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 애플북스 | 516쪽 | 14,000원

춘래불사춘, 대한민국 청춘의 오늘
꿈 찾는 일, 꿈같은 일 돼버린 세대
1934년 채만식의 이 소설에도 담겨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봄은 왔지만 봄 같지가 않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한민국 청춘(靑春)을 말한다.

전공과 상관없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적성과 상관없이 임용고시에 매달린다. 꿈을 찾는 일은 꿈같은 일이 되어 버린 세대. 꿈과 노력보다 숟가락 색깔이 미래를 결정한다고 믿고 있는 세대. 청춘이 청춘 같지 않은 춘래불사춘이다.

이런 모습을 담고 있는 소설이 있다. <레디메이드 인생> 채만식 선생의 1934년 작품이다. 주인공은 사회가 요구하는 스펙을 갖추고도 일할 곳이 없다. 그 모습은 100년 가까운 시간을 뛰어 넘어 오늘 청춘들의 모습과 닮아있다.

소설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뭐 어디 빈 자리가 있어야지?” 일자리를 구하러 온 주인공 P에게 해준 신문사 사장의 대답이다. 또한 소설 전체의 주제이고, 1930년대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무엇보다 2020년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대학 나왔지만 ‘레디메이드’ 인생
겨울 외투 맡겨서 담배 사는 형편
아들은 공부 안 시키고 공장 취직

주인공 P는 대학까지 나왔지만 직업을 구하지 못한 채 가난에 시달린다. 구직을 위해 찾아간 모 신문사. K사장은 일자리가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도시에서 이러지 말고 농촌으로 가서 헌신적으로 봉사 활동을 하라고 충고한다. 그것도 아니면 작은 신문사라도 경영해 보라고 말한다. 당장 먹을 것도 없고, 밀린 방세도 내지 못하는 주인공 P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는 충고다.

구직에 실패하고 신문사를 나온 P는 대책없이 지식인을 양산하고 있는 사회를 원망한다.

“배워라! 배워야 한다. 상놈도 배우면 양반이 된다.” “가르쳐라! 논밭을 팔고 집을 팔아서라도 가르쳐라. 그나마도 못하면 고학이라도 해야 한다.”

그렇게 공부한 지식인들이 막상 할 일이 없다. 주인공은 이러한 자신을 ‘레디메이드 인생’이라고 한다.

겨울 외투를 맡기고 받은 돈으로 담배 한 갑을 사고 집으로 돌아온 P. 밀린 방세 때문에 주인 할머니를 만나기가 껄끄럽다.

P를 본 할머니는 방세 이야기보다 그에게 온 편지를 먼저 전해준다. 시골에 있는 형에게서 온 편지다. 편지 내용은 주인공의 아들을 데려가라는 것이다.

이혼한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그동안 형이 돌봐주고 있었다. 형은 조카가 학교 갈 나이가 되자, 월사금과 학비를 대지 못하니 주인공이 데려가 공부를 시키라는 것이다.

“흥! 체면! 공부! 죽어도 인텔리는 만들지 않는다.”

형의 편지를 찢어 버린 주인공. 아들을 데려가라는 말이 못마땅한 것이 아니다. 굳이 공부를 시키라는 것 때문이다.

마침 찾아온 두 사람 M과 H. 법학을 한 H. 동경에서 공부를 한 M. 배운 것은 달라도 신세만큼은 주인공과 같다.

봄이 되었지만 여전히 겨울 양복을 입고 있는 두 사람. M은 여전히 동복 신세인 자신들의 처지를 보며 “춘래불사춘”이라고 말한다.

그들 셋은 H의 법률 책을 전당포에 맡기고 그 돈으로 윤락에서 술을 마신다. 계집애 하나가 술에 취한 P에게 화대가 이십 전이라도 좋으니 자고 가라고 말한다.

“자고 가!” “자고, 나 돈 조금만 주고 가 응?” “얼마라도 좋아. 오십 전도, 아니 이십 전도.”

정조의 값이 너무 싸다는 데 충격을 받은 P. 주머니 속에 있는 돈을 움켜쥐어 바닥에 털어버리고 나와 버린다.

며칠 후 P는 형에게서 전보를 받는다. 내일 아들을 올려 보내겠다는 내용이다. 그날 안면이 있는 인쇄소 과장을 찾아가 월급 없이 일만 가르쳐 주면 된다며 아홉 살 된 아들을 써달라고 부탁한다.

인쇄소 과장은 이렇게 말한다. “거 참 모를 일이요. 우리 같은 놈은 이 짓을 해가면서도 자식을 공부시키느라고 애를 쓰는데, 되레 공부시킬 줄 아는 양반이 보통 학교도 안 마친 아들을 공장엘 보내나요?”

주인공은 이렇게 대답한다. “내가 학교 공부를 해본 나머지, 그게 쓸데가 없으니까 자식은 딴 공부(일) 시키겠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일자리를 부탁하고, 다음 날 도착한 아들을 인쇄소에 데려다 준다.

아들을 맡기고 돌아서 혼잣말로 아들의 처지를 이야기하는 P. 소설은 그의 혼잣말로 끝맺는다.

“레디메이드 인생이 비로소 겨우 임자를 만나 팔리었구나.”

호수
▲ⓒRuslan Bardash on Unsplash
주인공, 아무도 구입 않는 ‘기성품’
주인공의 비극, 자기 결정 없는 것
공부한 이유도 시대의 요구와 강요


‘레디메이드(ready-made)’는 기성품이라는 말이다. 너도 나도 ‘공부가 답이다.’라고 말하며 공부한다. 그렇게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어진 지식인. 막상 사회에 나갔지만 그들을 원하는 곳은 없다. 요즘 대학생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소설의 끝에서 주인공은 자기 아들은 공부를 시키지 않고 공장에 보낸다. 그러면서 오히려 ‘임자를 만나 팔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아무도 구입하지 않는 자신의 처지와는 다르다는 것을 빗대어서 하는 말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무도 구입하지 않는 기성품’이다. 그는 왜 기성품이 되었을까? 작품이 아니라 제품이 되었을까? 소설 속 주인공은 ‘자기 결정’이 없다.

주인공이 담배를 사는 모습을 보면 알 수 있다.
“담배 한 갑 주시오”
“네, ‘마꼬’입니까?”
“‘해태’ 주어요.”

마꼬는 5전짜리 값싼 담배이고, 해태는 15전 짜리 비싼 담배다. 주인공은 처음에는 ‘마꼬’를 사려고 했다. 하지만 자신의 행색을 보고 처음부터 ‘마꼬’냐고 묻는 주인의 말에 심술이 나서, 홧김에 ‘해태’를 산다.

비싼 ‘해태’를 산 것도 자기 의지나 결정이 아니다. 단지 없어 보이는 것이 싫어서다.

이혼한 아내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을 양육하는 일도 그렇다. 단지 아내 손에 보내기 싫다는 이유로 아들을 자신이 데려왔다. 그것이 전부다. 아이를 어떻게 키우겠다는 목표나 계획도 없다. 결국 어렵게 사는 형에게 맡길 수 밖에 없었다.

그는 자신이 공부를 한 것도, 시대의 요구와 강요 때문이라고 생각하며 원망한다. 한 마디로 주인공은 삶을 자신이 결정하지 않는다. 시대의 결정이고 남의 시선을 의식한 결정이다. 그러니 기성품의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소설 제목 그대로 <레디메이드 인생>이다.

생각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대로 생각
스스로 결정 않는 삶, ‘나다운 삶’ 아냐
같은 제품도 의미 부여하면 작품 된다


프랑스 사상가 폴 발레리는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스스로 결정하지 않은 삶은 ‘나다운 삶’이 될 수 없다. 독특한 작품이 아니라 평범한 제품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레디메이드’라는 단어가 재미있는 단어다. 단순히 평범한 기성품만을 말하지 않는다. 프랑스 예술가 마르쉘 뒤샹은 1917년 뉴욕 전시회에 ‘샘’이라는 작품을 출품해 예술가들을 놀라게 한다.

뒤샹이 출품한 ‘샘’은 공장에서 만든 평범한 소변기다. 공장 제품에 ‘샘’이라는 이름을 붙여, 예술품이라고 전시했다.

그때부터 예술가의 선택에 의해 예술품이 된 기성품을 ‘레디메이드’라고 부른다. 똑같은 제품도 의미를 부여하면 작품이 된다.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는 주인공 P. 그는 자신의 삶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한다. 여전히 수많은 제품 중에 하나로 공허하게 살아간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청춘(靑春)이 청춘(靑春)같지 않아 슬픈 대한민국. 멀리서 보면 똑같은 삶이다. 똑같이 대학 졸업하고, 똑같이 직장 생활하고, 똑같이 살아간다. 기성품이다. 남들과 다르지 않다.

그러나 그 속에서 의미를 발견하면 남다른 삶이 된다. 기성품이 아니라 예술품이 된다. 삶에서 내가 의미를 찾으면 제품도 작품이 된다.

성도는 진화(evolution)가 만들어낸 제품이 아니라 하나님이 빚어낸 작품이다. 똑같은 기성품처럼 보여도 하나님에게 선택된 예술품이다.

그러니 다수결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따른다. 남들처럼 살려 하지 않고, 말씀대로 살아가려 한다. 그것이 남다른 삶이다.

‘아프니까 청춘인가?’ ‘사랑받으니까 청춘이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하나님이 선택하셨다. 그러니 하나님이 책임져 주신다. 당신은 하나님의 작품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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