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독서 공부 교육
▲ⓒPixabay
위폐(위조 지폐) 감별사는 입사 후 상당기간을 진폐(진짜 화폐)를 관찰하는 훈련을 한다. 다양한 위폐를 조사하고 공부하는 것부터 하지 않고 진폐를 공부하는 이유는, 진폐를 완벽히 마스터하고 나면 위폐가 무엇인지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교회사를 통해 진리를 풍성히 드러내고 거짓과 오류로 부터 사수했던 수많은 보석같이 빛나는 주님의 종들이 있었는데, 이들의 특징은 진리이자 하나님의 살아있는 말씀인 성경에 깊이 매여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에 매여 있었다는 것은 단지 성경을 많이 읽고 가까이 했다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을 교리적 체계를 가지고 깊이 연구하고 묵상하여 그 깊은 우물에서 길어낸 진리들을 통해 거짓교사들과 이단적 가르침들이 무엇인지 명확히 구별하고 진리로 거짓을 치는 싸움을 했던 것이다.

이것은 진리의 선포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데, 성경 진리의 선포와 적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성령의 역사를 생각할 때 그렇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시다. 당연하게도 진리가 아니거나 없는 곳에서는 성령의 사역을 기대할 수 없다.

교회사를 통해 성령의 역사가 분명하게 드러났던 시기와 가르침을 살펴보면 굉장히 진중하고 바른 구원론을 중심으로 체계적인 교리적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이 있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작금의 시대와 무엇이 다른가? 왜 이러한 부흥이나 거듭남의 역사가 교회 내에서 조차 보기 힘든 것인가? 그런 현실에 온통 집중해야 함에도 왜 구원의 문제에 무관심한가? 이것이 부차적일 수 있는가? 과연 무엇이 문제인가?

현 시대는 기독교 내 지식의 부재, 교리 무용론 등의 가르침과 주장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언제부터인가 반지성적인 가르침이 교리적 가르침을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현 시대의 주류가 된지 오래다.

기독교는 신앙의 선진들이 주장하듯 철저하게 교리 중심적이요, 지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는 것이 그 시작의 뿌리요 핵심이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그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며 이것을 공부하는 것이 기독교이다.

‘하나님은 누구시며 인간은 어떤 존재인지? 그리스도는 누구시며 성령은 누구이신지? 구원이 무엇인지? 무엇으로 부터의 구원인지?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믿음은 무엇이며 회개는 무엇인지? 칭의가 무엇이며 성화는 무엇인가?’ 등을 성경을 통해 부단히 공부하고 연구하는 것이 전통적이며 성경적인 기독교이다.

이 시대 사람들이 왜 더 스마트하지 못한가? 이해 수준이 과거의 사람들에 못 미치는가? 문제는 대다수 교회들이 교리적인 가르침에 무관심하고, 실용적 방법론에 의지하며 성령의 역사하심과 무관하게 자신들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에 마음을 쏟고 있는 것이다. 영적으로 조금만 딱딱한 교리적 가르침이 선포되면 수용하기 힘들어 한다.

교회 내에서 때가 오래 지나도 여전히 ‘젖 먹기를 사모하는 자’들이 다수다. 어찌나 어린지 자기를 부정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이 거의 없고, 작은 일에도 상처받았다고 아우성인 이들이 그 자리를 대체하고 있다.

영적으로 조금만 깊이 있는 내용(교리적으로 깊이 있는)을 다루면 어렵다며 불평이 쏟아지고, 그래서 교회들이 이들의 입맛에 맞게 수준을 낮추어 왔고 현재에 이르게 된 것이다.

반면 세상 지식을 위해선 선행학습, 온갖 보충학습, 심지어 태아를 위한 공부가 등장할 정도이니, 단지 영적인 내용이 어렵다고만 할 수 있는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귀중한 유산들을 이제는 폐기 처분해야 할 골동품이나 폐기물 정도로 여기는 영적인 무지와 무관심이 문제인가?

답은 언제나 성경에 있고, 하나님께서 은혜로운 섭리로 이끌어 오신 교회사 가운데 신앙의 선진들이 남겨놓은 보물 같은 유산들 속에 있다. 그 유산들은 공교회가 함께 가르치고 신앙의 중심에 두었던 신조와 신앙고백서, 교리문답 등이다.

이 가르침들은 철저히 성경 중심적이고 일치하는 내용을 전하기에 신뢰할 만 하며 항구적인 가치가 있다. 그 모든 것들이 교리적 체계를 갖추고 있으며 깊이가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설계되어 있다.

또한 진리의 종들이 왜 중요한지 생각해 볼 수 있다. 진리의 유무에 따라 한 지역 교회 내에 구원의 여부가 결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낭만적 접근은 지양한다.

그렇다면 무엇을 선포해야 할지 자명하다. 참된 성도이자 진리의 위조 감별사들(진리의 선포와 수호자)을 키우기 위한 토양에, 성경을 교리적 체계와 진중한 설교와 가르침을 통해 성령의 역사를 부단히 사모하며 연구하는 일들이 회복된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때에 다시금 영광스러운 부흥의 열매를 보게 될 것이다.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