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달라 마리아
▲기근으로 어두운 상황에 처한 사마리아에서 어두운 집 사이 빛과 함께 들어오는 막달라 마리아의 모습은 마치 이 영화의 목적을 말해주는 듯 하다. ⓒ영화 <막달라 마리아: 부활의 증인> 스틸컷
본문: 요한복음 4장 25-26절

주님께서 메시아에 대해 말씀하시는 부분입니다. 주님은 대화의 주제를 점진적으로 끌어오시다가, 메시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이 부분에서 주님은 메시야가 바로 자신이라고 제시하십니다. 이는 주님이 스스로 주님의 존재를 밝히는 원리입니다. 이를 배경으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주님의 자기 증언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25-26절)”.

주님은 지금 사마리아 여인에게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증언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에 물을 달라는 데서부터 시작해 예배의 문제까지 주제의 변화를 이끌어 오시다가, 드디어 본론 격인 메시아론에 도달한 것입니다. 대화를 여기까지 이어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는 “당신이 야곱보다 크니이까?”하는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이는 긴 대화의 주제가 변하면서 본론에 도달한 인상을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매우 점진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 특이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 대화의 주제가 ‘물’에서 갑자기 사생활로 바뀌자 움찔 놀랐습니다.

그때 이 여인이 순간을 모면하고자 새로 꺼낸 화제가 바로 예배의 장소에 관한 문의였습니다. 이때 주님은 여인의 질문의 핵심을 묵살한 채 본격적인 주제인 예배론을 설파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예배는 당연히 메시아를 갈망하고 있는 속 깊은 마음을 드러내기에 이른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주님은 자신을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해하기 어려워 토로한 여인의 말은 오실 메시아에 대한 소망을 드러내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은 이 여인에게 인생의 모든 슬프고 억울한 매듭들을 모두 풀어주실 분으로 믿을 수 있도록 스스로 증언해야 했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자기 증언인 이유입니다.

2. 주님의 자기 증명

25-26절에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는 주님의 자기 증명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증언과 증명이 비슷한 것 같은데 약간 다른 점이 있습니다.

증언은 재판에 출두하여 구술로 행하는 진술입니다. 반면 증명은 어떤 사항, 판단, 이유 등에 대해 그것의 진위를 증거를 들어 밝히는 것입니다.

이런 시각에서 ‘주님의 자기증언’은 자신에 대하여 말하는 것이라면, ‘주님의 자기 증명’은 이제 사마리아 여인이 충분히 납득이 가도록 존재를 입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자기 증명’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여인으로 하여금 삶의 기쁨과 평화가 느껴지도록 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여인이 도무지 경험하지 못했던 색다른 경험이기 때문입니다. 여인은 애시당초 숙명적일 수밖에 없는 혈통에 대해 쌓인 원한으로 삶의 기쁨과 평화를 맛보지 못하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처음의 상면하는 장면에서 뱉다시피 시큰둥하게 물었던 배타적인 거부감의 도전적인 첫 마디가 이를 입증합니다.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 이는 물론 유대인이 사마리아 인과 상종하지 않는 적대적인 반목의 지역감정이기도 했습니다.

그야말로 오랜 세월 비극의 역사를 배경으로 삼고 살아왔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 그리하여 파생되는 사회 제도의 구조적인 모순 속에서 계층 간 위화감과 갈등의 골이 더욱 깊어졌던 것입니다. 주님은 이것을 해결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어야 했습니다.

3. 이제 나를 믿을 수 있겠느냐?

25-26절에서 우리는 생략된 부분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주님의 증언과 증명에 대한 여인의 느낌을 요구하는 부분입니다.

주님은 아마도 여기까지 우리가 대화를 해 왔고, 많은 설명을 하느라 시간을 투자하면서 대화를 나누었는데, 그 결과는 어떤가에 대한 것입니다. 이는 여인의 결단을 정리하는 부분입니다.

여기서 “이제 주님을 믿을 수 있는가?”에 대해 우리는 사마리아 여인의 반응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직도 사마리아 여인은 지금 자신이 행하는 일이 불만의 상태인가요?

하긴 현실의 문제가 갑자기 사라진 것이 아니기에 흡족하지 못했는지 모릅니다. 오죽이나 물 긷기가 싫었으면, 다시는 여기 물 길러 오지 않게 해달라고 했을까?

아마 여인에게 현실적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떳떳하게 물 한 번 길어보는 것이 바라던 행복이었는지 모릅니다. 그래도 우리는 다행스럽게도 긍정적인 반응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여인에게 대화가 꼬이지 않고 차원이 높은 개념으로 점차로 발전되어갔다는 점에서 입니다. 대화의 주제가 자연스럽게 발전되어 지금 기다리고 있는 메시야까지 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가는 인생의 길에 믿음으로 주님을 만나서 내면의 충만함을 경험하면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우리가 주님을 바라며 살게 하소서, 주님의 말씀과 함께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나아가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에게 오전한 희망을 두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