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마을
▲동두천 두레마을 둘레길.
오늘 따라 유난히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그립습니다. 곁에 계시면 어머니 품에 기대어 잠들고 싶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8년 전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살아계실 때에 좀 더 따듯하게 모시지 못한 걸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지금 내 나이 80에도 어머니가 그리울 줄은 짐작도 못하였습니다. 어머니를 생각하면 무언가 한쪽 가슴에 구멍이 뚫린 것처럼 허전합니다.

아버지께서 내가 6살 되던 때 일본 동경에서 돌아가셨기에, 어머니께서는 우리 4남매 기르시느라 너무너무 고생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남긴 유산이라곤 재봉틀 한 대뿐이었습니다. 그 재봉틀로 삯바느질 하시며 우리들 4남매를 기르셨습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세상살이 고달픔을 몸으로 느끼게 되니 어머니의 고생이 얼마나 심하셨을 지를 짐작이나마 하게 됩니다.

어머니는 바느질 일감이 밀릴 때면 밤새 재봉틀을 밟으시며 밤을 새웠습니다. 우리들은 어머니께서 밟으시는 재봉틀 소리를 들으며 잠이 들고 잠이 깨곤 하였습니다.

밤새워 재봉틀을 밟으시던 어머니께서는 한밤중에 잠이 오시면 나를 깨우시곤 하였습니다.

“홍아 일어나 찬송 한 곡 불러라. 애미 잠 온다.”

그러면 철없는 나는 어머니께 불평하곤 하였습니다.

“어머니 왜 자꾸 나만 깨우세요. 형이나 동생도 고루 깨우셔야지요.”

이렇게 볼멘소리로 항의하면 어머니께서는 일러 주셨습니다.

“홍이 니는 목사될 사람 아니가. 목사 될 사람이니까 너를 깨우는 거다.”

그럴 때면 나는 “어머니, 나는 목사는 안 될낌니더.”

그러면 어머니께서 “너가 무슨 소릴 해도 목사가 될끼다. 내 기도가 이루어질끼다.”

그 어머니는 이미 천국 가 계시고, 철없던 아들은 목사가 된지도 50년 세월이 지났습니다.

지금 어머니가 곁에 계신다면 “어머니 내가 목사 되게 해 주셔서 고마워요. 어머니 효자 노릇 할테니 아프지 마시고 오래오래 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