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사탄 후드 악마 어둠 죄 Death Darkness Dark Hood Hooded Ghost Demon Man
▲ⓒ픽사베이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

사람들과 관계에서 신뢰를 잃으면 서로의 믿음이 불신으로 변합니다. 그리고 언약 즉 약속까지 지키지 않는다면, 더욱 사람과의 관계는 멀어지고 이를 통해 관계는 단절돼 버립니다.

세상 속에서 사용하던 모든 생각과 마음, 그리고 언어들이 교회 안에서 서슴없이 사용되는 부패한 신앙으로, 믿으면 구원받는다는 막연한 생각 탓으로,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교인들이 많음을 실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평상시 생각했던 천국은 분명 사탄의 계획된 장난이었음을 말씀을 통해 깨닫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약속을 굳게 믿고 지키며,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신앙인들에게만 천국으로 가는 길이 열릴 수 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내 마음과 믿음은 천국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소망으로 가득해 주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며, 겸손하게 죄인 됨을 시인하고 고백하는 신앙인만이 천국을 차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 안에는 이런 ‘성도’ 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고, 그저 그런 ‘교인’들로 가득 차 있어 실로 안타깝게 생각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 믿음의 본이 되는 ‘롤 모델’이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렇게 오늘날 교회는 세상에서 지탄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세상 사람들의 눈에 “성도는 보지 못하고, 교인들만 눈에 띄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습니다.

필자의 어린 시절에는 교회 안에 ‘롤 모델’이 되는 장로님, 집사님, 권사님들이 많았습니다. 비록 직분은 없을지라도, 평신도로서 열심을 다해 주를 섬기며 성도들을 챙기고 밖으로는 이웃의 아픔에 동참하며 위로 하는 모습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필자는 지금도 그 시절을 그리워하며, 오늘날 교회 내 ‘롤 모델’ 부재가 아쉽습니다. 모든 신앙인들이 처음 주님을 만났을 때 감격하며 환호했던 그 기쁨의 시간을 오늘도 누리는 신앙인들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 사역을 하시던 당시에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종교학자들과 율법사, 그리고 대제사장들은 하나님을 잃어버리고 그들의 종교놀음과 권력에 눈이 어두워져, 자신들을 구원할 메시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십자가 형틀에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들의 죄의 참상이 오늘 교회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는 듯 합니다. 이러한 사실 앞에 주님의 재림이 머지 않았다고, 밤하늘에 널려 있는 은하수를 통해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

오늘날 천국 가는 길을 방해하는 사탄들이 지금 이 순간에도 버젓이 춤을 추듯 활개치고 있습니다. 교회를 장악한 점령군들의 등장으로 교회는 황폐화되고, 선한 성도들을 압제하여 지배자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믿음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소리칩니다. 그리고 교회 주요 직분에서 배제시키거나, 심지어 몰아내기도 합니다.

그리고 또한 성도들을 함부로 판단하며 정죄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서도 말끝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고 합니다. 온갖 추한 행동을 연출하면서도 입버릇처럼 내뿜는 ‘하나님을 찬양하자’, ‘하나님께 영광의 박수를 보내자’는 말은 독가스처럼 거짓과 위선의 사악한 노래 소리로 들릴 뿐입니다.

“또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 물에 가득하며 물가로 끌어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마 13:47-48)”.

그물 비유는 가라지 비유와 매우 유사합니다. 의인과 악인의 완전한 분리, 악인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이 세상 끝날 이루어질 것임을 말씀해 줍니다.

여기서 말씀하는 그물은 교회를 뜻하는데, 현재 교회 안에 두 부류의 물고기가 섞여 있음을 말해줍니다. 그 부류들 중 나는 어디에 속해 있는지 점검하는 귀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마 25:32-33)”.

당시 팔레스타인에서는 양과 염소를 낮 동안에는 함께 두지만, 밤에는 갈라놓았다고 합니다. 성경에서 양의 흰털은 의의 상징으로, 염소는 악과 연결지어 표현합니다. 염소는 택함을 받지 못하는 양의 탈을 쓴 동물로 분류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임금이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하시니라”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5-46)”.

이 심판은 누가 천국의 영생에 들어가고 누가 지옥의 형벌에 들어가게 될지를 결정짓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은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어떠한 사랑을 보였느냐에 기준을 두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교회 내 지도자들은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을 눈 속에 담아두고, 소외되고 억눌린 자들, 고아와 과부들, 가난하고 연약한 이들을 위해 따듯한 가슴으로 다가가야 합니다. 그들이 원하고 소망하는 것들을 긍휼의 정신으로 품어 주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능수능란한 말솜씨로 시늉만 하다가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므로, 여기가 교회인지 개인 친목단체인지 분간할 수 없습니다.

선한 신앙인들이라면 자신의 목적이나 이익을 구하거나 행동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오롯이 이웃의 요구와 그들이 원하는 ‘위로와 도움’만을 향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십자가의 정신으로 무장하여, 이 땅에 오셔서 긍휼과 사랑으로 베푸시며 몸소 실천하셨던 모습들을 기억하며 실천하는 신앙인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러나 신앙인들 중에 부동산업을 하거나 법조계에 있는 분들 중에는, 차라리 성도라고 말하지 말고 자신의 업을 했으면 좋겠다고 여겨지는 분들도 있습니다. 부동산업을 하시는 장로님이나 집사님들의 잘못된 직업관으로, 인하여 애꿎은 성도들의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닙니다.

장로라고 해서, 집사라고 해서 믿고 일을 맡겼다가 낭패를 당하는 성도들이 너무 많아서, 참으로 애가 마를 지경입니다. 교회 분쟁 가운데서도 억울한 양들의 변호에는 침묵하면서 돈 많이 주는 악의 세력을 위해 힘쓰는 변호사를 바라보노라면, 과연 저들이 진정한 크리스천일까 하는 생각에 마냥 서글퍼져 한숨만 나올 지경입니다.

더구나 교회에서 악의 세력들이 변호를 부탁하면 정상적으로 회복될 수 있는 길을 터주어야 함에도, 수임료 때문에 교회가 쪼개지든 망가지든 상관하지 않고 변호를 맡아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정말 실망스럽고,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 앞에 하늘만 쳐다볼 뿐입니다.

이후에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성도와 모래 위에 집을 짓는 성도에 대한 비유도 있습니다(마 7:27). 그리고 신랑을 맞이할 열 처녀의 비유(마 25:11-12)가 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식은 밤에 베풀어졌습니다. 신랑을 맞으러 나간 열 처녀는 신부가 아니라, 신부의 들러리들입니다. 대개 신부의 절친한 친구들로서 신부를 준비시키고 함께 신랑을 맞으러 나가는 것이 유대의 전형적인 결혼 풍습이었습니다.

열 처녀의 비유는 항상 준비하며 대비하는 자세를 우리 신앙인들에게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는 천국 가는 길을 악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헛된 시간을 낭비하는 지도자들이 많습니다. 교회를 향하신 하나님의 복음 메시지는 주의 종들을 택하셔서 전하십니다.

하지만 주의 종들을 정의롭고 공명정대하도록 움직일 수 있는 분은 오롯이 사모님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늘을 향해, 망망한 바다에서의 순항을 위해 반드시 사모의 조종간이 중요합니다.

군 시절 남편이 대령이면 부인은 준장이 되어 군대의 질서를 마구잡이로 흔들어 놓는 것을 보신 분들은, 아마 동감하실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모의 역할은 고요하면서 부드럽고, 따사로운 봄볕 같이 정감이 흐르면서도 어머니 같은 모습으로 성도들을 대하는 것입니다. 반면 담임목사님에게는 냉철한 판단으로 충고하면서도 위로하시는 분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교회는 순항하며 약속했던 복음 사역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 사모님을 보면, 대충 그 교회 목사님과 성도들의 수준을 알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만큼 사모의 역할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장로는 장로로서의 자격을 갖춘 자로서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사적인 감정과 판단은 절대 금물입니다.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회무를 비롯한 모든 일에 반드시 공명정대하며 정의롭게, 그리고 투명하게 임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쉬쉬”로 일관하며, 권력자들의 생각과 그들의 뜻만 받들며 교회를 깜깜히 소굴로 만들어서는 절대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자신들의 의견에 동조하지 않으면 적폐로 간주하여, 인사를 비롯한 모든 직분에서 손을 떼게 합니다. 심지어 중직자들을 면직 출교까지 단행하며, 수백 명의 어린양들을 쫓아내기까지 합니다.

이런 일들이 교회 안에서 버젓이 일어나도 상위기관인 노회나 총회는 선한 양들의 목소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교회 권력자들의 부적절한 선심성 유혹에 이끌리어, 선한 양들만 사방으로 흩어지게 합니다. 자칫 흩어진 양들이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심히 두렵기도 합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오늘날 교회 안에서 문제를 만드는 이들은 모두 목사와 장로들입니다. 장로가 장로다워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데서 오는 부작용이 무엇입니까? 위선과 거짓, 비리와 부패, 극에 달한 교만과 탐심입니다. 이것들 때문에, 사랑과 말씀이 중심이 되어야 할 교회 안에서 권력자들의 목소리만 메아리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9장 24절 말씀에는 낙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말씀하십니다. 부자는 세상에서 부를 누리며 안정된 삶을 살아, 하나님보다 자신이 소유한 재물을 더 의지한 연고로, 구원 역사를 가로 막는 억울한 일이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오늘 제목처럼 천국 가는 길을 가로 막는 자는 교회 안의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 종교학자 율법사와 대제사장들입니다.

하루 속히 빠른 회개를 통해 잃어버렸던 하나님을 다시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웃을 돌아보는 자비와 사랑의 사람으로 돌이키는 것만이, 천국의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길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