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그날

소재원 | 마레 | 304쪽 | 12,000원

일제시대 실화 바탕으로 쓰여지다
위안부와 강제징집 민초들 기록해
소록도와 만주에서 서로 그리워해


역사를 대충 아는 것과 제대로 아는 것은 너무나 큰 차이가 난다. 대한민국 국민 가운데 위안부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록도가 어떤 곳인지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직접 소록도에 2박 3일 봉사를 다녀오기도 했다. 다녀왔기에 알고 있었지만, 제대로 알지 못했다.

소재원이 쓴 ‘그날’은 실화를 바탕으로 쓰여진 소설이다. 저자는 소록도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세상에 알리고 싶었던 것 같다. 강제로 끌려간 위안부들의 아픔을 전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많이 울었다. 역사를 너무 몰랐던 나의 모습이 부끄러워서 많이 울었다. 아픔을 겪어야 했던 분들을 생각하면서 많이 울었다.

일본 놈들이 죽도록 미워서 울었다. 이 모든 것들을 생각하면서 가슴이 너무 많이 아프고 슬펐다. 하지만 이 아픔의 역사를 보면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자체가 너무나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 소설은 주인공은 서수철과 오순덕이다. 18세인 서수철은 오순덕이 열다섯 되던 해에 청혼을 했다. 서수철은 몸이 약한 오순덕을 위해 의원이 됐다. 이들은 서로에게 순정을 바치기로 약속을 한다.

서수철은 혼인을 두 달 남기고 일본 군대에 징병을 당해 만주로 가게 된다. 전쟁 가운데 팔에 총을 맞게 된다. 이것이 화근이 되어, 아홉 달쯤 지났을 때 서수철에게 문둥병이 발병하게 된다.

보통 일본군들은 쓸모없다 싶으면 죽여 버리지만, 서수철은 혹 전염될까 싶어 죽이지 않고 소록도로 보내졌다.

소록도에 도착해서 상자 문이 열리자 직원들에게 두들겨 맞았다. 더럽다고 맞고, 문둥이 하나가 더 왔다고 맞고, 그래도 불에 타죽는 것보다 좋았다.

소록도는 처음에 잡초가 무성했고 길이라고는 산짐승들이 오간 오솔길만 존재했다. 마치 섬이 아니라 하나의 큰 산과 같았다.

겨울이 찾아오면 옷을 벗은 나무들 때문에 황무지로 변했다. 허허벌판의 이곳을 대장인 일본인 원장은 썩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 원장의 ‘이곳에 길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 한 마디가 떨어지기 무섭게, 땅이 딱딱하게 얼어 돌덩이와 같은데도 환자들은 맨손으로 흙을 파고 길을 닦아야 했다.

손가락이 없는 환자들은 손목으로 땅을 파다 살이 다 까졌고, 손가락이 몇 개라도 있는 환자들은 손톱이 다 빠지는 참담함 속에서도 쉬지 않고 몸을 부려야 했다.

일을 게을리 하면 치료를 한다는 명분으로 밥을 주지 않았다. 또한 살이 까지고 손톱이 빠지는 아픔보다 몇 배는 강한 고문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소록도는 겉모양은 점점 아름답게 다듬어져 갔지만, 그 모든 것은 소록도 환자들이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소록도는 겉으로는 천국의 섬 같았지만 지옥의 섬이었다.

살기가 너무 힘들어 탈출을 시도한 사람도 있었지만, 아무도 성공한 사람이 없었다. 탈출하다 잡히면 대부분 그 자리에서 죽어 일본 의사들에 의해 해부를 당하게 된다.

일본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생화학 무기를 만드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다. 전염성이 있는 문둥병의 균은 그들에게 좋은 연구거리가 되었다. 실제로 소록도는 문둥병 환자를 살리기 위한 목적이 아니라, 일본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마루타 섬이라고 할 수 있다.

서수철은 소록도에서 짐승만도 못한 취급을 받으면서 하루 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오순덕을 향한 순정을 지키기 위해서 다시 만날 날을 기약하면서 살아간다. 그런 가운데 적십자를 통해 서수철과 오순덕은 편지를 주고받게 된다.

오순덕은 서수철이 강제 징병을 당하고 난 뒤, 돈을 벌게 해주겠다는 이장에게 속아서 만주로 끌려가게 된다. 그녀가 도착한 곳은 위안소였다.

그곳에 ‘위안부’라는 걸 알고 끌려온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정말 단 한 명도 진짜 단 한명도 매춘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제발로 걸어 들어온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오순덕은 믿을 수가 없었다. 혀를 깨물고 죽고 싶었다. 자꾸만 죄스러운 마음에 견딜 수가 없었다. 실제로 오순덕은 자신의 몸을 더럽힘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고 생각하고 혀를 깨물려 했다.

그 때 하춘희라는 처자가 그녀의 목을 감싸 안으면 이렇게 말했다. “이렇게 죽으면 안 돼. 우리는 꼭 살아야 해. 분명 일본은 패망할 거야. 반드시 패전해서 대가를 치를 거야.

우리는 우리가 강요에 못 이겨 했던 치욕스러운 지금의 일들을 역사에 남겨둬야만 해, 반드시 살아야 해. 어떻게든 살아서 그들을 심판대에 올려야 해.”

하춘희는 올곧은 선비 집안의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는 깨어있는 학생들과 조국을 위한 시를 짓기도 했고, 신문을 만들어 배포하기도 했다. 하지만 결국 위안소에 끌려오게 되었다.

하춘희는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위안소에 끌려온 여인들을 다독거리며, 그들에게 애국심을 심어주고 용기를 불어 넣었다. 오순덕을 옆에서 지극히 보살펴 주고 도와주었다.

하춘희는 위안소로 끌려온 여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독립군과 같이 싸우는 것만이 독립운동이 아니야. 여기에서 나는 또 다른 독립운동을 시작할거야. 맞는 거 따위 두렵지 않아!

비록 반항하지 못하고 당하기만 할 테지만, 끝까지 버텨낼 거야. 버텨내는 게 우리가 이기는 거야, 그래서 꼭 고향으로 돌아갈 거야. 돌아가서 공부할 거야. 서양 말과 글을 배울 거야.

전 세계의 글을 다 배워서 일본이 얼마나 끔찍한 일을 우리에게 강요하고 자행했는지 알릴거야. 분명 일본은 패망할거야. 확실해. 많은 사람들이 일본을 공격하고 있어,

일본은 외톨이야. 수많은 나라들과 독립군이 일본을 패망시킬 테지만, 그 뒤가 중요해. 우리는 일본이 우리에게 했던 일들을 알려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해, 그게 우리가 할 일이야.”

위안소 처자들에게 희망 불어넣고
그들만의 작지만 큰 독립운동 시작
편지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버팀목


하춘희의 이야기는 처자들에게 희망을 불어넣었다. 너도 나도 글을 배우겠다고 했다. 위안소 안은 강한 열정과 의지로 가득 채워졌고, 작지만 큰 독립운동이 그 곳에서 시작되었다.

오순덕도 그 때 글을 배우게 되었다. 오순덕은 가장 먼저 서수철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쓰는지 가르쳐 달라고 했고, 순정이라는 단어도 가르쳐 달라고 했다.

오순덕은 ‘서방님 사랑해요 서수철 순정’이라는 글씨를 써놓고 끊임없이 반복해서 읽었다. 그 열정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일주일 만에 한글을 뗄 수 있었다.

오순덕은 기자에게 지난 시간들을 회상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 “그분에게 난 순정을 바쳤소. 비록 몸은 여기저기 군인들에게 더럽혀졌지만, 내 마음만은 그분에게 모든 걸 바쳤고, 내 모든 순정을 가져간 분이시오.

내 그래서 살았소, 그분을 만나야지만 내 죽을 수 있소. 악착같이 살 수밖에 없었소. 온갖 사내들의 땀 냄새를 맡으면서도 살아야만 했소. 그분이 죽으라 하기 전까지는 죽을 수 없었소.

독하다 생각 하는겨? 아니 죽어도 살아서 만나야 했소, 나를 내치더라도 용서를 빌어야 했소. 내 순정을 가진 분이시니. 사랑은 서로의 마음의 떨림이 하나가 되지만 순정은 영혼의 떨림 하나가 되는 순간을 말하는 것이오.”

서수철도 오순덕도 편지를 받는 날의 감격을 잊을 수 없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고, 서로 살아 있다는 자체만으로 너무나 감사했다.

소록도에 있는 서수철은 오순덕이 위안부로 갔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오순덕도 문둥병에 걸려 서수철이 소록도에 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서로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말하지 않았다.

서로 잘 지내고 있다고 말하면서, 서로를 걱정했다. 거짓 편지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들은 행복했다. 그들은 서로 살아서 만날 것을 희망하며, 서로를 격려했다. 이것이 바로 순정이라고 오순덕은 이야기한다.

편지를 주고받는 가운데, 서수철은 함께 했던 사람들과 소록도를 탈출하려다 잡혀서, 죽지는 않았지만 거세를 당하게 된다. 그 와중에 오순덕은 임신을 하게 되고, 매독이라는 병까지 걸리게 된다. 오순덕도 겨우 목숨만을 건지게 된다.

그날
▲<그날> 북트레일러. ⓒ유튜브
이런 일들을 당하면서 서로 마지막 편지를 주고받는다. 서수철은 소록도에서 혼인을 했다고 이야기하고, 오순덕도 좋은 사람이 생겼다고 말한다. 서로 거짓말인지 알았지만 서로 처지가 그렇게 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오순덕이 있던 위안소의 처자들은 일본군들이 패전하면서 다 죽을 수밖에 없는 위기에 놓인다. 그 때 하춘희와 동료들은 오순덕만은 살아서 이곳을 나가야 한다고 결의한다.

그들은 오순덕이 가지고 있던 순정을 믿었고, 한 사람이라도 살아서 역사가운데 일본이 자신들이 행했던 일들을 알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춘희를 비롯한 동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을 십시일반 모아서, 겨우 금으로 된 실반지를 두 개 마련해 오순덕의 손에 안겨준다. 정혼한 서수철을 만나서, 꼭 만나서 서로의 반지를 끼워주라고 말한다.

해방된 후 서수철은 문둥병이 다 나았지만, 소록도를 떠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지만, 소록도를 떠나지 않았다. 서수철이라고 그렇게 보고 싶은 오순덕을 찾아 소록도를 떠나고 싶지 않았겠는가?

하지만 서수철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소록도를 떠나 작은 섬에 정착하려던 사람들은 무참하게 두들겨 맞고 죽었다. 해방이 되고 문둥병이 나았지만, 그들을 받아 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다.

서수철은 자신이 오순덕을 찾아가면 자신뿐 아니라 오순덕도 죽어버릴까 그것이 무서웠다. 그래서 그렇게 벗어나고 싶은 소록도를 떠날 수 없었다. 그렇게 보고 싶은 오순덕을 만나러 갈 수 없었다.

74년만에 결국 만난 두 주인공
모든 것을 초월한 순정 이야기
하나님이, 예수님이 생각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기자의 주선으로 74년만에 서로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이 가까워질수록 눈물이 흘러내렸다. 아무 말도 없었다. 어색했다.

어떤 호칭으로 불러야 할지 혼란스러웠다. 점점 거리가 좁혀졌다. 그런데 갑자기 서수철이 호칭도 생략한 채 오순덕에게 말했다. “멈추거라.”

오순덕도 걸음을 멈추었다. 깊이 모자를 눌러 쓰고 마스크를 한 서수철은 오순덕에게 흉측한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아, 이 거리에서 이야기를 하자고 한다.

오순덕은 천하가 다 아는데 뭐가 창피하냐고 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74년이나 기다렸소. 여기까지 오느라. 오라비를 만나는데 장장 74년이나 걸렸단 말이오. 보고 싶어도 참고 참아 버텨온 세월이 74년이요.

어찌 살아가나 궁금함을 참고 살아온 74년이나 흘렀소. 오라비가 내게 준 순정 때문에, 내가 오라비에게 바친 순정 때문에, 나는 74년을 죽지도 못하고 살아왔소.

근디 그깟 병마가 얼매나 대단하다고 뒷걸음질치는 것이오? 고작 고놈의 문둥병 땜시 가까이 가보지도 못한단 말이요? 오라비의 순정, 우리의 순정이 고놈의 병마보다 못혀요?”

오순덕은 서수철에게 가까이 다가가 서수철이 끼고 있는 장갑을 벗겼다. 서수철은 더럽다고 안 된다고 했지만, 그의 손을 감쌌다. 오순덕은 자신의 친구들이 준 반지를 서수철에 끼어주어야 했기에, 서수철의 장갑을 천천히 벗겼다.

서수철은 문둥병으로 손가락을 다 잃고, 한 개의 손가락만 남아 있었다. 하나 남은 그 손가락을 보면서, 오순덕은 74년 만에 천사보다 아름다운 미소를 보이며 이렇게 말했다.

“다행이오, 반지 손가락이 남아 있잖소? 됐소. 됐소. 난 이걸로 충분히 족하오, 고맙소.” 오순덕은 반지를 서수철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오순덕은 남은 반지를 서수철의 손에 넘겨줬다. 서수철도 오순덕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

오순덕은 서수철을 가리고 있는 마스크를 벗겼다. 중절모도 벗겼다. 백발이 무성했다. 무장이 해제되자, 서수철의 얼굴이 훤히 다 보였다.

오순덕은 놀라지 않았다. 오히려 농을 섞어 “그래도 검은 머리가 남아 있구려. 젊어 보여요” 하고 장난을 쳤다.

그녀가 병마의 흉터가 남은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여전히 턱 선이 멋지오.” 그제서야 서수철도 웃었다.

서수철은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오순덕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그들의 마지막 대화는 이랬다.

“순덕이 너도 여전히 곱다.”
“농담하지 마시오.”
“참말이다. 곱다. 욕봤다.”
“욕봤소. 우리 정말 욕봤소.”

은혜를 은혜인 줄 알고 살아가는 것은 너무나 복된 일이다. 주일날 예배드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늘 그렇게 드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교회들이 함께 모여 예배드리지 못하고 있다. 당연한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예배를 드릴 수 있다는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였다.

지금 대한민국이 누리고 있는 자유는 그냥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조들의 아픔과 눈물과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것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특히 이 소설은 순정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서수철, 오순덕이라는 인물은 상상의 의해 만들어진 인물이겠지만, 모든 것을 초월한 두 사람의 순정이 너무나 아름답다.

서수철이 오순덕에게 이렇게 말했다. “순덕아 내가 순정을 바친다 했지 않느냐, 내게 순정이라는 건 말이다. 네가 아프지 않고 매일매일 배부르게 하는 것이다. 네게 배고픔을 느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게 뭔지 몰랐으면 좋겠다.

이게 바로 내 순정이다. 내 평생의 염원이다. 순정은 흔한 바람이 아니다. 소원보다 큰 염원의 바람이고 그 바람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이룰 것이다. 그래서 더 큰 염원을 바라고 그것도 이룰 것이다.”

작가는 순정에 대해 이렇게 말을 덧붙인다. “사랑한다는,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더 거대한 의미의 단어, 바로 순정이었다.” 순정은 사랑을 뛰어넘는다. 그 순정이 이 두 사람을 그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살게 했다.

예수님이 생각난다. 하나님이 생각난다. 우리를 향한 예수님의 순정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은 영원히 사랑한다는 말보다 거대한 순정이 아닐까?

이런 순정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셨다면, 우리도 예수님을 향한 순정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순정의 힘은 위대하다.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

출저: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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