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양한 질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답했던 ‘앤서 맨’
2. 예수님 연상시키는 온화한 성품과 태도의 변증가

라비 재커라이어스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 ⓒRZIM

“라비 재커라이어스의 부고를 접하네요. 매우 열정적으로 신앙을 변호한 사람인데….”

미국의 저명한 기독교 변증가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희귀성 뼈암으로 투병 끝에 애틀랜타 자택에서 소천한 바로 그날, 미국 칼빈신학교에서 종교철학과 기독교 변증을 가르치는 한 교수님이 내게 이런 내용의 카톡을 보내왔다.

이 문자와 함께 보내주신 CNN 기사를 보는 순간, 내 머리에 섬광처럼 번쩍이며 지나가는 말이 있었다. “사람은 죽고 나면 중요해진다.”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74세에 이 땅에서의 생애를 마감할 때까지 전심전력으로 전하고자 했던 것은 ‘오직 예수’였다. 그의 생애가 중요한 이유뿐 아니라, 어쩌면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중요한 이유 또한 이것 하나다.

이 필생의 주제를 라비는 다원화된 세상 속에서 절대 진리로서의 예수님의 유일성을 전하는 기독교 변증의 방식으로 풀어냈고, 다른 사명자들은 또 각자가 받은 부르심을 따라 각자만의 방식으로 전하고 있다.

필자 또한 미력하나마 변증전도 사역을 섬겨온 입장에서, 기독교 변증가로서의 라비에게서 크게 두 가지 특징을 떠올리게 된다. 둘 다 내가 그에게서 진정으로 본받고 싶은 것들이다.

다양한 질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답변
반박, 오해, 편견 열린 마음으로 청취
정답 일방적으로 미리 제시하지 않고
삶의 공통 문제 제기 후 함께 답 찾아

무엇보다 그는 기독교 진리에 대해 던지는 사람들의 다양한 질문에 최대한 친절하게 답해주는데 진실로 애정과 격려가 많았던, ‘앤서 맨’(Answer Man)이었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응답한다 RZIM
▲2016년 방한한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가 기자회견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크투 DB

CNN은 라비가 1984년에 자신의 이름을 딴 국제적인 기독교 변증 사역체를 설립한 후 이 사역을 통해 100명에 가까운 그리스도인 학자와 저자들을 발굴해 전세계에서 수백만명의 사람들이 던지는 질문들에 답해주도록 하는 일에 헌신했다고 보도했다.

라비는 기독교에 대한 사람들의 온갖 종류의 반박과 오해, 편견을 기꺼이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였고, 사소해 보이는 질문 하나하나까지도 그들 각자의 심장에서 터져 나오는 진실을 갈구하는 외침으로 소중하게 끌어안을 줄 알았다.

그가 쓴 책들 가운데 <오직 예수>(두란노)는 내가 특히 인상적으로 읽은 책들 중 하나다. 이 책에서 라비는 자신이 가진 정답을 일방적으로 미리 제시하려 들지 않는다. 모두가 수긍할 만한 공통적인 삶의 문제를 먼저 제기하고 함께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열어간다.

필자가 섬기는 변증전도 역시 오해나 걸림돌을 제거하는 과정을 중시한다. 신중하지 못한 설교나 전도는 답을 너무 성급하게 빨리 주려는 데 있다. 답 이전에 먼저 세인들의 사고방식을 존중하는 가운데, 그들도 감지하고 인정할 만한 삶의 문제를 충분히 파악하게 해야 비로소 답이 답다워진다.

이제 한국교회의 전도도 매뉴얼화된 복음의 패키지를 쭉 제시하는 데 급급한 차원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한다. 조금은 더디고 때로는 머뭇거리는 몸짓을 보이더라도, 왜 모든 사람에게 예수란 분이 꼭 필요한가 하는 문제의 정황들을 먼저 충분히 드러내 주면, 답은 각 심령에 어쩔 도리 없이 깊숙이 스며들게 될 것이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응답한다 RZIM
▲2016년 방한 기자회견 모습. 왼쪽부터 샘 앨버리 목사, 라비 박사, 마이클 램즈던 디렉터. ⓒ크투 DB

치밀한 논리와 지적 소양 갖췄으면서
동양적 감성 조율된 온유한 성품으로
심각한 질문에도 잔잔한 웃음과 위트
예수님 사랑 자연스럽게 우려내는 품

변증가로서 라비가 보여준 또 하나의 특징은 예수님을 연상시키는 그의 온화한 성품과 태도다.

라비는 인도 출신으로 서구에서 공부한 동양인답게 비교종교와 철학에 특히 조예가 깊을 만큼 치밀한 논리와 지적 소양을 갖추었으면서도, 동시에 동양적인 감성이 잘 조율된 온유한 성품의 소유자였던 것 같다.

그가 쓴 책이나 강의 영상에서 느낄 수 있는 그의 모습은, 논리적인 반박이 주를 이루는 논쟁이나 토론에 능한 사람들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딱딱하거나 차가운 인상과는 거리가 멀다.

어떤 심각한 질문에도 우선 잔잔한 웃음과 위트를 잃지 않는 여유를 보여주었다.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체험한 사람만이 자연스럽게 우려낼 수 있는 넉넉한 품 같은 따듯함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였던 것 같다.

2016년에 라비가 처음으로 방한해 올림픽경기장에서 변증 강연을 전할 때, 직접 그의 이러한 진면목을 가까이서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나를 또 한 번 놀라게 했던 변증가는 라비 못지않게 저명한 오스 기니스였다.

라비의 동역자로서 카메오처럼 잠깐 등장해 짧게 인사만 하고는, 줄곧 라비의 강연을 진지하게 경청하던 그의 소탈함과 겸손함에 큰 감동을 받았다.

그 두 사람의 겸비한 모습에서 기독교 변증가가 지녀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 어쩌면 논리적인 치밀함이나 지식 못지 않게, 예수님을 닮은 온화함과 겸손함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
▲지난해 방한한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 ⓒ크투 DB

철학과 과학, 종교의 영역에서 기독교적인 대답을 구축해야 성경의 사실성을 입증하는 효과적인 기독교 변증이 가능해진다.

믿음은 오직 하나님의 역사로만 가질 수 있지만, 세인들에게 이미 익숙해져 있는 사고방식으로 그들의 편견과 오해를 먼저 걸러내주지 못한다면, 그들을 진정한 믿음의 길로 안내하기 어렵다.

그 고귀한 전도의 사명을 위해 그들의 의문에 답해주는 과정이 먼저 필요하지만, 그 일 또한 논리적인 설득만으론 성취되지 않는다.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보여준 대로 세상의 눈높이에 맞춘 겸손한 성육신적 섬김의 태도가 필요하다.

최근 우리 사회와 교계의 주목을 받은 책 《90년생이 온다》에서도 강조하는 대로, 요즘 젊은 세대는 심플함과 재미와 정직함을 동시에 추구하며 탈권위주의를 지향한다. 기성세대 역시 이러한 시대 분위기의 영향을 받아, 의식은 어느새 밀레니얼 세대를 점점 더 닮아간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할 교회도 이러한 시대정신에 함몰되어 있는 대중들의 정황을 마냥 모른 체하며 무시할 순 없다.

젊은이들 마음껏 질문 던질수 있어야
전도 어려워진다지만 위기는 곧 기회
교회 비난받아도 진리 없어지지 않아
눈높이 맞춘 겸손한 성육신적 섬김을

그러나 많은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은 여전히 권위주의에 젖어 있는 분위기다. 실제로 내가 한 목회자 모임에서 변증전도의 필요성에 대해 나눌 때, 그들로부터 ‘교회가 목회자를 중심으로 권위를 잘 세워 사역하고 있는데 굳이 성도들을 깨워 질문하게 할 필요까지야 있나?’ 하는 분위기를 느낀 적도 있다.

2019년 다시 방한한 라비는 젊은이들이 교회에서 마음껏 질문들을 던질 수 있어야 하고 교회는 그에 대한 답을 주어야 하지만, 많은 경우 판단을 받을까봐 교회에서 질문하기를 주저한다고 말했다.

젊은이들이 질문하는 이유는 단지 진리를 알고 싶을 뿐 아니라 그 진리가 자신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고 싶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절박한 의문에 대한 답을 교회에서 얻지 못하게 되니까, 결국 교회 밖에서 질문을 던지며 답을 찾으려다, 쉽게 좌절하고 믿음이 흔들리게 된다고 정확하게 진단한 바 있다.

마이크 펜스, 라비 재커라이어스 박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이 재커라이어스 박사를 추모하며 자신의 트위터에 공개한 사진. ⓒ트위터

기독교는 유일한 절대 진리여서, 교회 안팎의 모든 사람들의 오해나 편견을 제거하고 있는 그대로 잘 드러내주기만 해도, 어느 시대 누구에게든 진정한 영적 권위가 확보된다.

기독교는 여느 종교의 하나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창조질서 그 자체다. 그래서 기독교만이 사람들이 세상에서 경험하는 모든 영적, 물리적 현실을 참되게 설명해줄 수 있다.

쌍방 소통으로 잘만 전달하면 복음 자체가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누구에게든 궁극적으로 안 맞을 수 없는 생래적인 맞춤형의 특성을 발휘한다.

교회의 대사회적 이미지가 날로 안 좋아지고 전도가 어려워진다고들 하지만, 정말 위기는 곧 기회다. 교회가 비난받는다고 해서 교회에 주어진 진리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요즘처럼 저마다 취향 존중을 요구하는 까다로운 시대에조차 사람들이 정말 갈구하는 진짜 재미는 본질에서 나온다.

교회가 더욱 낮은 자리로 내려가 세상 사람들의 눈높이에 맞춘 성육신적 전도와 양육에 그 어느 때보다 더 실질적인 관심과 역량을 집중할 때 오히려 단 한 번도 흔들린 적 없는 기독교 진리 자체의 본질적인 유일성을 더욱 견고하게 드러낼 수 있을 것이다.

기독교 변증가 라비 재커라이어스가 그렇게 큰 확신을 갖고 그렇게 낮은 자의 마음으로, ‘오직 예수’를 전했던 것처럼.

변증전도연구소 안환균
▲안환균 변증전도연구소장. ⓒ연구소

안환균 목사
그말씀교회 담임. 변증전도연구소장
<기독교 팩트체크>(두란노), <하나님은 정말 어디 계시는가>(규장) 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