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예배당,
ⓒPixabay
미국 메클렌버그커뮤니티교회(Mecklenburg Community Church) 제임스 에머리 화이트(James Emery White) 목사는 최근 처치리더스닷컴에 ‘팬데믹(Pandemic·대유행)이 교회를 구하는 5가지 방법’(5 Ways the Pandemic Is Saving the Church)이라는 제목의 칼럼을 게재했다.

칼럼에서 에머리 화이트 목사는 “코로나19는 전 세계에 육체적인 죽음 뿐 아니라 재정적인 파괴를 남기는 전염병으로 보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코로나19가 교회에 끔찍한 재앙으로, 교인들은 몇 주간 예배를 드리지 못한 채 신앙의 공동체로서 소통을 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말문을 열었다.

그는 “그런데 실상 이 코로나19가 교회를 구하고 있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대부분의 교회들이 지금까지 걸어온 방향이 교회를 지속적으로 소외시키고, 침체로 이어지게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만약 팬데믹이 실제로 규모나 영향력 면에서 수많은 교회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면 어떻게 하겠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팬데믹이 교회를 구하는 5가지 방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1. 교회들은 주말, 군중 중심의 접근에서 주 7일의 성육신적 접근(incarnational approach)으로 옮겨질 수밖에 없다.

모든 교회들이 함께 모여 드리는 예배를 환영하고 이를 기념하고 발전시켜야 하지만, 이를 교회 생명의 대단원으로 만든 교회들이 너무 많다. 우리는 벽돌과 흙을 교회라 하지 않고, 벽돌과 흙을 이용해 전략적으로 섬길 수 있는 신앙의 공동체를 교회라고 한다. 교회의 목적은 지역 공동체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다가가 봉사하며 그 안에서 교회가 되는 것이다. 팬데믹은 거룩한 장벽과 복음의 게토화 현상을 깨뜨려서, 우리가 살고 있는 거리와 이웃들을 향하게 하고 있다.

2. 교회들이 온라인으로 옮겨지고 있다.

여러분은 다양한 종류의 교회들이 이미 온라인에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이는 웹사이트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대부분은 웹사이트를 갖고 있으나 온라인을 통한 활동이 없다는 의미다. 온라인 캠퍼스가 있거나 페이스북을 통해 예배 영상을 송출하는 등의 활동은 미국의 4만 5000여개 교회들 중 아주 적은 교회들에 의해 이뤄져 왔으며, 이는 확실히 더 넓은 세계와 거리가 있다.

3. SNS를 받아들여야 할 수밖에 없다.

만약 대부분의 교회가 팬데믹 이전에 온라인 활동을 하지 않았다면, SNS를 받아들이거나 사용하지 않았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사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미국의 교회들 중 15%만이 트위터나 인스타그램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제 교회가 SNS를 배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SNS는 오늘날 세계에서 소통의 수단이다. 이를 통해 사람들은 뉴스를 접하게 되고 읽고 감동을 받는다. 교회는 팬데믹 때문에 사람들이 서로 소통하는 방식을 배우게 되었다.

4. 교회들은 혁신하고 변화할 수밖에 없다.

필요는 발명의 어머니라는 말이 있다. 이는 변화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항상 해오던 방식으로 일하는 것을 멈출 수밖에 없을 때, 여러분은 새로운 사고방식과 행동방식에 빠져들 수밖에 없다. 죽어가는 교회의 마지막 말은 늘 “우리는 이전에 그런 식으로 한 적이 없다”는 것임을 우리는 알 수 있다. 이제 많은 교회들이 “우리는 전에 결코 하지 않았던 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5. 교회는 다시 선교로 복귀하고 있다.

당신의 모든 방법과 실천이 모두 바닥났을 때, 당신에게는 가공되거나 걸러지지 않은 무엇인가가 남는다. 그것은 바로 사명이다. 기드온이 그 좋은 예이다. 성경을 인쇄하여 호텔에 배포하는 이 단체를 생각해 보자. 갑자기 호텔들이 성경 비치를 거부한다면, 이 단체는 성경의 배포가 결코 그들의 주된 초점이 아님을 곧바로 깨닫게 됐다. 이들은 그리스도께 사람들을 인도하길 원했다. 호텔의 성경은 목적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캐나다에 있는 기드온스 인터내셔널의 앤더슨 사장은 “우리는 한 발짝 물러서서 ‘우리가 이루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문해 보았다”고 말했다. 전 세계의 많은 교회들은 그들이 사명을 완수하기 위해 해왔던 많은 일들이 사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다. 이제 이들은 새롭고 자유로운 시각에서 참된 사명을 바라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