한다.

‘있음’에 주목하면 만족한 삶을 살 수 있다

우리가 ‘없음’에 주목하면 불행한 삶을 살게 되지만, ‘있음’에 주목하면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있음’에 주목하면 행복한 삶을 살 뿐 아니라 얻은 유익이 많다.

첫째, ‘있음’에 주목하면 만족하는 삶을 살게 된다.

자오스린의 《사람답게 산다는 것》에 보면, 이런 글귀가 있다. “왜 항상 행복하지 않을까? 우리가 바라는 것이 행복해지는 것이 아니라 남보다 행복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자오스린은 사람들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에 대해, 정곡을 찌르고 있다. 남보다 행복해지기를 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공감이 되지 않는가?

결국 자오스린은 사람의 욕심이 행복하지 못하게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욕심은 끝이 없다. 그 어떤 것으로도 욕심을 채울 수 없다.

미국 시카고 어떤 사람이 빈민촌에서 여러 해 동안 나라에서 주는 돈을 받으면서 가난하게 살았다. 그가 죽은 다음 주머니를 뒤져보니, 그 속에서 안전 저금 상자의 열쇠가 나왔다. 그 상자를 열어보았더니 나라에서 구호를 받던 사람이 100만 달러나 되는 재산을 소유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100만 달러면 우리나라 돈으로 10억원 넘는 돈이다. 10억원 넘는 돈을 가진 사람이 왜 구호를 받으며 살았을까? 욕심 때문이었다.

욕심을 이기는 길은 자족이다. 바울은 이렇게 말씀한다.“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 4:11-13)”.

풍요로울 때, 배부를 때 자족하는 것은 쉽다. 하지만 궁핍할 때, 배고플 때는 어렵다. 결핍을 느낄 때 자족하는 것은 어렵다.

바울은 결핍의 상태에도 자족했다. 그 이유는 결핍의 상태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환경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바울의 시선이 하나님을 향했을 때, 결핍의 상태에도 자족할 수 있었다. 바울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고백은 어떤 상황에도 자족할 수 있다는 고백이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차지하는 이야기 기록되어 있다. 아합은 북이스라엘의 왕이었다. 가질 것 다 가지고 누릴 것 다 누리고 있는 사람이다.

이런 아합왕이 나봇의 포도원이 얼마나 아름답게 보였는지 모르지만 탐이 났다. 아합은 나봇에게 그 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주겠다고 했다. 값으로 쳐 달라고 하면 그에 맞는 값을 돈으로 지불하겠다고 했다.

나봇은 자신의 포도원이 조상대대로 내려오는 유산이기에 팔 수 없다고 했다. 아합은 이것 때문에 남자가 쫀쫀하게 침상에 누워 밥도 먹지 않았다. 이세벨은 이 모습을 보고 나봇에게 누명을 씌워 죽이고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아 아합에게 준다.

아합은 ‘있음’에 주목하지 않고 ‘없음’에 주목했다. ‘없음’에 주목하니 아무리 많은 것을 가져도 만족할 수 없었다. 우리는 바울처럼 자족하는 것을 배워야 한다. ‘없음’이 아니라 ‘있음’에 주목해야 한다.

‘있음’에 주목하면 감사할 수 있다

둘째, 감사할 수 있다.

‘없음’에 주목하면 불평하지만, ‘있음’에 주목하면 감사할 수 있다

대한민국에서 새마을 운동을 도입한 농촌청소년미래재단 이사장인 류태영 박사는 어린 시절 힘든 시간을 보냈다.

한 번은 초등학교 6학년 때 어떤 집에 신문을 넣고 돌아서는데 쓰레기통에 밥 덩어리가 버려져 있는 것을 보았다. 어린 태영이는 너무 배가 고파 참지 못하고 둘레둘레 주위를 살펴보다 얼른 그것을 집어들었다.

밥에 묻은 연탄재와 모래를 떼어내고 그 밥을 다 먹어 치웠다.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그 때 어린 태영이는 쓰레기통의 밥이나마 먹을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렸다고 한다.

쓰레기통에 버리진 밥을 먹으면서도 감사할 수 있었던 것은 어린 태영이가 자신의 환경이 아니라 먹을 수 있음에 주목했기 때문이다.

전광 목사님의 《감사가 내 인생의 답이다》를 보면, 손양원 목사님의 설교집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손양원 목사님의 설교집에는 ‘감사하라’는 내용의 글들로 가득하다고 한다. 손양원 목사님이 설교한 대상은 나병 환자들이었다. 그들을 향해 감사할 것을 말씀하셨다.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나병 환자들이 감사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있겠는가? 손양원 목사님이 그들에게 전한 감사는 이런 것이었다.

“물마시면서 감사하라. 숨 쉬면서 감사하라. 햇빛 주신 은혜를 감사하라. 옥토를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 죽을죄에서 살려주신 은혜에 감사하라. 지금까지 생명을 연장시켜 주신 은혜에 감사하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를 보장해 주신 것을 감사하라.”

손양원 목사님은 나병 환자들에게 자신들이 지금 누리고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라고 말하고 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 3:17)”.

하박국 선지자는 ‘없음’에 주목하지 않고 하나님께 주목했다. 하나님께서 주목했기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감사할 수 있었다. 우리도 다른 것 다 없어도, 하나님께 주목하면 감사할 수 있다.

매튜 헨리는 이런 말을 했다. “감사는 더하기와 같아서 모든 것에 감사하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축복이 더해진다. 어떤 일이든지, 어디에서든지 감사하면 플러스의 축복이 찾아온다. 그러나 반대로 원망과 불평은 빼기와 같아서 있는 것까지 빼앗기고 없어진다.”

우리가 ‘있음’에 주목해서 감사하면 하나님께서는 플러스의 축복을 주신다.

‘있음’에 주목하면 부자가 된다

셋째, 부자가 된다.

‘없음’에 주목하면 가난한 사람이 되지만, ‘있음’에 주목하면 부자가 된다.‘있음’에 주목하면 내가 가진 것이 많다고 생각하기에 마음으로 부자가 된다.

마음으로 부자만 되는 것이 실제 부자도 된다. 《더 해빙》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홍주연 기자가 부자들의 구루라고 불리는 이서윤을 만나 부자가 되는 방법을 알아가는 내용을 기록한 것이다.

이 책의 부제는‘부와 행운을 끌어당기는 힘’이다. 이 책에서 이서윤은 부자가 되는 길은 해빙(having)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서윤은 ‘해빙’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해빙은 지금 가지고 있음을 느끼는 것이다. 해빙은 돈을 쓰는 이 순간 ‘가지고 있음’을 ‘충분하게’느끼는 것이다.

해빙은 우리의 렌즈를 ‘없음’에서 ‘있음’으로 바꾸는 방법이다. ‘있음’에 주의를 기울일 때 나를 둘러싼 세계는 다르게 인식된다. ‘없음’의 세상에서‘있음’의 세상으로 인식된다.”

이서윤은 부자가 되기 위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것에 감사하고 기쁜 마음으로 누리라고 말한다. 우리가 ‘있음’에 주목할 때 마음의 부자도 실제 부자도 될 수 있다.

당신은 ‘없음’에 주목하고 있는가, 아니면 ‘있음’에 주목하고 있는가? ‘없음’에 주목하고 있다면, 빨리 시선을 ‘있음’으로 돌리라.

하나님께서 이미 우리에게 주신 것들이 너무나 많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에 주목할 때, 만족하고 감사할 수 있다. 부자가 될 수 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