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 자체보다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에 집중
과학은 신앙을 포기하게 하는 학문이 아니다
과학이 못하는 유일한 설명 하나님만이 가능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

존 레녹스 | 홍병룡 역 | 아바서원 | 196쪽 | 12,000원

2017년 두란노에서 출간한 저자의 <신을 죽이려는 사람들: 과학은 신을 매장했는가?(416쪽)>보다 더 쉽고 얇은 책이 있다면 바로 이 책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라고 말할 수 있다.

저자 존 레녹스가 바로 그 목적을 위해 이 책을 썼기 때문이다. 레녹스는 ‘과학과 하나님 논쟁’의 입문서가 될 수 있도록, 변증 그 자체보다는 변증의 핵심인 과학과 기독교의 관계에 집중하여 이 책을 썼다.

옥스퍼드대학교 수학과 명예교수인 레녹스는 C. S. 루이스의 마지막 강의를 들은 바 있고,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등 유명한 무신론자들과 공개 토론을 하기도 했다. 2021년 고려대에서 개최될 ‘베리타스 포럼’ 주강사로 올 예정이라고 하니, 복음주의 기독교 대표 지성인이자 변증가 존 레녹스를 국내에서 만나볼 아주 좋은 기회가 생길 것 같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있을까?(원제: Can Science Explain Everything?)’. 이 질문에 무신론자도 ‘아니오’라고 대답할 것이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다.

과학은 이 글을 쓰고 있는 필자의 두뇌와 몸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작용과 현상을 설명할 수 있지만, 필자가 왜 이 글을 쓰고 있는지 설명할 수 없다. 그런데 왜 저자는 조금은 자극적일 수 있는 그리고 대답이 뻔할 수 있는 이 제목으로 책을 썼을까?

‘과학주의’, 곧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은 참이 아니라는 신앙이 오늘날 많은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숭배하고 있는 사상이기 때문이다.

신이 없다는 믿음, 그래서 우주 만물이 저절로 목적과 의미 없이 존재하게 됐고 존재한다는 믿음은 절대로 과학적이지 않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 알 수 없는 영역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부정하고 어떻게든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에, 과학철학 즉 신앙과 믿음의 영역이 동반된 자기 주장을 하는 것이다. 바로 그것이 지금 기독교와 부딪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이다. 결코 과학 그 자체가 기독교와 부딪히는 것이 아니다.

레녹스가 소개한 하나의 사례는 참으로 신선하면서도 충격적이다. 대학교 시절 노벨상을 받은 유명한 과학자와 기독교에 관하여 이야기하다, 그의 방에 끌려가 여러 지식인에게 둘러싸여 ‘지적 장애자가 되고 싶지 않으면 기독교 신앙을 포기하라’는 경고를 들은 이야기다.

레녹스는 반대의 경우를 상상해 보라고 말한다. 기독교인 교수들이 무신론자 학생을 둘러싸고 ‘기독교를 받아들이라’고 요구했다면, 징계를 받지 않았겠냐고. 그만큼 기독교와 과학주의는 어떤 신앙을 추구하고 어떤 신앙을 포기할 것인지에 대한 싸움이다.

과학은 자동으로 신앙을 포기하게 만드는 학문이 아니다. 이는 위대한 과학자들이 신앙인이었다는 사실을 통해 명백하게 증명된다.

레녹스는 공산주의 시대 러시아에서 교수진과 학생들에게 갈릴레오, 케플러, 파스칼, 보일, 뉴턴, 패러데이, 클러크 맥스웰 등이 하나님을 믿는 ‘견실한 신자’이자 과학자였다는 것을 강의했을 때, 청중이 이런 역사적 사실을 처음 들어서 분노했다고 말한다(25쪽).

그들이 그 사실을 처음 알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과학이 기독교를 반대하기 때문인가? 아니다. 공산주의가 신봉하는 무신론이 기독교를 반대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갈릴레오 사건을 보라. 기독교도 과학적 사실을 신앙을 위해 반대하지 않는가?’ 하고 무신론자들이 물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녹스는 극단적 오해를 받고 있는 갈릴레오 사건을 재조명하여, 그동안 기독교가 받은 오명을 어느 정도 벗기고 과학 자체를 반대한 것처럼 보인 유명한 그 사건을 재평가한다(28-33쪽).

저자는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 인격적이고 초월적인 창조주 하나님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분이지만, 과학이 발견하는 내용에 반하는 분도 아니라고 주장한다.

창조 진화 레고 조류 새 유신진화
▲‘만들어진 자연’, 레고로 만든 새의 모습. ⓒ픽사베이
뉴턴이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고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반면, 호킹은 중력과 블랙홀에 관한 중요한 연구 결과를 가지고 하나님을 부정했다. 과학이 발견한 원칙과 사실이 하나님을 긍정 혹은 부정한 것이 아니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하나님을 부정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법칙이 존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는 자기모순이고, 무에서 유가 나왔다는 일관성 없는 주장이다.

누가 왜 만들었는가에 대한 대답은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영역이며, 기독교가 역사적으로 확실하게 대답해온 영역이다.

나아가 레녹스는 오직 과학만이 이성적이고 종교는 이성적이지 않다는 오해를 불식시키고, 반대로 과학은 철저히 이성에 입각한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의문을 제기한다. 왜냐하면 과학이 연구하는 모든 행위에 기본적인 믿음이 바탕이 되기 때문이다.

가령 존 폴킹혼 교수는 “과학은 물리적 세계의 수학적 이해 가능성을 설명하지 않는데, 이유인즉 이것이 그렇다는 것은… 과학의 기초가 되는 믿음(faith)의 일부이기 때문(71쪽)”이라고 말했다. 저자의 이 같은 설명은 과학은 이성, 종교는 신앙에 바탕을 둔 것이란 맹목적인 과학주의의 믿음을 포기하게 만든다.

책의 후반부에서는 기독교가 어떻게 이성적으로 설명 가능한지에 관한 변증 내용을 다룬다. 가령 성경은 진지하게 여길 수 있는 자료인지(5장), 기적의 문제를 어떻게 봐야 하는지(6장), 고대문서와 사본을 볼 때 신약성경은 믿을만한 책인지(7장),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성적으로 혹은 과학적으로 합리적인 설명이 가능한 사실로 볼 수 있는지(8장).

이를 통해 레녹스는 기독교 교리가 담긴 성경과 성경을 통해, 기독교인이 믿고 있는 바가 절대로 주관적이고 비이성적이며 반과학적인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한다.

존 레녹스
▲저자 존 레녹스. ⓒ페이스북
마지막으로 레녹스의 변증은 전도라는 올바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 기독교는 객관적인 사실을 이성적으로 분별하여 받아들이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어떤 면에서 과학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아가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본 적도 없지만, 그리스도와 인격적인 관계를 맺고 확실히 변화된 삶으로 기독교가 사실임을 개인적으로 입증하는 수많은 증인을 낳는 참된 종교이다. 기독교는 망상이 아니다.

기독교는 과학이 발견한 사실로 더욱 지지를 얻는, 합리적·이성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종교이다. 과학은 모든 것을 설명할 수 없지만, 과학이 설명하지 못하는 그것을 기독교는 설명한다.

과학은 하나님의 모든 신성과 능력이 드러난 만물을 관찰하고, 기독교는 그것을 만드신 분이 자신을 드러내신 성경을 통해 만물의 창조주를 설명한다.

오늘날 많은 크리스천들은 교수실에 불려간 레녹스처럼, 소위 지식인들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 같다. ‘너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지적 장애인 혹은 광신도가 되는 거야’라는 협박을 받는다.

하지만 그 과정을 담대하게 통과하여 훌륭한 지식과 통찰력을 가지고 학문을 연구하고 가르치는 존 레녹스가 이 책을 통해 우리에게 말한다. 과학은 결코 기독교를 반대하지 않는다고.

과학은 오히려 무신론을 반대한다.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그 영역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과학의 관찰 대상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창조주께서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나타내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하신 말씀은 결코 비이성적이거나 반과학적이지 않다. 오히려 만드신 만물과 더불어 더 명확한 그림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합리적으로 설명한다.

과학을 맹신하여 신앙을 버릴 것인가 아니면 과학과 신앙이 함께 노래하는 하나님을 믿을 것인가? 레녹스의 이 책을 통해 독자가 지혜로운 후자의 선택을 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