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 12:1)”.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 오 세였더라(창 12:4)”.

‘잔인한 달’이라고 하는 4월도 지나가고, 어느덧 푸르른 5월이 초록의 그림을 그리며 온 천지만물에 소망의 열기 뿜으며 찾아왔습니다. 그윽한 봄의 내음 물씬한 아름다운 이 계절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창조된 계획하심 따라 운행하고 있습니다.

우한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해 사람들과 거리를 두면서 서로 피해 다니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사람들과의 만남을 두려워하게 되었습니다. 갈수록 인심마저 흉흉해지는 이웃들을 보면서,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또 다시 찾아올 또 다른 바이러스에 대한 두려움도 밀려옵니다.

그러나 5월은 각 교회에서도 어린이 주일, 어버이 주일, 스승의 주일, 성년 주일 등 많은 행사들이 기다리고 있는 사랑의 달, 가정의 달입니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본받아 사랑과 절제의 길을 걷도록 어린이들부터 젊은이들, 그리고 노인에 이르기까지 푸르고 싱그러운 목장 한가운데 기쁘고 즐겁게 찬송하며, 부르심에 응답하는 신앙인들의 모습들이 너무나 좋아 보입니다. 많은 신앙인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 있습니다.

구원 역사에서 가장 기본적인 진리 중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과 그 부르심에 대한 ‘신앙인의 응답’일 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성경의 시작부터 끝까지 ‘부르심’의 문제와 관련돼 있습니다. 하나님은 하란에서 아브라함을 부르셨고, 하나님의 산 호렙 에서 도망자인 모세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많은 선지자를 비롯한 예언자들을 부르셔서 목적을 달성하시며 응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실 때, 직접 제자들의 삶의 현장에 직접 찾아가셔서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특히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 이야기에서는 예수님께서 그를 부르시며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삭개오의 분명한 구원은 이처럼 예수님의 부르심에 즉각적으로 응답해 그가 달라졌다는 것과 변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변화는 자신이 저질렀던 잘못을 다 내어놓고, 이웃에 대한 주님의 사랑과 긍휼이 함께한 것입니다.

특히 신앙인들이라면 비신앙인들에게 자신의 모습을 떳떳하게 보여줄 수 있어야 합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름다움과 진실함을 그대로 삶 속에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역사하심을 보여주는 복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믿는 우리 신앙인들이 달라진 것이 무엇일까요?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겠다고 결단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달란트는 그 사람 안에 있는 믿음인 것입니다.

이는 자신에게 맡겨진 한 므나를 어떤 노력으로 사용하였는가에 대한 평가로서, 세 부류의 사람들을 대변한다고 보시면 좋겠습니다.

열 므나,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잘 하였다 착한 종아, 네가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과 다섯 고을을 다스리는 권세를 차지하라”고 하시며, 그 종들에게도 칭찬하며 사례하신 일은 작은 일에 충성하는 삶의 과정이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충성했다는 것은 믿음이 변치 않은 ‘신실한 종’이라는 뜻입니다. 충성은 믿음이 신실하고 충만할 때 나오는 의심 없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므나를 노력하지 않고 수건으로 싸서 땅에 묻어둔 사람은 주인으로부터 심한 꾸중을 듣고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한 므나 까지 빼앗기는 불쌍한 신세로 변합니다.

이 비유는 우리 신앙인들에게 주어지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

이 말씀은 바울이 성도들이 구원의 완성을 위해 힘써야 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며, 구원을 이루는 과정도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임을 증거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고 그저 “예” 로 순종하며, 주시는 사명에 대해 무거운 짐으로 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서 맡기지 않으심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8장 8절에서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고통 중에 있을 때 비로소 입증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은 구원을 얻을 믿음을 주셨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 믿음이 더욱 분발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머물거나 후퇴한다면, 구원은 보장되지 않는다는 경고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특히 구원을 얻는 믿음은 부르심에 합당한 열매가 열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열매는 어떤 것일까요?

우리 신앙인들의 생활이 지저분하고 무질서한 것이 아니라, 정직하고 정의로운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즉 겉과 속이 다른 삶이 아니라, 마음이 아름답고 평소 생활 역시 신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속이 아름다우면 겉도 아름다운 법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실한 신앙인들의 삶의 열매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부르심에 늘 긍정적으로 반응해야 합니다. 그것은 준비된 다섯 처녀의 비유에 대한 이해를 확실히 하는데 있습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대한 응답은, 깊은 사명의식으로 즐겁고 기쁘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리고 다음 사명을 주실 것을 기대하고, 힘차게 찬송하며 예배드리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