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4장 31-33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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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양식에 대해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양식을 먹어야 생명이 유지됩니다. 육체적 양식과는 달리 주님은 영혼에 양식에 대하여 말씀하게 됩니다.

인간에게는 육신의 배고픔을 넘어서는 영혼의 배고픔이 있음을 암시합니다. 육신의 음식을 배부르게 섭취했다 해도 우리는 영혼이 만족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지적 차원의 양식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갔다 드렸는가 하니(31-33절)”.

먹는 것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 욕구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먹는다’는 말을 유달리 많이 사용하게 됩니다. 음료수를 마시는 것에도 먹는다고 하고, 술을 마시는 것에도 술을 먹는다고 표현합니다.

자리를 해먹는다, 집을 팔아 먹어버린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먹는다’는 것으로 설명하면, 쉽게 이해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반면 지적 차원의 양식은 알고 모르는 차원에서 이해되는 양식입니다. 지적인 것은 알고 모르고의 정신적 차원입니다. 이 지적 차원은 정신적 배고픔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학업 교육을 많이 받지 못한 사람은 지적 배고픔을 느낀다고 합니다. 한글을 모르다 나중에 한글을 배워서 시(詩)를 씨는 분들의 이야기를 전해 듣고 우리가 감동을 받습니다. 이는 지적 차원의 배고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적 차원, 즉 배움에 대한 배고픔은 지식이나 경험, 정보 등 교육으로 채워야 비로소 해소됩니다. 이는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알고 모르는 중요한 차원의 지적인 양식이 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이유입니다.

2. 정신적 차원의 양식

31-33절을 보면, 양식이란 눈에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양식이 있습니다. 정신적 차원의 양식이란 정신적으로 충만해지는 경지입니다.

정신적 차원의 양식에는 사랑이 있습니다. 사랑의 그리움은 사랑하는 임에게로 향하는 마음입니다. 사람들은 사랑의 허기를 메우기 위해 누군가를 그리워합니다. 그러나 그리움은 ‘밑 빠진 독에 불 붓기’처럼 가슴에 뻥 뚫린 구멍만 만들어놓는 경우도 있습니다.

미국 신학자 프란시스 쉐퍼(Francis August Schaeffer)는 그의 저서 <도시 속의 죽음(death in the city)>에서 “현대는 사랑에 결핍된 굶주림의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그는 사랑의 굶주림(Love Hungry)을 불면증, 심신장애, 중독, 자살, 도박, 범죄, 청소년 비행 등의 개인적 병리 현상이 바로 ‘사랑의 굶주림’ 때문이라 보았습니다.

애정이나 사랑의 결핍증에 시달리는 사람은 ‘떨어지는 낙엽만 봐도 가슴이 허전하고 온몸에 힘이 빠진다’, ‘먹어도 먹어도 속이 허한 느낌이 든다’, ‘손톱을 물어뜯는 버릇이 있다’. ‘책이나 영화를 보며 우는 일이 많다’, ‘애완동물을 좋아한다’, ‘담배나 군것질거리를 입에 달고 살거나, 술만 마신다’고 합니다.

이런 증상은 모두 애정 결핍 증세라고 보는 것입니다. 현대인은 이처럼 사랑에 굶주려 있습니다.

최근 신천지라는 이단이 사회에 문제되고 있는데, 이단에 빠지는 사람도 알고 보면 정신적 배고픔 때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거기에 가면 자신의 존재를 인정해 준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는 정신적 차원의 양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 영적 차원의 양식

주님이 말씀하시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란 영적 차원의 양식입니다. 양식이란 생명의 유지를 위해 반드시 먹어야 하는 것입니다. 양식을 먹음으로 인해 생명의 활력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영적 차원의 양식이란 단순히 먹는 것과 먹지 않는 차원이 아닙니다. 영적 차원은 현실적 차원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먹는다는 말은 현실적인 현상입니다. 음식을 먹으면 배고픔이 해소되기 때문입니다.

영적 차원의 양식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먹은 것처럼 채워지는 현상입니다. 하나님과 영적 교통이 이루어지는 것은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는 경지입니다. 금식을 하면서도 기도를 했는데, 배고프지 않고 영혼이 충만해지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교류하는 것인데, 이는 부모와 자녀가 사랑으로 교류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다고 말합니다. 이런 의미를 알고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에 참여하면, 사랑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합니다(요한일서 4:11-12). 그러면 영적인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해 수고하는 우리입니다. 이는 참된 양식으로 충족하지 못하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는 인생의 길에 주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충족하는 육체와 영혼이 건강한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지적인 차원의 양식을 충족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정신적인 차원의 양식을 충족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더 나아가 영적인 차원의 양식을 충족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주님이 주시는 양식으로 충족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