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확신

과학은 인간적 확신에 만족, 종교는 신적 확신 요구

믿음의 확신, 의식 못하지만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
가장 깊고 친밀하며 사랑스러운 동시에 가장 끈질겨

믿음의 확신
헤르만 바빙크 | 임경근 역 | CH북스 | 176쪽 | 8,800원

“이제 의심은 우리 시대의 질병이 되어서, 일련의 도덕적인 문제들과 전염병들을 야기시켜 왔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오직 자신들의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들만을 고려한다. 그들은 물질을 신격화하고, 재물을 숭배하며, 힘에 영광을 돌린다.”

믿음(geloof)과 확신(zekerheid)이 존재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종교개혁의 원칙들을 통해 신구약 성경 안에서 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 말씀에 여전히 묶여 있었다. 그래서 믿음의 최종적 근거와 확신의 가장 깊은 토대들을 탐구할 필요성을 아무도 느끼지 않았다.

그러나 18세기 중반 이후 이러한 상황은 점차 변화됐다. 1789년 프랑스 혁명을 계기로 사람들은 권리들을 찾기 시작했고, 비판적 이성으로 모든 권위와 결별했으며 자신의 신앙과 단절했다. 신학자들도 가세해 통일된 사고와 일관된 방법론, 믿음의 확신과 변증의 열심 대신 수많은 질문과 의심, 비판들로 요동하고 있다.

2020년 오늘의 이야기 같겠지만, 100년 전 네덜란드 개혁주의 신학자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가 했던 지적이다. 대작 <개혁교의학>의 저자로 유명한 그는 강연을 기초로 한 <믿음의 확신(De Zekerheid des Geloofs)>을 통해 ‘믿음의 확신에 대한 확신’을 심어주고 있다.

바빙크에 따르면 ‘믿음의 확신’은 학문적·신학적에서뿐 아니라 실천적·신앙적으로도 중요하다. 이 땅에서 평안과 기쁨 가운데 살다 행복하게 죽으려면, 눈에 보이지 않고 영원하며 위에 있는 것들에 관한 ‘확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는 ‘믿음의 확신’에 대해 강연한지 몇십년 뒤, 죽음의 침상에서 실제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학문이 내게 준 유익이 무엇입니까? 내 교의학 또한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직 믿음만이 나를 구원합니다.”

책에서도 그는 말한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과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됐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죽음과 심판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한다. 이 모든 것에서,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것은 확신이다. 우리는 흔히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것은 인간 영혼의 가장 깊은 갈망이다.”

과학 발전으로 인한 문명 발달로 ‘희망’이 꽃피던 시대, 바빙크는 예리하게 진술한다. “과학은 우리의 오감과 이성에게는 많은 것을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우리의 심령을 만족시켜 주지는 못한다. … 과학이 하나님도 없고 선이나 악도 없으며, 심판과 형벌도 없고 천국이나 지옥도 없다고 단언한다면, 그것을 논란의 여지 없이 충분하게 증명해줄 증거를 우리에게 제시하라.”

모든 인간 영혼은 그 어떤 과학적 추론으로도 제거할 수 없는 불안에 시달리고 있고, 이 궁극적인 질문들은 배운 사람이든 배우지 못한 사람이든 모든 사람의 심령 속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신비와 기적’이란, 사실 과학적 체계 아래에서 더욱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과학은 인간적인 확신으로 만족할 수 있는 반면, 종교는 신적 확신을 요구한다.”

믿음 한 사람 결단 기도 one
▲개혁신앙은 믿음을 구원의 마지막에 두지 않고, 구원으로 가는 길의 시작에 둔다. 믿음을 향해 가지 않고, 믿음에서 출발한다. ⓒ픽사베이

그렇다면 ‘믿음의 확신’이란 무엇인가? 사람들은 기독교에 대한 ‘확신’을 위해 논리와 증거를 요구하지만, 바빙크는 “우리는 과학적인 증명의 방식을 통해 우리의 가장 깊은 확신들 및 우리의 세계관과 인생관을 얻거나 유지하지 않는다”며 “그런 것들은 지성이나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 좀 더 깊은 곳 즉 우리 영혼과 심령의 깊은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논리정연하게 반박한다.

저자에 의하면 믿음은 언제나 참되거나 참된 것으로 여겨지는 계시, 권위, 신적 말씀에 입각해 있기에, 믿음의 확신은 언제나 어떤 이유에서든 이 권위를 인정하고 그 앞에서 무릎을 꿇고 순종하는 믿음의 열매이다. ‘과학적 확신’은 합리성에 의거해 ‘믿음의 확신’보다 더 보편적 토대를 지니지만, 영혼이 믿음 안에서 자신의 대상을 받아들여 서로 결합되는 힘에 있어서는 ‘믿음의 확신’이 월등하다.

“믿음의 확신들은 모든 것 중에서 가장 깊고 친밀하며 사랑스러운 것인 동시에 가장 끈질긴 것이다. … 과학적 확신은 화형장 앞에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지만, 믿음의 확신은 아주 다르다. 그것은 인간의 심령에 뿌리를 내리고서, 우리의 실존을 이루고 있는 아주 작은 부분까지 다 연루돼 있기 때문에 훨씬 더 강력하고 박멸될 수 없다.”

따라서 참된 신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 교수형이든 십자가형이든 화형이든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전혀 아깝지 않다고 여긴다. 자신의 믿음을 잃는 사람은 자기 자신과 자신의 영혼, 그리고 영원한 구원을 잃게 되지만,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목숨을 잃는다 해도 자기 자신을 지키게 된다.

“그러므로 믿음의 확신은 가장 완벽한 안식이고, 지성의 가장 고귀한 자유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만을 두려워하고, 그 밖의 다른 것들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믿음은 자신이 믿고 있는 것에 대해, 해가 하늘에서 빛나고 있다는 사실보다 훨씬 더 큰 확신을 갖는다.”

르네 데카르트(Rene Descartes, 1596-1650)가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cogito ergo sum)’고 확신한 것처럼, 헤르만 바빙크는 “신자는 ‘나는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하고, 하나님은 존재하신다(credo, ergo sum, ergo Deus est)’고 확신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후 타종교와 기독교 역사를 돌아보면서 사람들이 ‘믿음의 확신’을 어떤 식으로 서로 다르게 찾아오다 ‘믿음의 확신’을 잃어버리고 ‘불신앙과 불확신’을 갖게 됐는지 살펴보고, ‘믿음의 확신으로 나아가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

바빙크
▲헤르만 바빙크.

“성경과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에 따라, 믿음을 구원의 여정(heilsweg)의 끝이 아니라 시작에 두는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이 180도 달라져보이게 된다. 구원의 여정은 믿음의 확신을 얻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에 의거해서 살아가는 것이다. 그런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들 위에 서 있다.”

두껍지 않은 책 <믿음의 확신>은 화란어 완역본이며, 기독교 신앙에 대한 저자의 확신에 찬 목소리가 독자들의 마음에도 확신을 심어준다.

헤르만 바빙크는 캄펀(Kampen)에 있는 신학교와 레이던 대학교에서 공부한 뒤 츠빙글리의 윤리학에 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프라아너커에 있는 교회에서 1년 동안 목회한 후 1882년부터 캄펀 신학교 교의학 교수로 20년간 봉직했으며, 수상을 지냈던 아브라함 카이퍼 박사의 뒤를 이어 1902년 암스테르담 자유대학교(Vrije Universiteit) 교의신학 교수직을 맡았다.

주 저서는 <개혁교의학(전 4권)>이며, 이후 ‘하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이라는 제목으로 좀 더 쉽게 읽을 수 있는 <개혁교의학 개요>를 펴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