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가지론자·무신론자 평가하는 연구 늘어
이신론적 세계관, 어린 시절 가정에서 형성
페일리의 자연 신학, 말투스의 인구론 영향

다윈
▲다윈
찰스 다윈(Charles Darwin, 1809-1882)은 진화론의 창사자로서 <종의 기원(The Origin of Species, 1859)>을 통해 인류 지성사의 새로운 시대를 연 인물로 평가받는 19세기를 대표하는 인물 중 한 명이다.

우리에게 그는 일반적 의미에서 ‘진화론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가 ‘유신론적(theistic) 진화론자로 간주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많은 다윈 연구가들은 그를 무신론자, 즉 무신론적 진화론자로 생각한다. 가장 대표적인 인물로는 당시 프린스턴 신학교의 찰스 핫지(Charles Hodge)를 들 수 있다. <다윈주의가 무엇인가?(What is Darwinism)>에서 그는 다윈의 진화론을 단호하게 무신론으로 천명했다.

핫지는 다윈이 성경적 신앙을 부정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면, 진화론을 강력하게 비판했던 검사 윌리엄 제닝스 브라이언(William Jennings Bryan)은 1923년 열렸던 스코프스 재판에서 다윈의 이론이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파괴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그를 무신론자로 간주하기 보다는 불가지론자(agnostic) 또는 유신론자(theist)로 평가하는 연구가들이 증가하고 있다.

가장 탁월한 다윈 연구가들 가운데 하나로 평가받는 아드리안 데스몬드(Adrian Desmond)는 1991년에 발간된 <고통받는 진화론자 다윈의 생애(Darwin: The Life of a Tormented Evolutionist)>라는 전기에서 그가 전혀 무신론자가 아니었으며, 오히려 열정적인 유신론자이자 진화론자라고 말한다.

유신론자이자 진화론자의 예로서 아사 그레이(Asa Gray)와 찰스 킹슬리(Charles Kingsley)가 언급된다. 그레이는 하버드(Harvard) 대학의 식물학자이었으며, 킹슬리는 기독교 사회주의를 추구한 영국 성공회 사제이자 시인, 역사가, 그리고 소설가였다.

다윈은 자신을 결코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신론자로 느끼지 않는다고 밝히면서도, 이에 대해 상당히 불확실할 따름이라고 덧붙였다. 다른 곳에서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스스로를 더 자주 불가지론자로 느끼게 된다고 자신의 종교적 상태를 평가했다.

또한 윌리엄 핍스(William E. Phipps)도 2001년 발간된 <다윈의 종교적 여정(Darwin’s Religious Odyssey)>이라는 단행본에서, 다윈의 자서전과 그가 작성한 다양한 서한들에 근거하여 그를 유신론자로 간주하면서, 평생에 걸쳐 그가 추구한 진화론이 그의 하나님과 종교 이해에 어떤 영향력을 행사했는가를 평가했다.

그렇다면 어떤 이유에서 그가 유신론적 사고를 지닌 인물로 이해되는가? 그리고 그가 지닌 유신론적 사고가 그의 진화론에 어떻게 작용했는가? 이 두 가지를 놓고 간략하게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다윈이 견지했던 유신론적 사고에 대한 논의는 사실상 그가 무신론적 태도를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

비록 그가 케임브리지(Cambridge) 대학에서 신학 과정을 졸업했지만, 그의 신학은 결코 정통 신학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영국 성공회 복음주의 신학자 알리스터 맥그래스(Alister McGrath)는 다윈이 믿었던 하나님을 삼위일체적이 아닌, 이신론적(deistic) 하나님으로 정의한다.

여기서 이신론이란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했다고 고백하지만, 그 이후에 하나님은 마치 은퇴한 군주와 마찬가지로 피조 세계의 운행에 전혀 관여하지 않고 이를 그대로 방치하는 무능력의 하나님, 섭리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 만들어버리는 사고를 가리킨다.

맥그래스는 계속해서 이런 관점에서 다윈이 자신이 추구하는 종교를 사적이며 개인적인 것으로 간주했고, 이를 공적인 자리에서 밝히기를 무척 꺼려했던 것이라는 설명을 추가적으로 제공한다.

진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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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성공회의 일원이었던 다윈이 어떤 이유에서 이신론적 종교를 표방하게 되었던 것일까? 그가 어린 시절에 가정에서 받았던 종교에 대한 인식이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중요한 역할을 차지한다.

그의 어머니 수잔나 웨지우드(Susannah Wedgewood)는 자유주의적 기독교를 추구했으며, 찰스를 포함한 그의 여섯 형제들은 어린 시절에 어머니와 함께 유니테리언(Unitarian, 삼위일체를 부인하며 하나님의 신격 안에 단지 하나의 위격이 존재한다고 주장하는 자들) 교회에 출석했다.

그 이후 성공회 교회에 출석했던 찰스는 이 교회의 신조가 이해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아들였는데, 이는 그의 관심이 정통 기독교와는 거리가 멀었음을 파악할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찰스 다윈은 에딘버러(Edinburgh) 대학에서 의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얼마 가지 않아 포기했고, 목회자의 길을 택하는 것이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는데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했던 아버지 로버트의 권유로 케임브리지에서 신학을 공부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목회자로서 소명이 부족했으며, 성령의 인도를 받지 못했던 자신의 신학 시절을 <자서전(Autobiography)>에서 회고하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다윈의 유신론적 사고는 정통 개신교의 하나님을 신뢰하는 성경적 유신론과는 거리가 멀었고, 이신론적 하나님을 믿는 유신론으로 파악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유신론적 사고가 그의 진화론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에 대해 살펴볼 필요성이 제기된다.

다윈은 <종의 기원>에서 자연 선택을 통한 종의 생존에 대해 논의한다. 진화론을 고안함에 있어, 그는 두 명의 목회자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첫 번째 목회자는 윌리엄 페일리(William Paley)로, <자연 신학(Natural Theology, 1802)의 저자이다.

그의 <자연 신학>은 피조세계에 나타난 모든 신비롭고 놀라운 자연 현상들이 창조주 하나님의 섭리에서 비롯된 사실임을 고백하는 글로서, 당대의 신학과 자연과학의 관계가 얼마나 조화롭게 이해되었는가를 잘 보여주는 글이다.

여기에는 하나님을 시계공(watchmaker)으로, 피조 세계를 그가 만든 시계로 각각 비유해 제시했는데, 이는 상당히 인기를 누렸다. 다윈은 <자연 신학>에 나타난 설계이론에 동의했지만, 거기에 나타난 목적론적 논의를 수용하지는 않았으며, 하나님을 시계공으로 비유하는 유비에 대해서도 부정적이었다.

두 번째 목회자는 토마스 말투스(Thomas Malthus)로,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는 성공회의 사제였다. <인구론(Essay on the Principle of Population, 1798)>의 저자인 그는 식량이 지속적으로 제공된다면, 인구는 계속 증가한다는 원리를 주장했다.

다윈은 말투스의 인구 증가 원리를 동물의 세계에 적용했다. 만약 식량의 공급 한계를 넘어서는 정도로 동물들의 번식이 이루어진다면, 이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식량이 부족하게 되어 이들이 결국 살아남을 수 없게 될 것이며 죽을 수밖에 없다고 <종의 기원>에서 주장했다.

여기에 그가 말하는 흔히 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으로 알려진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의 원리가 주어진다.

여기서 주목할 만할 점은 다윈이 주장했던 자연 선택의 원리는 페일리가 내세웠던 자연의 적응 능력에 대한 설명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이미지들을 활용했다는 사실이다.

비록 그가 페일리의 설계 이론에 나타난 목적론적 함의를 부정하여 신의 활동을 제한하는 이신론적 입장을 취했지만, 이런 입장에 그의 유신론적 사고가 드러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말투스의 <인구론>에서 다윈은 사실상 자신의 자연선택의 이론을 고안했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식량의 공급을 넘어서는 개체의 생존이 위협받는 것은 당연하기 때문에 개체들 사이에 생존을 위한 투쟁이 발생하는데, 이는 자연 선택을 위한 기초 또는 토대로 작용하게 된다.

그렇다면 다윈의 유신론적 사고는 페일리가 내세웠던 목적론적 설계 이론을 벗어나서 이신론적 하나님 이해를 수용하는 가운데, 자연 선택을 가능하게 만들었던 저변에 해당된다고 볼 수 있다.

이 사실에서 다윈이 유신진화론자로 이해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고 볼 수 있다. <계속>

이신열
▲이신열 교수. ⓒ크투 DB
이신열 박사
현재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의학 교수이며, 신학과 학과장과 개혁주의학술원장을 맡고 있다.

미국 State University of New York at Binghamton(화학/언어학, B.A.), Biblical Theological Seminary(목회학, M.Div.), 네덜란드 Theologische Universiteit Apeldoorn(교의학, Th.M., Th.D.) 등에서 수학했다.

저서로는 <종교개혁과 과학(2017, SFC)>, <칼빈신학의 풍경(2011, 대서)>, <개혁신학의 관점에서 본 기독교 윤리학(2010, 형설)>, 역서로는 낸시 피어시 & 찰스 택스턴의 공저 <과학의 영혼: 기독교 세계관으로 본 과학 이야기(2009, SFC)>와 키어스 매티슨의 <성찬의 신비: 칼빈의 성찬론 회복(2011,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