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네의 일기
안네의 일기

안네 프랑크 | 홍경호 역 | 문학사상사 | 468쪽 | 12,000원

사회적 거리두기, 필요하지만 불편
교회도 회중 예배 대신 가정 예배로
불편하나, 자녀들과 말씀 나눌 기회

‘사회적 거리두기’, 필요한 대응이지만 크고 작은 불편을 피할 수 없다. 발등에 불이 떨어진 고3들. 개학이 한 달이나 미뤄졌다. 고3만이라도 먼저 개학해 달라는 고3 학부모들의 요청이 많다.

대학 교수들은 처음 해보는 온라인 강의가 익숙하지 않다. 학생들이 동시에 접속해서 서버가 다운되는 학교. 집에서 수업을 진행하면서 사생활이 노출되는 교수, 영상 수업을 숫제 포기하고 음성 녹음 파일을 공유하는 교수 등.

여러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온라인 수업에 대한 웃지 못할 해프닝들이 소개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 필요한 조치이지만 감수해야 하는 불편은 분명히 있다.

더욱이 교회들은 회중 예배 대신, 가정 예배로 전환하고 있다. 공간이 넉넉한 교회들은 로테이션으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며 예배를 드린다. 자발적 참여와 동참으로 바이러스 확산 방지에 효과를 거두고 있지만, 많은 불편이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나 불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발견도 있다. 그동안 발견하지 못한 가치가 드러나는 기회가 된다.
“자녀들과 함께 말씀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가족들이 함께 영상으로 예배를 드리고, 그 자리에서 함께 말씀을 나누었다. 자녀들은 부모님의 신앙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부모들은 자녀들의 기도제목을 들을 수 있었다. 같은 교회에 다니지만 함께 말씀을 나누기 어려웠던 현실. 온라인 예배는 새로운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불편은 있다. 그러나 불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로운 발견도 있다. 중요한 것은 관점이다. 어떤 면을 보는가?

2년간 집 밖을 나가지 못했던 그녀
안네의 일기, 관점의 중요성 일깨워
절망 가운데서도 행복 바라본 소녀

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의 눈을 피해 은신처에 숨어 지내야 했던 12살 소녀 안네 프랑크. 그녀가 쓴 일기는 관점의 중요성을 일깨워주기에 충분하다.

1942년 7월 6일부터 1944년 8월 4일 독일 경찰에게 발각될 때까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집 밖을 나가지 못했다. 두세 달 사회적 격리가 아니다. 2년 동안 은신처에서만 생활했다.

그때 쓴 일기 속에는 절망만 들어 있지 않다. 그 속에서 행복을 이야기하고, 소망을 이야기한다.

“오늘 아침 창 앞에 앉아 있을 때, 나는 밖을 내다보며 자연의 심오함과 신의 존재를 실감했어. 그때 나는 정말 행복했지. …

부(富)는 언젠가 잃어 버릴 수 있지만, 마음의 행복은 한때 숨어 버리는 일은 있어도 언젠가는 꼭 다시 되살아나. 살아 있는 한 반드시.”

절망의 상황에서도 사춘기 소녀의 눈은 행복을 보았다. 어려움과 슬픔 속에서도 행복과 희망의 관점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었다.

<안네의 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1991년 공개가 결정된 ‘무삭제 완전판’을 읽어야 한다. 1947년 처음 출판된 <안네의 일기>는 원본 일기에서 많은 내용이 삭제된 일기였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딸의 소망에 따라 일기를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원본 그대로 출판할 수 없었다. 그 속에는 사춘기 딸의 성(性)에 대한 고민이 솔직하게 들어 있었고, 함께 생활했던 사람들과 겪었던 갈등도 그대로 적혀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오토 프랑크는 사춘기 소녀의 성(性)에 대한 부분과 가족 간의 갈등, 사람들과의 갈등을 뺀 부분만 출판했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는 1980년 사망했고, 유언에 따라 안네의 모든 일기 원본과 판권을 ‘안네 프랑크 재단’이 넘겨받았다. ‘안네 프랑크 재단’은 안네의 일기 원본의 가치를 알아보고, 1991년 무삭제 완전판을 공개하기로 결정했다.

그전까지 사람들은 <안네의 일기>를 ‘나치 독일의 유대인 탄압 정책에 따른 가족의 비극’이라는 측면에서 읽어 왔다.

하지만 삭제되지 않은 원본 일기는 그 내용만 담고 있지 않았다. 사춘기 소녀의 성(性)과 사랑, 가족에 대한 마음. 내면의 솔직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었다.

“언젠가 엄마가 돌아가실 때의 일은 쉽사리 상상할 수 있어도, 언젠가 아빠가 돌아가신다는 사실은 도저히 상상할 수 없습니다.”

엄마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서 쓴 일기다.

“페터(안네가 좋아하게 된 소년)가 나를 정복한 것이 아니라 내가 페터를 정복했습니다.”

“요즘 내가 살고 있는 목적은 페터를 만나는 것뿐입니다.”

자신의 연애 감정을 솔직히 드러내고 있다.

일기, 속마음 털어놓기 위해 시작돼
분노와 슬픔, 기쁨과 행복 모두 있어
일기 시작한지 한 달만에 숨어 지내

우리나라에서 무삭제 완전판 판권을 가지고 있는 출판사는 ‘문학사상사’가 유일하다. 문학사상사에서 1995년 무삭제 완전판 <안네의 일기>를 출판했다.

1942년 6월 12일에 처음 쓴 <안네의 일기>는 이렇게 시작한다. “당신에게라면 내 마음 속의 비밀을 모두 다 털어놓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제발 내 마음의 지주가 되어 나를 격려해 주세요.”

여기서 말하는 당신은 일기장이다. 안네는 일기장에 ‘키티’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키티에게 편지를 쓰는 형태로 일기를 쓴다. 일기 속에서 자신이 일기를 쓰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다.

“드디어 문제의 핵심, 내가 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가에 대해 말할 차례인데, 그건 한 마디로 말해서 마음을 털어놓을 만한 참다운 친구가 나에게 없기 때문입니다.”

함께 놀고 수다를 떠는 친구들은 많지만 진짜 속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는 없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일기장에는 자신의 속 마음을 다 털어놓겠다고 이야기 한다. 실제로 <안네의 일기>는 안네의 분노와 슬픔, 기쁨과 행복…, 그 어느 것 하나 숨김없이 들어 있다.

쓰기 펜 남자 잉크 종이 연필 손 손가락 블루 셔츠 책상 쓰다 사업 사무실 writing write 글 김도인
안네가 처음 일기를 쓴 1942년 6월 12일만 해도 아직 은신처에 숨기 전이었다. 안네의 가정은 독일에서 살다가, 나치의 유대인 핍박 정책에 따라 193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1940년 독일이 네덜란드를 점령하고, 이듬해인 1941년부터 네덜란드에 있는 유대인들을 잡아가기 시작했다.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안네의 부모님은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안네의 아버지 오토 프랑크가 운영하는 식료품 공장 창고와 사무실 건물 뒤쪽에 은신처를 마련했다. 나치의 눈에 띄지 않게 조금씩 가구와 생활 도구를 옮기기 시작했다.

아직 완전히 준비되지 않은 1942년 7월 5일. 독일 점령군이 안네의 언니 ‘마르고’를 잡아가려 하자, 그날 밤 안네의 네 식구는 은신처로 피신한다. 그때가 1942년 7월 6일. 안네가 일기를 쓰기 시작한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때 일이다.

안네와 가족들은 1944년 8월 4일 독일 경찰에게 발각되기까지 그곳에서 지냈고, 안네의 일기는 1944년 8월 1일까지 기록되어 있다.

은신처에는 안네의 가족 외에 ‘판 단’씨 가족도 함께 숨어서 생활했다. ‘판 단’씨 가족은 ‘판 단’과 그의 아내 ‘판 단 부인’, 그리고 안네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아들 ‘페터’, 이렇게 세 명이었다. 이후 치과 의사 뒤셀 씨가 합류해서 총 8명이 함께 살아간다.

서로 다른 성격의 가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공간. 그 속에는 갈등도 많고, 또 웃음도 있다. 낮에는 건물에 창고와 사무실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기침 소리도 낼 수 없었지만, 그래도 그들을 도와주는 네덜란드 사람들도 함께 있었다.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에서도 안네의 시선은 현재에 머물지 않았다. 안네는 전쟁이 끝나면 저널리스트나 작가의 삶을 살고 싶다고 말했다. 또한 자신의 일기를 출판하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말한다.

“나는 대다수의 사람들처럼 뚜렷한 목표 없이 그냥 타성에 젖어 살고 싶지 않습니다. 주변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고 기쁨을 주는 존재이고 싶습니다. 내 주위에 있으면서도 실제로 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필요한 존재이고 싶습니다. 나는 죽은 후에도 여전히 기억되고 싶습니다.”

<안네의 일기>가 전 세계에 출판되면서, 안네의 이런 바람은 이루어졌다.

각자의 은신처에서 움츠리고 있었지만
불편만 보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 모색
신앙의 가치 재발견하는 코로나19 사태

제2차 세계대전, 나치를 피해 숨어 살아야 했지만, 그 속에서도 희망을 놓치지 않았던 안네. 그 속에서도 행복을 발견했던 14살 소녀. 그녀는 오늘날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불편만 보지 말고 새로운 가능성을 보세요.’

코로나19 바이러스 사태. 우리는 각자의 은신처에서 움츠리고 있다. 마스크를 쓰고, 마음껏 찬양하지도 못한다. 함께 모여 통성기도 하던 시간이 그립고, 믿음의 가족들과 식탁교제를 하던 때가 그립다. 많은 것이 불편하고, 삶 자체가 어색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속에서도 새로운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 마스크를 쓰며, 그 동안 다른 이에게 함부로 말했던 부주의한 혀를 조심할 것이다. 마음껏 찬양하지 못하는 현실을 통해, 여전히 찬양보다 불평이 많은 우리의 모습을 돌아 볼 것이다.

나와 다른 지체들과 함께 하느라 불편했던 시간들이, 나와 다른 지체와 함께해서 행복했던 순간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새로운 관점으로 새로운 가치를 보게 될 것이다.

예수 믿는 사람을 잡으러 가던 바울.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관점이 달라졌다. 이제 그에게 다메섹은 핍박하는 자리가 아니라 전도하는 자리가 되었다. 달라진 것은 상황이 아니라 관점이다.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4)”.

코로나19 사태로 불편한 것이 많지만, 우리는 이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발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의 가치를 다시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하고 있는 지금. 우리는 각자 삶에서 ‘성도의 일기’를 쓴다. 그 속에서 소망을 말하고, 그 속에서 감사의 조건을 찾아내게 될 것이다. 성도는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담임,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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