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
맹자

맹자 | 박경환 역 | 홍익출판사 | 437쪽 | 14,000원

플라톤이라면, 철학자에게 한 표를
맹자였다면, ‘인의’ 있는 사람에게
<맹자>, 정치외교학과의 필수과목

선거가 끝났다. 잘 뽑았을까? 어떤 사람을 뽑아야 잘 뽑는 것일까? 코로나19 바이러스에 대응을 잘 할 것 같은 사람? 우리 지역을 발전시켜 줄 사람? 어떤 사람을 정치인으로 세워야 하는가?

플라톤에게 질문한다면 그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누가 정치를 제일 잘할 수 있을까요?”

“경제를 맡겨야 한다면 절제를 아는 사람을 찾고, 국방을 맡겨야 한다면 용감한 사람을 찾고, 정치를 맡기려면 지혜로운 사람을 찾으라. 다시 말해 철학자에게 맡기라.” 플라톤이 선거를 한다면 철학자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그러면 이번에는 동양 철학자 맹자에게 물어보자. “누가 정치를 제일 잘 할 수 있을까요?” 맹자(孟子)는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인의(仁義)가 있는 사람을 뽑아야 한다.” 인(仁)이란 사람을 보고 안타까워할 수 있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고, 의(義)라는 것은 잘못된 일을 부끄러워 할 수 있는 사람을 말한다.

맹자가 선거를 한다면 사람을 안타깝게 여길 줄 알고, 잘못된 일을 부끄러워 할 줄 아는 사람에게 한 표를 던질 것이다.

유학의 대표적인 책 사서(四書) 중 한 권인 <맹자(孟子)>. 오늘날 대학교에서 배운다면, 철학과의 필수과목이 아니라 정치외교학과의 필수과목이 되어야 한다. <맹자>는 삶에 대한 가르침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나라를 다스리는 사람이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가?’ 여기에 대답하는 책이 <맹자>다.

본성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고 주장
독설가 느낄 정도로 분명히 이야기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법 전달해

<맹자>는 총 7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편인 ‘양혜왕’은 맹자가 방문한 나라가 등장한다. 양의 혜왕을 만나고, 제의 선왕을 만나고, 추의 목공을 만나서 대화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맹자는 군주가 나라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다음 편부터는 특별한 주제로 묶여있기보다, 대화한 사람들을 중심으로 묶여 있다. 2편 ‘공손추’는 제자 공손추와 나눈 대화. 3편 ‘등문공’은 등나라 문공과의 대화 외에도 다른 제자들과의 대화도 기록하고 있다.

4편 ‘이루’와 7편 ‘진심’은 대화 형태보다 주로 맹자의 말을 격언처럼 싣고 있다. 5편 ‘만장’은 제자 만장과의 대화이고 6편 ‘고자’는 성무선무악(性無善無惡說)을 주장하는 고자와의 대화다.

맹자는 성선설(性善說)을 주장한다. 사람의 본성(本性)은 태어날 때부터 선하다는 말이다. 성무선무악설은 사람의 본성이 선하지도 않고 악하지도 않다는 말이다. 맹자는 고자와 대화를 통해 성선설을 설명한다.

여러나라가 통일을 위해 싸우던 전국시대(戰國時代). 맹자는 자신이 생각하는 통치 이념에 따라 나라를 다스릴 군주를 찾아 다닌다. 그가 생각하는 통치 이념은 인의(仁義)다. <맹자>에 나오는 첫 대화가 인의(仁義)에 대한 내용이다.

맹자가 양혜왕(양 땅을 다스리는 혜왕)을 접견했다. 왕이 말했다.

“선생처럼 고명한 분이 천리 길을 멀다하지 않으시고 찾아주셨으니 장차 우리 나라에 이익이 있겠지요?”

맹자가 말했다. “왕께서 어째서 이익에 대해서 말하십니까? 진정 중요한 것으로는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그러면서 서로 이익에 대해서만 생각한다면 다투게 되고, 나라가 위태로워진다고 말한다. ‘당신 같이 대단한 분이 오셨으니 우리나라가 큰 이익이 되겠습니다.’

어찌 보면 인사차 한 말이다. 그러나 혜왕이 인사차 건넨 좋은 말에도 맹자의 대답은 단호하다. ‘이익을 생각하지 말고 인의를 생각하라.’

어떤 왕을 만나든지 맹자의 대답은 단호하다. 철학자보다 독설가처럼 느껴질 정도로 분명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맹자에게 가르침을 청하는 혜왕의 말에도 맹자의 대답은 거침이 없다.

양혜왕이 “과인은 기꺼이 선생의 가르침을 받고 싶습니다.”

맹자가 대답했다. “사람을 죽이는데 몽둥이로 죽이는 것과 칼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그러면 칼로 죽이는 것과 정치로 죽이는 것이 다를 것이 있습니까?”

“다를 것이 없습니다.”

“지금 왕의 주방에는 살찐 고기가 있고 마구간에는 살찐 말이 있는데, 백성들은 굶주린 기색이 있고 들에는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니 이것은 짐승을 몰아서 사람을 잡아 먹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후 혜왕을 떠나 제나라 선왕을 만났을 때도, 맹자의 생각은 변함이 없다. 오히려 왕이 바르게 다스리지 못하면 왕을 바꾸어야 한다고 말했다.

맹자가 제선왕(제나라를 다스리는 선왕)에게 물었다. “자기의 아내와 자식을 친구에게 맡기고 여행간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그가 돌아오니 아내와 자식이 추위에 떨고 있다면 그 친구를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와 절교하겠지요”라고 왕이 대답했다.

다시 맹자가 물었다. “만약 형벌을 관장하는 사법관이 아랫사람을 잘 다스리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파면시킬 것이오”라고 대답했다.

맹자가 다시 물었다. “나라 안이 잘 다스려지지 못하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이렇게 묻자 왕은 좌우를 돌아다보며 딴 소리를 했다.

대화의 흐름상 선왕이 할 수 있는 대답은 “왕을 바꾸어야겠지요”, 이 대답이다. 차마 그렇게 대답할 수 없었던 선왕이 딴 소리를 하고 있는 모습. <맹자>에서는 그 모습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덕으로 다스리는 근본이란 ‘먹을 것’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나라 꿈꿔
인의로 다스리려면 성선설이 필수적

또한 맹자가 말하는 덕으로 다스리는 삶의 근본은 ‘먹을 것’이다. 백성들이 일단 먹고 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안정적인 생업(恒産)이 없으면 안정적인 마음(恒心)도 없어집니다.”
“지금은 풍년에는 내내 고생하고 흉년에는 죽음을 변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래 가지고서는 죽음에서 자신을 건져 낼 여유조차 없는데 어느 겨를에 예의를 익히겠습니까?”

맹자가 말하는 인의(仁義)로 다스리는 나라는, 경제적인 안정 위에 세워진다. 특히 이 시대에는 전쟁이 빈번했다. 왕들이 농번기에도 병사들을 동원했기 때문에, 한참 농사를 지어야 할 때 장정들이 전쟁터로 끌려가는 일이 많았다.

그러니 나라 경제가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맹자가 말하는 인의로 다스리는 나라는 먼저 백성들이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다.

그러면서 토지제도 까지 말한다. “어진 정치는 반드시 토지의 경계를 확정하는 것에서 시작되오. 경계의 확정이 바르지 않으면 정전의 토지가 균등하지 못하고 토지의 수확에서 얻는 봉록역시 공평하지 못하게 되오.” <맹자>는 철저히 정치 교과서다.

군주가 인의(仁義)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 이러한 맹자의 주장에는 반드시 선행되어야 할 것이 성선설이다. 사람의 마음이 원래 착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왕은 ‘인의’로 다스리지만 백성들은 왕을 따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인의로 다스리는 나라가 가능하기 위해서는 백성들의 마음이 원래부터 선하다는 전제가 필요하다. 그래서 맹자는 성선설을 계속 강조한다.

인의로 다스려라? ‘말씀’으로 해야
하나님 말씀대로 정치할 사람 뽑길
기독교는 ‘계시’로 바른 길 알려줘

<맹자>에서 ‘인의’로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면 성경에서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신명기 17장 14-20절에 보면 자세히 나온다.
왕으로 세워진 자는 ‘병마(兵馬)’를 많이 두지 말고, ‘아내’를 많이 두지 말고, ‘은금(銀金)’을 많이 쌓아두지 말라고 말한다. 그리고 딱 하나 하나님의 말씀을 옆에 두고 읽으며 지키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을 뽑아야 하는가? 하나님 말씀의 원리대로 정치하는 사람이다. 자신의 욕심이나 권력이 목적인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의 원리대로 정치하는 사람. 백성을 사랑하고, 연약한 이들을 돌아 볼 줄 아는 사람이다.

무엇보다 맹자의 기준과 말씀의 기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기독교의 독특성이다. ‘성경에 나타난 왕의 조건’과 ‘<맹자>가 말하는 왕의 조건’을 통해, ‘기독교’와 ‘일반 철학’의 차이를 알 수 있다.

국회조찬기도회 성탄트리 점등
▲점등식 및 송년감사예배 참석자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국회조찬기도회
맹자가 강조하는 것은 ‘인의’다. 이것은 ‘내 안에서 나오는 마음’이다. 그러나 성경이 강조하는 것은 ‘말씀’이다. 이것은 ‘외부로부터 주어지는 내용’이다. 여기서 일반 철학과 기독교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기독교는 바른 길을 ‘득도’로 알아가지 않는다. ‘계시’로 하나님이 알려주신다.

<맹자>의 기준이 사람의 마음이라면, 기독교는 기준이 하나님이 주신 말씀이다. 성경의 기준은 사람이 정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알려 주신다. ‘득도’냐 ‘계시’냐. 이것이 가장 큰 차이다.

구원도 우리의 힘으로 이루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다. 한 마디로 기독교인들의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다. 즉 내가 가진 힘으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선거가 끝난 지금도 성도가 해야 할 것은 기도다. 우리의 힘이 부족해서 나라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다. 그러니 말하기 전에 기도하라. 행동하기 전에 기도하라. ‘이 나라 이 민족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라!’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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