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창세기 13장 14-1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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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픽사베이
존재하는 것에는 반드시 목적이 있다

존재하는 것에는 그 목적이 있다. 그 말은 목적 없이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말이다.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기 위해 존재한다. 어두운 밤은 열심히 일한 사람의 쉼을 위해 존재한다. 국가는 국민의 안녕을 위해 존재한다.

교회는 구원의 방주가 되기 위해 존재한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한다. 세상에서는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기 위해 존재한다.

세상에 70억 넘는 사람들이 살아간다. 사람들은 자기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기 위해 존재해야 한다.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존재 목적을 잘 보여준 영화가 있다. <호텔 뭄바이>다.

100여 년 전통의 아름다운 초호화 호텔 타지는 오늘도 전 세계에서 묵으러 온 수백 명의 사람들과 직원들로 북적인다. 영화에서 호텔 직원들은 고객의 편안함과 안전함을 위해 존재함을 보여준다.

호텔이 전쟁터와 같이 되기 전 직원들의 헌신 투숙객들이 행복한 저녁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 즈음 파키스탄에서 조종을 받고 있는 테러단이 호텔에 거대한 폭발을 일으켰다.

곧이어 배낭을 멘 젊은 청년 몇몇이 호텔로 들어옴으로 총격전이 벌어졌다. 호텔은 전쟁터에서나 봄직한 상황이 되었다. 호텔은 아비규환이 되었다.

이럴 때 호텔 직원들의 존재 목적을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살기 위해 직원들도 도망쳐야 했다. 하지만 직원들은 도망치지 않았다. 도리어 호텔에 남아 위험 속에 있는 투숙객들을 탈출토록 돕는다.

특히 엄격한 성격의 수석 세프 오베로이와 직원 아르준의 활약은 호텔 직원의 존재 목적을 보여준다.

사람만 존재 목적이 있는 것 아니다. 아플 때 먹는 약도 존재 목적이 있다. 저는 두 달에 한 번씩 약을 타러 병원을 간다. 약을 먹지 않으면 삶이 불편하기 때문이다. 만성병을 앓고 있는 제게는 약은 없어서는 안 된다.

이는 약의 존재 목적을 보여준다. 약과 함께 비타민을 복용한다. 비타민은 소량으로 물질 대사나 생리 기능을 조절해 주는 역할을 잘 감당한다. 복용할 때 비타민도 존재의 목적을 보여준다.

세상의 사람, 국가, 교회, 하다 못해 약도 존재 목적이 있다. 코로나19 위기 때 치료제가 절실하다. 하지만 존재 목적을 아직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백신이나 치료제가 계발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전 세계에 200만 명이 넘는 확진 자가 발생했다.

하나님께서도 존재의 목적이 분명하시다

세상에만 존재의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도 존재의 목적이 있으시다. 하나님의 존재 목적 중 하나가 사람들에게 영생을 선물을 주시기 위함이다.

오늘 말씀에 따르면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이 선물로 살아가도록 하시려는 목적으로 존재하심을 말해준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에 의해 살아가도록 하신다.

사람은 선물을 좋아한다. 선물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선물이 아니라 뇌물일까 봐 걱정할 뿐이다.

오늘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선물을 주신다. 롯이 자기 눈에 보기 좋은 땅을 선택했다. 소돔과 고모라 땅을 선택한 뒤 아브라함을 떠났다. 그러자 척박한 땅을 기반삼아 살아가야 했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선물을 주신다.

좋은 땅을 차지해 조카 롯이 떠나자, 아브라함은 앞이 막막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하나님을 의지했다. 그런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신다. 부르신 목적이 14절과 15절이다.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보이는 땅을 아브라함은 물론 아브라함의 후손에게까지 주시고자 위함이셨다. 이뿐 아니다. 두루 다녀서 본 땅까지 주겠다고 하신다. 그것이 17절이다.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께서도 존재 목적이 분명하시다. 그 존재 목적을 이땅에서 이루시려 하신다.

믿음의 사람이 받는 선물은 두 가지다

사람은 살면서 선물을 주고받는다. 생일 선물, 입학 선물, 졸업 선물, 취직 선물, 결혼 선물 등을 주고받는다. 세상에서 선물이 일상이다.

세상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은 받는 선물이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한 가지 선물을 받는다. 인간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그리스도인은 두 가지 선물을 받는다. 인간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선물이다.

오늘 롯은 인간으로서 받을 선물만 받았다. 이는 믿음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믿음으로 산 아브라함은 두 가지 선물을 받았다. 인간으로서 선물을 받았다. 동시에 하나님의 선물을 받았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선물은 그의 의로 받은 것 아니다. 행동을 통해 받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조건 없이 주신 선물을 받았다.

사람의 특기는 선물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특기는 선물 주시는 것이다. 또한 선물을 주시되, 꼭 필요한 것을 주신다.

제 아내도 선물을 잘 준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과 다르다.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받으면 불편한 선물이 많다. 그 결과 선물이 아니라 고물일 확률이 크다.

이런 이유로 아내가 주는 선물이 그리 반갑지 않다. 아내가 주는 선물은 뇌물은 아닌데 마음이 뇌물과 같이 불편하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았다. 공짜로 받았다. 우리도 공짜로 받았다. 구원의 선물을 공짜로 받았다. 에베소서 2장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사람은 인간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또 하나, 하나님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 즉 선물을 받는 질과 양이 다르다. 가장 중요한 구원의 선물을 공짜로 받았다.

하나님은 세상적 선물도 듬뿍 주신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영적 선물만 주신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육적 선물과 영적인 선물까지 주신다. 아브라함과 이미 영적인 선물을 받았다. 그 선물 믿음으로 받았다. 오늘은 세상 적 선물을 받는다. 그것도 아주 많이 받는다.

어릴 적 교회에서는 간증 시간이 많았다. 불가능이 가능성이 된 이야기들, 물질적으로 부자가 된 이야기들, 병 고침 받은 이야기 등등이다. 이런 간증은 영적인 선물은 물론 세상 적 선물도 듬뿍 주신 것을 뜻한다.

전도서 5장 19절에 이런 말씀이 있다. “또한 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그에게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제 몫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은 육적 선물도 능히 누릴 정도로 주신다. 우리 생각에 넘치도록 주신다. 그런 선물을 받을 때 놀랍다. 아브라함은 생각지도 못한 선물을 받았다. 자손에게까지 땅을 선물로 주신다.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15-16절)”.

우리는 이런 하나님에 대해 “좋으신 하나님이다”라고 고백한다. 자녀 입자에서는 부모는 좋으신 분이다. 그것은 부모가 자손을 위해 살아가기 때문이다. 낳자마자 진자리 마른자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나아가 자손이 잘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하지만 부모가 준 선물 자녀가 오래 보존하지 못한다. 부모의 사랑과 수고를 오래 간직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온 말이 있다. ‘부자 3대를 못 간다’.

재벌 2세와 3세들이 대마, 마약, 성폭행 등으로 미디어를 장식한다. SK와 현대, 남양유업 등 유명기업 자제들이 최근 상습적인 마약혐의로 물의를 일으켰다. 이는 ‘부자 3대를 못 간다’는 말을 증명해 준다.

좋은 부모의 것은 3대를 가기도 힘들다. 하지만 하나님의 것은 다르다. 하나님은 3대가 아니라 천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신 7:9)”.

아브라함이 받은 선물은 소위 ‘대박’이었다. 세상의 로또를 맞은 것이 아니라, 천 대까지 이르는 하나님의 복을 받았기 때문이다.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사람은 선물을 받으면 기분이 좋다. 그것도 공짜라면 행복이 ‘만땅’이다. 공짜 싫어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공짜일지라도 아무 것이나 받으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받고 싶은 것을 받으려 한다. 좋은 것을 받으려 한다. 어릴 적 아들은 자기가 받고 싶은 좋은 선물을 정확하게 이야기했다.

사람들이 가장 받고 싶은 것이 있다. 바로 칭찬이다. 사람들은 비난은 거절한다. 선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칭찬은 엄청난 선물이기에 받고자 한다.

기독실업인회 강서지회에서 강의할 때 작은 칭찬을 받았다. 4주 강의가 마친 뒤, 여성 회원들께서 집으로 가는 저를 붙잡고 강의가 좋았다는 칭찬을 해주었다. 제겐 아주 큰 선물이었다.

누구나 칭찬을 좋아한다. 하지만 저는 이율배반적이다. 칭찬 받는 것 좋아하면서 칭찬에는 인색하다. 이를 고치면 무척 애를 쓰고 있다.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칭찬하려면 먼저 쑥스럽기 때문이다.

선물 중 최고의 선물은 칭찬이다. 칭찬이 큰 선물인 것은 칭찬은 고래도 춤을 추게 하기 때문이다.

그 날 칭찬만 선물로 받지 않았다. 작은 토마토 한 상자까지 선물로 받았다. 그 날 지인으로부터 고맙다는 말과 함께 ‘메이플 시럽’까지 받았다. 선물을 많은 받은 날이라 하늘에 떠 있는 것과 같은 날이었다.

선물은 기분을 좋게 한다. 선물 중에 최고인 칭찬은 사람의 자존감을 높여 준다. 이 중 최고는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선물이다.

구원의 선물이 최고다

저는 선물을 받으면 행복하다. 다른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받는 선물이다. 제가 받은 선물 중에 최고는 구원의 선물이다.

그 이유는 구원의 선물은 아무에게나 주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구원의 선물은 하나님께로부터 선택된 자에게 주어진다. 구원의 선물이 최고의 선물인 것은 소수만 받기 때문이다.

초등학교 다닐 때 아프기만 했지, 상을 받은 적이 없다. 특히 조회 시간에 상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 당시는 상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이기도 했다. 마찬가지로 구원의 선물도 소수만 받는다.

마태복음 22장 14절에 구원 받는 숫자가 작음을 이렇게 말씀하신다.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마태복음 22장에 어떤 임금이 아들의 혼인 잔치를 벌었다. 임금이 종들을 보내어 그 청한 사람들을 혼인 잔치에 오라 했다. 하지만 그들이 오기를 싫어했다.

“그러자 다른 종들을 보내며 청한 사람들에게 내가 오찬을 준비하되 나의 소와 살진 짐승을 잡고 모든 것을 갖추었으니 혼인 잔치에 오소서” 하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돌아보지도 않았다. 한 사람은 자기 밭으로 갔다. 또 한 사람은 자기 사업하러 갔다. 심한 것은 다른 사람들은 종들을 잡아 모욕하고 죽였다.

그러자 임금이 노했다. 곧이어 임금은 군대를 보내어 그 살인한 자들을 진멸하고 그 동네를 불살랐다. 그 뒤 임금은 종들에게 “혼인 잔치는 준비되었으나 청한 사람들은 합당하지 아니하니 네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라”고 한다.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잔치에 손님들이 가득했다. 그 때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이 있었다.

임금은 손과 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고 했다. 그러자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이 슬피 울며 이를 갈았다고 한다. 그리고 한 말씀이 14절에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선물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최고의 선물을 받았다. 이 선물은 우리가 택함을 받았기에 받은 것이다. 우리는 이에 그치지 않고, 또 하나의 선물을 받아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것이다. 즉 하나님께 쓰임 받는 선물이다.

지금 우리가 수명을 누리며 사는 것도 하나님의 선물중 하나이다. 인간의 오복 중 하나가 장수의 복이다. 수(壽)· 부(富)· 강녕(康寧)· 유호덕(攸好德)· 고종명(考終命)의 다섯 가지 복을 오복이라고 한다. 장수는 오복 중의 첫 번째 복이다.

저는 하나님께 받고 싶은 선물이 있다.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살아가는 것이 두려울 정도로 위험한 세상에 살고 있다. 코로나19로 버스나 지하철도 마음껏 탈 수 없다. 두려우니 버스나 지하철을 탈 때마다 기도를 한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작년 헝가리 다뉴브 강에서 한국인 관광객이 사망했다. 이런 사건을 볼 때마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는 것은 더욱 두렵다. 비행기를 탈 때는 간절한 기도가 저절로 나온다.

지방에서 강의하고 고속버스를 타고 서울로 가는데, 경부고속도로에서 버스와 버스가 부딪혀 크게 망가진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사고를 목격하면 고속버스 타는 것도 아주 두렵다.

저는 지방을 8년 넘게 다녔는데 아직까지 제가 탄 버스가 다른 차와 부딪힌 경험이 없다. 이는 하나님께서 동행해주시는 선물 덕분이다. 곧 ‘임마누엘’, 하나님의 은혜 덕분이다. 우리가 하루하루 안전하게 살 수 있는 것은 ‘여호와 닛시’의 증표다.

나의 월급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이다. 자기의 힘으로 사는 것 아니다. 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기의 월급으로 살아간다. 우리가 살아가야 할 삶은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야 한다.

월급으로 사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돈 버는 것도 힘들기 때문이다. 상사에게 싫은 소리를 들어야 한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도 해야 한다. 가족을 위해 죽기보다 싫은 날도 출근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야 한다. 그럴 때 하나님의 동행의 맛을 매 순간 느끼며 살아갈 수 있다.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나님 중심으로 살아야 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은 예배가 삶의 핵심으로 사는 삶이다.

아브라함은 예배 중심으로 살았다. 오늘 18절 말씀처럼 아브라함은 제단을 쌓는 즉 예배를 드리며 살았다.

“장막을 옮겨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수풀에 이르러 거주하며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다”. 예배를 드리는 삶은 하나님 중심으로 사는 것을 뜻한다. 하나님 중심으로 살면 예배가 핵심이 된다.

그리스도인은 선물로 사는 사람이다. 예배로부터 힘을 얻어 하루를 최선을 다해서 살아야 한다.

하버드 대학교 도서관에 다음과 같은 글귀가 쓰여 져 있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던 내일이다.”

영화 <빠삐용(Papillon)>에도 이런 대사(臺詞)가 있다. “인생을 낭비하는 것은 큰 죄(罪)다.”

하나님의 선물로 사는 사람은 낭비하며 살지 않는다. 최선을 다해서 살아간다.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선물로 사는 것이 아니다. 사기로 사는 것이다.

신앙생활도 감사로 하는 사람이 있고, 사기로 하는 사람이 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은 귀하다. 그 귀한 선물 고이 간직하며 살아가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는 사기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다. 예배를 중심으로 살지 않는 사람은 사기로 신앙생활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하나님께 받은 신앙의 선물을 고이 간직해야 한다. 신앙의 선물을 소중하게 지켜야 한다. 또한 신앙을 자손에게 잘 물려주어야 한다. 여호수아와 같이 우리 가정은 하나님만을 섬기겠다고 하며 살아가고자 해야 한다.

우리는 힘으로 사는 자가 아니다. 하나님의 선물로 사는 사람이다. 사람이 주는 선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 살아가는 자다.

14절에 “바라보라”, 15절에 “주리니”와 “이르리니”, 16절이 “자손도 세리라”, 17절의 “주리니” 등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야 한다. 만약 선물대로 살지 않으면 괴물처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하나님으로부터 역사상 유례 없는 부흥이란 큰 선물을 받았다. 그럼 하나님의 선물대로 살아가야 했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은혜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세상은 교회를 괴물과 같다고 여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을 선물답게 만들지 못했다. 하나님의 선물을 선물답게 만들지 못하니 괴물과 같은 것으로 전락했다.

사울이 왕이 된 것을 하나님의 선물로 받아들이지 못하니 사윗 다윗을 죽이려 평생을 쫓아다니는 괴물로 살았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제자라는 선물을 받았는데 선물로 여기지 않으니 예수님을 은 30이 팔아먹는 괴물로 살았다. 유대인을 600만 명을 죽이는데 앞장 선 세기의 괴물 히틀러와 같은 사람같이 살아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통곡하신다. 가룟 유다에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나을 뻔했다고 하신 말씀처럼 말이다.

그리스도인은 선물로 살아가는 자다. 그 선물로 살아갈 때 세상은 예수님을 선물로 받고자 한다. 하지만 선물로 살아가지 않으면 괴물이라고 피한다.

아브라함과 같이 하나님의 선물을 받고 하나님의 선물로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하나님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김도인 아트설교연구원
▲김도인 목사. ⓒ크리스천투데이 DB
김도인 목사/아트설교연구원 대표(https://cafe.naver.com/judam11)
저서로는 《설교는 인문학이다/두란노》, 《설교는 글쓰기다(개정 증보)/CLC》, 《설교자와 묵상/CLC》, 《설교를 통해 배운다/CLC》, 《이기는 독서/절판》《아침에 열기 저녁에 닫기/좋은땅》, 《아침의 숙제가 저녁에는 축제로/좋은땅》, 《출근길, 그 말씀(공저)/CLC》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