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에 나타난 다윈의 진화론은 대부분의 비판가들로부터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그의 진화론은 창조에 있어 하나님의 역할을 전적으로 부인했으며, 그 결과는 그의 진화론을 무신론적 진화론으로 이해하기에 충분했다.

아사 그레이
▲아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
미국 하버드 대학교 아사 그레이(Asa Gray, 1810-1888)는 1860년 다윈의 역작이 미국에서 출판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그는 다윈에게 <종의 기원>이 지니고 있는 신학적 의미에 대해 질문했다. 다윈은 “나는 무신적으로 작품을 쓰고 싶은 의도는 없었다”고 답변했다.

그는 호혜적이며 전능한 하나님이 존재한다고 믿기에는 세상에 너무 많은 비참함과 불행함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정통 기독교가 제시하는 하나님의 모습이 지나치게 이상적일 뿐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하고 다스리는 세상이 너무 조화롭고 아름답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었다고 볼 수 있다.

자연선택과 적자생존이라는 경쟁을 허락하는 하나님은 사실상 너무나 잔인한 하나님이었다는 생각이 다윈의 마음 속에 자리 잡게 되었다는 평가가, ‘그가 무신론적 진화론을 옹호했다는 평가와 어떤 점에 있어서 다른가?’ 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앞서 질문으로 제기한 다윈의 ‘유신’진화론은 그 이후 등장하는 여러 신학자들과 과학자들이 주장하는 ‘유신’진화론과는 상당히 다른 면모를 지닌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레이는 기독교의 가르침과 과학적 진화론을 동시에 믿는 당대의 유신진화론자이었다. 그는 피조세계에 존재하는 변이(variation)를 인정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은 세상을 점진적으로 변화·발전시켜 나간다는 유신론적 해석을 내어 놓았다.

이 견해에 다윈이 동의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였던 것이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레이의 주장에는 진화의 변화에 대한 논의에 있어 목적론적 가능성이 포함된 설계 개념이 포함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설계’는 말투스의 인구론을 따랐던 다윈이 아주 싫어하고 경계했던 개념이었을 뿐 아니라 이 가능성은 사실상 진화가 신적 섭리를 따라 진행된다는 주장을 포함시키고자 했음을 다윈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점에 있어서 다윈의 행보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그것과는 일치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라마르크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
그레이의 이런 주장과 더불어, 다윈의 사고에 나타난 반기독교적인 경향을 어느 정도 완화시켜, 이를 기독교계에 널리 어필하려는 시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특히 용불용설로 널리 알려졌던 라마르크(Jean-Baptiste Lamarck, 1744-1829)의 진화론을 부활시킨 소위 신라마르크주의자들(Neo-Lamarckians)을 들 수 있다.

조셉 르콩테(Joseph LeConte, 1823-1901), 클라렌스 킹(Clarence King, 1842-1901), 에드워드 코프(Edward Drinker Cope, 1840-1897) 등과 같은 인물들이 이에 해당된다.

이들의 주장은 피조 세계에 관찰되는 변이의 개념에 목적성을 부여함으로서, 자연 선택의 개념을 희석시키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들의 주장은 앞서 언급된 그레이의 주장과 유사한 측면을 많이 지니고 있는데, 이는 주로 진화의 방향성과 목적성에 관한 것이었다.

이렇게 살펴볼 때, 신라마르크주의자들도 그레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다윈의 진화론에 나타난 무신론적 측면을 어느 정도 완화시키는 해석을 추구했으며, 이는 앞으로 등장하게 될 유신진화론의 토대 또는 모체와 같은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A. H. 스트롱
▲A. H. 스트롱(Augustus Hopkins Strong, 1836-1921).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서서 진화론의 영향력은 미국의 복음주의 신학자들의 사고에서도 발견되기 시작한다.

A. H. 스트롱(Augustus Hopkins Strong, 1836-1921)은 침례교 목사이자 로체스터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이었는데 진화론에 대해 긍정적인 태도를 견지했고, 이를 자신의 신학에 반영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1886, 1907)>에서 스트롱은 다윈의 진화론에 나타난 자연 선택과 적자생존의 경쟁 개념보다는, 그레이와 신라마르크주의자들이 내세웠던 설계 개념을 수용했을 뿐 아니라, 진화가 설계에 나타난 몇 가지 문제점들에 대한 해답을 제공함으로써 이를 더욱 풍성하게 입증한다고 보았다.

예를 들면 자연에 존재하는 다양한 불완전함이 호혜적인 설계의 개념을 약화시킨다는 주장에 대해, 스트롱은 진화의 초기 단계에 나타나는 불완전함과 이로 인해 발생하는 고통을 통해 피조세계의 질서와 유용한 배열(collocation)이 가능해진다고 답변했다.

이런 방식으로 스트롱은 진화론을 자신만의 유신진화론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제임스 오르
▲제임스 오르(James Orr, 1844-1913).
유신진화론을 내세웠던 또 다른 신학자로서 스코틀란드 글래스고우(Glasgow)에 소재한 프리 처치 칼리지(Free Church College)의 교회사 교수였던 제임스 오르 (James Orr, 1844-1913)를 들 수 있다.

그는 스트롱보다 훨씬 더 강력하게 유신진화론의 가능성을 옹호했는데, 진화론이 다윈의 진화론과 동일시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했다.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기독교적 견해(Christian View of the God and the World, 1893)>라는 저서에서 오르는 네덜란드의 식물학자이자 유전학자인 휴고 드 프리스(Hugo DeVries, 1848-1935)가 내세웠던 돌연변이 이론(mutation theory)을 옹호했다.

드 프리스는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전혀 새로운 종의 돌발적 출현이 다윈의 이론에 나타난 문제점, 에를 들면 화석 기록 사이의 미연결 고리(missing link)의 존재를 보완할 수 있는 이론이라고 주장했다.

여기서 오르가 주목했던 신학적 교리는 이런 새로운 종의 돌발적 등장을 가능하게 하는 하나님의 간섭이었다. 이는 그가 옹호했던 다윈에 맞서는 유신론적 진화론의 한 단면이 제공된다고 볼 수 있다.

프랜시스 콜린스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1950-). ⓒNIV.org
20세기 후반의 대표적 유신진화론자로는 프랜시스 콜린스(Francis Collins, 1950-)를 들 수 있다. 미국 국립보건연구소(National Institute for Health, NIH)의 디렉터이자 인간 게놈 프로젝트(Human Genome Project)의 리더인 그는 <신의 언어(The Language of God, 2006)>라는 베스트셀러로도 널리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유신진화론자도 생물학을 제외한 다른 모든 분야에 있어 창조론자처럼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진화라는 메커니즘을 작동시키시되, 이를 통제하지 않고도 자신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 낸다고 할 때, 그 결과는 성경이 증거하는 창조의 결과와 동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윈이 주장하는 것처럼 하나님이라는 초자연적 존재가 배제된 상태에서 종의 변이가 설명될 수 있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는다.

이런 이유에서 콜린스가 주장하는 유신진화론은 다윈의 진화론과 종교적 차원에서 가장 강하게 대립되는 주장을 내세웠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살펴본 다양한 유신진화론자들의 주장과 비교해본다면, 다윈의 진화론은 어떻게 평가되는 것이 좋을까?

다윈
▲찰스 다윈. ⓒ크투 DB
다윈이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았고 나름대로의 이신론적 신을 수용했다는 사실을 근거로, 그의 진화론이 유신진화론이라는 주장도 어느 정도 설득력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우리가 지금까지 살펴본 유신진화론자들은 다윈이 이해한 ‘유신’진화론과는 상당히 다른 주장을 전개하는 진화론자 또는 진화론의 옹호자들로 사료된다.

다윈이 유신진화론자로 인식되려면 적어도 다음의 몇 가지 사안들이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1. 그가 이해한 하나님은 정통적 기독교의 하나님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하나님을 선하고 전능한 하나님이 아니라 인간에게 고통을 허락하는 잔인하고 무자비한 하나님으로 이해했던 것이다. 다윈에게 유신론의 개념은 이신론적이고 인간의 선을 도모하지 않는 하나님에 관한 것으로 보인다.

2.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 말에 등장한 신라마르크주의의 부흥으로 인해 일종의 쇠퇴기를 맞이했던 사실이 기억되어야 한다.

<종의 기원>이 당시 기독교 유럽과 미국에 불러 일으켰던 엄청난 충격으로 인해 다윈의 진화론은 무신론적 진화론으로 인식되었고, 그 결과 그의 이론이 있는 그대로 수용되기 보다는, 여기에 내표된 무신론적 차원을 어느 정도 잠식시킨 소위 ‘완화된(mitigated)’ 다윈의 이론이 선호되었던 것이다.

이 ‘완화된’ 다윈의 진화론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반의 여러 신학자들이 내세웠던 유신진화론의 모체와 같은 역할을 담당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3. 콜린스가 주장하는 이론은 사실상 다윈의 생물학적 이론과 인식론을 철저히 분리시키는 유신진화론으로, 후자를 철저하게 봉쇄하는 가운데 성경적 창조론과 유신진화론의 차이를 최소화시키려는 주장에 해당한다.

따라서 다윈이 유신진화론자라는 주장은 콜린스와 같은 강력한 기독교 친화적 유신진화론자들에게는 수용될 수 없는 견해에 지나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신열
▲이신열 교수. ⓒ크투 DB
이신열 박사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의학 교수이며, 신학과 학과장과 개혁주의학술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화학/언어학, B.A.),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목회학, M.Div.), 네덜란드 Theologische Universiteit Apeldoorn(교의학, Th.M., Th.D.) 등에서 수학했다.

저서로는 <종교개혁과 과학(2017, SFC)>, <칼빈신학의 풍경(2011, 대서)>,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 윤리학(2010, 형설)>, 역서로는 낸시 피어시 & 찰스 택스턴의 공저 <과학의 영혼: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과학 이야기(2009, SFC)>와 키어스 매티슨의 <성찬의 신비: 칼빈의 성찬론 회복(2011,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