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엡 5:18)”.

지난 4월 24일 오전 8시 30분 경,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에서 남성 A(58) 씨가 몰던 승용차가 중앙선 가드레일을 들이받고 중앙선을 넘어, 버스를 기다리던 여성 B(43) 씨가 그 자리에서 숨지고 남성 C(46) 씨가 크게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경찰 조사에서 A씨는 전날 술 1병을 마시고 난 후 잠을 제대로 못자, 술이 덜 깨 사고를 낸 것 같다는 구차한 변명을 했습니다. 아마도 형량의 수위를 낮춰보려는 얄팍한 꼼수 아닌가 싶습니다.

사고를 낸 A씨의 황당한 답변을 들으니, 자신이 저지른 실수가 얼마나 큰 무게가 있는 범죄인지를 모르는 것 같아 참으로 안타까울 뿐입니다.

자신의 안일한 생각이 한 가정을 파괴하며 가족들에게 크나큰 슬픔을 안겨주는 참혹한 현실 앞에, 그저 목 놓아 눈물을 흘릴 뿐입니다.

그리고 술이 덜 깨었으면 택시를 이용하든지, 대리기사를 부르든지, 아니면 술이 깬 후에 운전을 하든지 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변명 치고는 너무 안이하다는 생각에, 울화가 치밀어 오릅니다.

통계에 따르면, 한 해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망자 수는 439명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음주운전 적발 건수는 23만 건에 달한다고 합니다. 특히 음주 교통사고는 사망자의 실수가 아닌 고의적·습관적 행위로, 음주운전을 하는 상습범들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고가 더 이상 발생하지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솜방망이 처벌’보다,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특단의 조치는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더욱 무겁게 하는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우리 사회는 예전부터 술을 먹고 저지르는 행위에 대해 너무나 관대했는데, 오늘날에 이르러 음주운전에까지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한 순간의 음주운전이 많은 사람들의 가정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경제적 손실은 물론, 사회 전반에 끼치는 안전 불감증에 대한 우려가 심히 큽니다.

음주운전을 사전에 차단하는 대책으로 이 참에 뿌리를 뽑을 수 있는 강력한 조치는, 음주운전 처벌에 대한 법을 수정·보완하는 것입니다. 향후 음주운전으로 적발되면 최소 15년에서 무기징역형을 살도록 처벌 수위를 가중하여 ‘술’ 자만 들어도 운전이라는 생각을 아예 지울 수 있는 실효성 있는 대책을 세우고 즉시 이행해야 할 것입니다.

혹 당신의 가족 중에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가 발생했다면, 당신은 물론 가족 모두가 절망 속에서 슬픔을 안고 살아갈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내 생명과 내 가족의 생명이 귀중하다면 이웃의 생명도 귀중하다는 것을 깨닫고, 음주운전으로 인한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할 것입니다.

“술을 즐겨하는 자들과 고기를 탐하는 자들과도 더불어 사귀지 말라, 술 취하고 음식을 탐하는 자는 가난하여 질 것이요 잠자기를 즐겨하는 자는 해어진 옷을 입을 것임이니라(잠 23:20-21)”.

방주에서 나온 뒤 노아의 모습입니다.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창 9:20-21)”.

아버지가 술에 취해 잠을 자는 모습을 본 둘째 함은,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 그의 두 형제에게 알렸습니다.

함으로부터 얘기를 전해들은 형제인 셈과 야벳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습니다.

노아는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이르되, 가나안인 함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였습니다.

당대에 의인이었던 노아 역시 술 취함 때문에 자신의 아들에게 비극을 안겼던 사건은, 신앙인들이라면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먼저 술에 취하여 원인을 제공했던 자신의 잘못은 잊어버리고, 자신의 부끄러운 부분을 감싸주지 않았다고 해서 아들인 ‘함’에게 저주를 함으로서, 가나안인 함은 비운의 역사를 겪게 되는 비극의 주인공으로 전략하고 말았던 뼈아픈 이야기는 신앙인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것입니다.

가나안인 함은 아버지의 벗은 몸을 흉보려고 했던 것은 아니라고 필자는 생각해 봅니다. 물론 함이 남들이 보기 전에 재빨리, 그리고 형제에게 알릴 필요 없이 자신이 먼저 아버지에게 다가가 수치스러움을 덮었더라면, 오히려 축복의 기회가 되었을텐데 말입니다.

그저 평소 순진하게 생각 없이 하던 그대로의 삶을 살다 보니, 찾아온 기회를 놓쳐 자손 대대로 비극적인 삶으로 바뀌어버린 불행한 사건은, 인류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기억되는 슬픈 일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하신 첫 기적은 가나의 혼인잔치였습니다. 혼인잔치가 흥겨움으로 무르익어 가던 중 포도주가 떨어졌으니, 아쉬움만 남는 잔치가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어머니 마리아의 말씀에 순종했던 예수님께서 더 좋은 포도주,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최초의 기적을 창조하셨던 것입니다.

나실인이었던 세례 요한과 삼손의 삶은 어떠했습니까, 나실인은 독주를 삼가해야 함에도, 삼손은 독주를 마셔 처참한 생을 마감하는 불행을 겪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생일에 연회를 즐기던 중 술을 이기지 못하여, 하나님의 종이었던 세례 요한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술을 즐기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보여주는 사건이 아니겠습니까?

원론적으로 성경에서는 술 마시는 것을 죄로 규정하지 않지만, 단지 술에 인이 박히거나 취해서 살아가는 것을 죄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는 권사, 집사, 장로 직분에서 술을 즐기는 자를 제외하는 것은 당연한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디모데전서 3장 3절에는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술을 비롯한 모든 음식에 관한 성경의 기본 입장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문제 때문에 죄인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람을 더럽고 추하게 만드는 것은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종류가 아니라, 사람의 속에서 나오는 악한 것들, 즉 탐욕과 거짓과 질투와 음욕과 같은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술 자체가 사람을 더럽게 만들거나 죄인으로 만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특히 술을 즐기는 자는 성경에서 불의한 재판관으로 묘사 됩니다. “너는 뇌물을 받지 말라 뇌물은 밝은 자의 눈을 어둡게 하고 의로운 자의 말을 굽게 하느니라(출 23:8)”.

불의한 재판관은 공의를 저버리고 타락한 생활을 누리게 됩니다. 그리고 사회 정의를 추구해 나가는 일에 있어서도 개개인의 올바른 도덕성과 공정한 처신을 기대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입니다.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잘 빚는 자들은 화 있을 진저, 그들은 뇌물로 말미암아 악인을 의롭다 하고 의인에게서 그 공의를 빼앗는도다(사 5:22-23)”.

사람들은 술을 이용해 힘과 능력을 자랑합니다. 특히 술은 기분을 좋게 하는 마약과 같은 성분이 있지만, 때로는 무기로 변하여 강도로 또는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서슴없이 자행하는 무서운 것임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신앙인 여러분! 우리 신앙인들은 술로 인해 판단을 흐리는 일은 없어져야 하겠습니다. 술은 곧 망국으로 치닫는 지름길입니다.

음주운전으로 목숨을 잃은 가족에게 모진 슬픔을 안겨주는 일은 이제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이하여, 어린이들과 노약자와 장애인들이 술로 인하여 목숨이 잃는 일이나 가정이 파괴되는 것은 이제 없어져야 하겠습니다.

나의 가족과 나의 가정이 중요하다면 이웃의 가족과 가정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술에 의한 실수는 이 땅에서 영원히 사라져야 하겠습니다.

혹 믿는 신앙인들이 지금도 독주를 마시고 있다면 이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며, 속히 회개를 구해야 합니다.

더구나 사람은 신이 아니기 때문에 늘 실수나 사고가 열려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오늘 하루를 하나님과 동행하며, 늘 감사와 찬송이 넘쳐나는 참된 신앙의 행복을 누리며 살아가는 신앙인들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이효준 장로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