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마을
▲강원도 철원 백마고지 옆 비무장지대의 아카시아 숲에 자리잡은 두레 양봉팀.
어머니의 지극정성으로 밀어 주시는 도움으로, 열심히 공부하여 대학 입학을 위한 시험을 치르는 날이 왔습니다. 요즘으로 말하자면 수능시험에 해당합니다.

그때는 법학과, 철학과, 공과대학 식으로 전공별로 시험을 치렀습니다. 1961년 11월 시험이 있었습니다. 시험 치르는 아침이었습니다. 내게 배정된 장소는 경북고등학교였습니다.

경북고등학교로 출발하면서, 어머니께 도시락을 달라 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어머니께서 도시락이 없다 하였습니다. 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어머니께 항의하는 투로 말했습니다.

“어머니 다른 날도 아니고 대학 가는 학력시험 치르는 날인데 도시락이 없다니요?”

“무슨 날이든 없는 도시락을 어쩌냐. 도시락 못 싸 주는 애미 맘을 생각해서 더 말하지 말아라. 남자라면 그런 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거다.”

나는 더 할 말이 없어 그냥 시험장으로 갔습니다. 오전에 3시간 시험을 치르고, 점심 후에 2시간 시험 치르는 일정이었습니다.

오전 시험 마치고 점심 때가 된즉 모두들 부모들이 와서 학교 운동장, 교실 등에 자리 잡고 식사를 하였습니다. 나는 “남자라면 스스로 해결하는 거다”는 어머니의 말이 기억나서 운동장 한켠에 있는 포푸라 나뭇가지를 꺾어 젓가락을 만들었습니다.

젓가락을 든 손을 뒷짐 지고 친구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운동장을 한 바퀴 도는 중에 친구 셋을 만났습니다.

내가 도시락 준비를 못하였다 하니 모두들 환영하며 함께 먹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세 집을 돌고 나니 과식을 하게 되어, 점심시간 다음 과목이 수학이었는데 졸음이 쏟아져서 고생하였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성적이 나온 뒤에 보니, 내 성적이 제일 높았습니다. 나는 세월이 흐르면서 그런 어머니를 고맙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개척정신과 투지와 시련을 극복하여 나가는 요령을 가르쳐 주신 어머니라는 생각에서 어머니를 고맙게 여기게 되었습니다.

이제 나이 80에 이르러 어버이날을 맞아, 그런 어머니가 몹시 그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