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잠 22:6)”.

이스라엘의 태아 교육에 따르면, 어머니 뱃속에서 1초에 수천 개씩 뇌세포가 생겨난다고 합니다. 세례 요한처럼 태중에서부터 부모님을 통해 성령 충만을 얻을 수 있는 태아의 교육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아교육은 가정 예배와 책 읽기, 기도 생활로 아이를 가르칩니다. 이스라엘의 유아 교육은 가정에서부터 이미 탈무드, 쉐마, 토라 등을 가르치면서 시작된다고 합니다(삼상 16:1-13).

그리고 유대인은 13살이 되면 전문성을 가지며, 유럽은 16살이 넘으면 자신의 집에 살면서 방세를 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어린 시절부터 의타심을 배제한 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독립심을 심어준다고 합니다.

특히 다윗은 어릴 때부터 양을 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모범적인 청소년이었습니다. 양을 치는 동안 포식자들로부터 양들을 보호했으며, 추위나 더위를 아량곳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에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짐승을 보호하는 일에 충실하였던 소년이었습니다.

다윗은 어릴 때부터 글 읽기와 쓰기, 찬양, 기도에 남다른 재능을 갖고 있어 후대에 가장 많은 자료를 남겼으며, 어린 시절부터 성령 충만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사무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받들어 이새의 아들 중 기름을 부어 왕을 삼기 위해 7명의 아들을 다 만나 보았지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께서 택하신 왕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여덟 번째 막내인 다윗이었습니다.

다윗은 양을 치면서도 자신의 집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현실에 실망하거나 불평불만을 하지 않았고, 형들을 대신해서 최선을 다해 양을 지켰던 아름다운 목동이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정말 성경 말씀대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틀림없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특히 이스라엘도 우리나라도 전통적으로 장자들에게는 누릴 수 있는 많은 혜택이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덟째 막내였던 다윗을 선택하셨습니다.

요셉 역시 열한 번째 자녀였지만 하나님은 그를 선택하셨습니다. 나약하고 어린 다윗과 요셉을 왜 선택하셨는지는 짐작을 하실 것이라 판단됩니다.

요셉은 17세가 되어 아버지 야곱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므로, 형제들에게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물론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 야곱에게 고자질하여, 미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는 결국 형제들로부터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는 기구한 운명을 맛봅니다.

하지만 요셉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으며, 특히 요셉은 꿈을 꾸며 미래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하심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음으로써, 자신의 가정을 살리고 민족을 구하여 마침내 애굽의 총리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는 꿈을 꿀 뿐 아니라 그 꿈을 완성하기 위해 갖은 고난과 역경, 고통을 감내하며, 위대하신 하나님의 계획을 오래 참고 기다린 결과입니다. 결국 놀라운 역사의 주인공이 되는 모범적인 소년 요셉으로 후대에 전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 아이들은 참으로 빨리 어른이 되는 것 같습니다. 어른이 되었을 때 하고 싶어했던 행동들을 빠르게는 청소년 시절부터 시작하게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청소년 수련회나 캠프에서, 그리고 길거리 골목에서 음주와 흡연으로 선생님들과 어른들을 곤란하게 만드는 광경들을 요즘에는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이미 흡연과 음주로 징계를 받은 청소년들은 왜 자신들은 그것들을 하면 안 되는지를 오히려 따져 묻습니다. 초등학생이 부모의 차를 운전하여 사고를 냈던 사건이 이슈가 되기도 했지만, 청소년들에게 운전은 이미 게임 속에서 늘 접한 것이기에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요즘 청소년들은 자신의 표현에 당당합니다.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는 거침이 없습니다. 교사나 어른들에게도 자신의 생각을 잘 정리해서 분명하게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교사나 어른들을 당혹케 하기도 합니다.

그러면서도 교사나 어른들이 말하는 것은 들으려 하지 않고, 오직 자신들의 편에서만 생각을 합니다. 게다가 스마트폰 문화로 인해 더욱 이기심으로 가득차 있고, 도덕이나 윤리는 전혀 상관하지 않고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민주주의’로 알고 있어 참으로 안타깝기도 합니다.

인권 운운하며 교사에게 욕을 하거나 덤벼드는 현상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나 미국 등 많은 나라에서는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온 교육 방침이 쉽게 무너지지 않았는데, 유독 우리나라에서 교육은 엄청난 변화와 함께 부모와 자식, 교사와 제자의 아름다운 관계가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이를 다시 회복해야 하지만, 갈수록 힘에 겨워지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의 권위가 상실된 이후 가정이 무너지고, 남자 아이들은 점점 여성화되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생각으로 이웃이 힘들어해도 아량곳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만을 위한 생각과 행동들로 미래를 어둡게 만들고 있습니다.

잘못을 했으면 인정할 줄도 알아야 할텐데, 변명과 거짓말에 능숙한 비굴한 모습 그대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오히려 당당하게 맞섭니다. 게다가 학생으로서의 본분은 망각하고, 몸 치장과 연예인 흉내내는 일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대화는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납니다.

얼마 전 서울 관악구에 있는 인헌고등학교가 많은 언론들의 주목을 받았습니다. 그 이유는 해당 학교 학생들이 그 동안 몇몇 교사들이 정치 편향적으로 했던 언행과 강요를 SNS을 통해 공개했기 때문입니다.

사건의 발단은 지난 10월 17일 인헌고등학교 일부 교사들이 마라톤 행사에 참석한 학생들에게 반일 구호를 외치게 한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에 따르면, 당일 행사에서 몇몇 교사들은 학생들에게 ‘일본은 사죄하라‘, ’일본은 망한다’는 말과 함께, 특정 정당까지 꼬집어 ‘망한다’는 발언을 학생들에게 시켰다고 합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학생이 찍은 것으로 보이는 유튜브 영상을 보면, 많은 학생들이 ‘사상교육을 하다니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 이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말하며, 구호를 외치게 주도하는 교사들을 비난하는 모습이 담기기도 했습니다.

특히 학생들 중에는 교사들이 지지하는 당을 함께 지지하도록 강요받았고, 학생이 싫다고 말하면 교무실로 불려가 혼이 났었다고 하면서, 그 학생은 수업 시간에 어쩔 수 없이 교사의 말에 따른다고 하자, 그 교사는 사악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고 합니다.

자유로운 생각과 가치관을 키워 나가야 할 학생들에게 특정 정치 사상을 주입하는 것이 부당하다고 외치는 학생들에 대해 교사들은 모든 것이 정상적인 교육의 한 부분이었다고 이를 부인했습니다. 첨예하게 엇갈린 교사와 학생들의 주장에 대해, 교육청 감사 결과가 어떨지 국민들은 주목하고 있습니다.

교육의 목표는 성숙된 인격과 성숙된 문화인을 만드는 것 아닐까요? 청소년으로서의 역할과 다짐, 공중질서를 가르치고 웃어른을 공경하며 이웃을 배려하며 나라의 안보와 국민으로서 의무를 다할 수 있도록 가르치며 훈계하는데 힘을 쏟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들의 이념에 사로잡혀 어린 학생들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도록 강요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을 일삼을 수 있을까요? 또 다시 외적의 침입으로 나라를 처참한 고통과 불행의 역사를 후손들에게 물려주려는 것인가요?

초등학교에서 중학교, 중학교에서 고등학교, 고등학교에서 수능을 마친 후, 대학 진학이나 직장에 들어가기 전, 약 보름 동안 청소년 사관학교를 만들면 어떨까요? 거기서 도덕과 윤리, 그리고 진실된 대한민국 역사를 가르치고, 충효사상과 예절문화와 공동체의 올바른 협력문화를 교육하는 것입니다.

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그렇게 국가 백년 대계에 이바지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자고 국민 신문고를 통해 수 차례 제안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수련회를 이미 하고 있다”는 대답뿐입니다.

우리 조상들의 선비 문화, 화랑도 정신 등 조상들의 아름다운 정신들을 찾아내 가정에서나 학교에서 이를 접목해 교육 자료로 활용함은 물론, 하루 속히 ‘청소년 사관학교’를 만들어 국가의 미래를 향한 새 역사를 창조하는데 이바지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미래인 청소년들에게 헛된 이념과 사회주의 교육을 더 이상 가르치지 않고, 방학을 이용하여 지금 교회마다 실시하고 있는 수련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하여, 교단을 망라해 미래의 주인공인 청소년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다윗과 요셉처럼 기적을 낳는 위대한 믿음의 모델이 이 땅에서 더 많이 배출될 수 있도록, 이제는 교회가 나서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