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대영 목사
▲윤대영 목사(목회상담도움협의회 대표).

성전건축은 성사(聖事)이다. 그러나 성전건축은 건축이란 공학과 성전이란 영성이 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성전건축은 현실이다. 그러므로 재정이 준비되어야 한다. 재정이 준비되지 않는다면 교회의 양적 성장에 자신이 있어야 한다. 두 가지가 미비하다면 목회자의 재산이라도 많아야 한다. 솔로몬의 성전건축은 하나님이 허락하신 무한한 축복이다. 지금도 성전 건축은 하나님의 종으로서 사명감이 아니고는 이룰 수 없다.

B교회에 간곡한 청빙이 있어 B교회에서 목회를 시작했다. ‘원미동 사람’이란 빈한한 도시 이야기의 상징이 되었던 바로 그 동네에 성전건축을 하게 되었다. 성전건축은 전교인의 결의에 의해서 성전건축을 시작했지만, 이미 부채가 3억원이 있었다. 그리고 한 푼도 준비된 재정이 없었다. 다만 8년을 7충 건물의 성전을 건축하게 해달라고 밤낮으로 기도하신 권사님들의 믿음에 큰 힘을 얻고 건축을 하기로 결심을 했다.

먼저 어떻게 건축할까? 생각하다가 먼저 성전을 건축한 유럽과 미주 여러 도시들을 방문했다. 두 가지를 발견하고 돌아왔다. 하나는 성단이 교회의 천정과 바닥 중간쯤 높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리고 한 가지는 성도들이 없다는 것이다. 즉 교회당은 오색찬란하나 신도가 없다는 것이다. 나도 성전건축을 하면 두 가지를 먼저 생각하고 건축을 하리라 마음을 정했다. 권사님들이 밤낮으로 부르짖은 뜻에 따라 지상 5층, 지하2층을 짓기로 했다. 건축비는 지상의 건축비보다 지하의 건축비가 몇 배가 들어간다. 그리고 교육관도 짓기로 한 것이다.

두 가지를 믿었다. 신도시의 입주가 될 때이므로 성도는 차고 넘치리라는 것과 성전은 하나님이 건축하신다는 간절한 믿음이었다. 무일푼으로 교회 성도 숫자 150명, 건축비 예상 70억원이다. 새벽기도회에 나아가 기도만 하고 있었다. 하루는 기도하는 중에 분명히 음성이 들렸다. ‘네가 가진 것부터 바치라’고 하셨다. 나는 한 푼도 없는 목사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반을 먹고 있는데 전화가 왔다. ‘윤대영씨죠?’ 맞다고 했다. ‘땅 있으시죠?’라고 물어왔다. 없다고 했다. 그러시지 마시고 내일 몇 시까지 어느 음식점으로 오라고 했다. 나갔다. 지난날 시무하던 교회의 Y장로님과 건설회사 전무가 나와 있었다. 그때야 생각이 났다. 당회원인 Y장로님이 부동산 중개업을 한다고 했다. 1년, 2년이 되어도 한 건의 부동산도 소개를 못하고 초근목피하고 있는 것이다. 구제차원에서 땅을 한 필지 사겠다고 했다. 명의는 Y장로님, 대출도 Y장로님 땅을 매입했다. 땅을 살 생각은 전혀 없었다. 구제였다. 그렇게 구매를 하다 보니 부동산에 대한 기억이 있을 수 없다.

간단하게 말씀하십시다. 드리는 대로 받으십시오. 장로님과는 다 합의를 했습니다. 건설사 임원은 현금 다발을 내놓았다. 어리둥절했다. 가지고 집에 와보니 현금 10억이 넘었다. 그 돈을 받는 즉시 성전 부지를 구매했다. 용기를 내어 성전 건축헌금을 작정을 했다. 1억 3500만원이었다. 그나마 1억을 작정한 집사님은 떠나고 말았다. 그 당시는 교회는 대출이 불가능했다. 금융에 근무한 경력이 있는 집사님이 교회 대지를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았다. 우리나라에서 교회를 담보로 한 대출 1호였다. 경인지역에서 20위 순위에 들어가는 중견건설회사와 건축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공사가 시작되었다. 그 당시 삼풍백화점이 무너져 수많은 사람들이 살상되었던 직후라 건축현장의 관리가 철저했다. 마치 철교공사를 하듯 철빔을 짜고 그 넓이와 높이는 150cm가 넘는 철빔으로 세웠다. 지하2층에 본당을 설계하고, 지상 5층을 세워가는 과정에서 지상2층이 조립되었을 때부터 예배를 드렸다. 아예 완공도 덜된 공간에 성도들로 차고 넘쳤다.

건축이 막바지에 이르렀을 때, 시공사가 부도를 내게 되었다. 공사는 중단되고, 일하던 노동자들이 목사에게 건축비를 요구해왔다. 원청 건설회사에 건축비를 지불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청업자들에게 지불을 해야할 상황이었다. 한 푼도 없는 목사를 당회실에 가두어 놓고 하청업자와 노동자가 린치를 가했다. 온갖 수모를 다 당했다. 폭행과 폭언, 표현불가한 고문을 당했다. 그러나 왠지 모르게 즐거워지기 시작했다. 침을 뱉고, 온갖 협박과 욕설을 퍼부었다. 그런데 심령은 기뻤다. 주님을 위해서 이렇게 수모와 폭력을 당함이 감사했다. 주님을 위해서 고난받는 것, 아무에게나 오는 축복이 아니라 초대교회 성도들이 박해와 핍박 중에 기뻐하며 순고했던 그 옛날의 신앙 선배들의 고난의 삶이 이러하였으리라. 이 기회에 순교하자는 마음을 정하고 온갖 협박과 욕설로 사람이하의 취급을 받았다. 그런데 수난을 당하면 당할수록 기뻤다.

어쩔 수 없이 목사 개인 어음을 쥐어주고 끝이 났다. 성전이 높이 올라갈수록 은행의 부채와 사채는 눈덩이처럼 커져갔다. 여기에다 IMF가 닥쳐왔다. 금리가 천정부지 치솟았다. 빚진 목사는 기도도 안된다. 기도만 시작하면 재정문제가 떠오른다. 목회자가 기도가 막히면 이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없다. 12시에 잠이 들어도 새벽 2시면 깼다. 두려워지기 시작한다. 성서에 예수님이 가장 많이 하신 말씀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했는데 자꾸만 두려워진다. 혹시 교회가 부도나면 어떻게 할까? 걱정과 근심이 깊어졌다.

그러나 신비하고, 놀라운 것은 채워진다는 것이다. 사렙다 과부가 경험했던 것처럼 신묘막측한 일이 벌어졌다. 성전건축 뒤부터 잠도 자지 못하고, 기쁨도 상실하고 오로지 살려달라고만 기도했다. 가족 누구도 아무도 몰래 하얗게 밤을 새는 날이 많아졌다. 성전이 완공될 때, 성도들도 많아져 성전의 의자가 부족하기 시작했다. 보조의자를 놓아도 자리가 부족했다. 그러나 재정은 가면 갈수록 악화되어갔다. 그래도 건축헌금을 강요하지 않았다. 신비주의 목회나 기복신앙은 철저히 배제하고 부흥회를 통한 건축헌금 강요도 해본 일이 없다. 영혼을 살찌우는 목회에만 몰두했다. 너부터 가진 것을 드리라는 그 명령대로 열심히 멍에를 지고 가기로 했다. 작금의 교인들은 헌신하지 않으려고 한다. 목사에게만 책임을 미룬다. 나는 사람도 아니다. 자신의 부채도 아닌 교회 부채를 지고 밤을 잃은 자로 살아야 했다.

그러나 코로나19로 피 땀 흘린 성전은 텅 비었다. 통곡이 나왔다. 서구교회를 보았던 그 모습이 너무 일찍 닥쳐온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보이는 성전 건축보다 보이지 않는 성전건축에 전심을 쏟을 걸 생각하고 가슴이 저려온다. 잘못된 목회인가 후회도 됐다.

윤대영 목사(목회상담도움협의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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