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페미니즘
복음주의 페미니즘

웨인 그루뎀 | 조계광 역 | CH북스 | 344쪽 | 15,000원

시사 고발 프로그램이 인기 있는 것은 시청자가 알지 못했던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정의와 공의를 실현하기를 대부분 원하기 때문일 것이다.

웨인 그루뎀이 쓴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복음주의 안에 일어나고 있는 분명한 사실을 밝히고 성경의 진리를 통해 바로잡기 원하는 신학 고발 서적이다.

저명한 신학자의 이름부터 출판사, 교단, 신학교, 영어 성경 번역본까지, 그루뎀은 “복음주의 페미니즘으로부터 자유주의로 기우는 미끄러운 비탈길”에 서 있는 대상이 누구인지 생생하게 고발한다.

웨인 그루뎀은 조직신학 서적으로 유명하다. 하버드에서 웨스트민스터, 케임브리지 대학 신약학까지 철저한 공부를 마친 그는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와 피닉스 신학대학원에서 교수로 가르치며 동시에 침례교 목사로 섬기고 있다.

그가 쓴 조직신학 책은 미국 대부분의 신학교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고, 존 파이퍼, 제임스 벡 등과 함께 ‘성경적 남성성과 여성성에 관한 심의회’라는 복음주의 단체를 인도하고 있다.

그루뎀의 주요 관심사인 ‘성경적 남성성과 여성성’이라는 주제를 특유의 철저하고 조직적인 설명 방식으로 기술한 책이 바로 <복음주의 페미니즘>이다.

존 파이퍼와 함께 그루뎀이 가지고 있는 성경적인 남성성과 여성성이란 “교회 안에서 다스리고, 가르치는 사역은 남성들에게 국한되지만, 특정한 다스림과 가르침의 사역을 제외한 나머지 사역은 남녀가 똑같이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 상호 보완주의이다(28쪽).

그리고 그루뎀이 이 책을 통해 고발하는 대상은 평등주의자로, 남녀가 다스림과 가르침의 사역을 포함한 모든 사역을 똑같이 공유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제는 평등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이 자기 주장을 지지하기 위해 성경을 해석하고 사용하는 데 있어 자유주의를 따른다는 것이다.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그루뎀은 이 책을 통해 누군가를 비방하거나 공격하려는 목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그루뎀은 ETS에서 서문으로 주고받은 내용이나 책의 내용을 직접 인용하고, 사람이나 단체의 공식적인 입장을 사실 그대로 옮기기 위해 대단히 노력했다는 걸 알 수 있다. 개인적인 생각이 아니라 평등주의자가 밝힌 공개적인 입장을 다룬 것이다.

또한 그루뎀은 평등주의를 지지하면서도 다른 영역에서 자유주의로 흘러가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인지하고 언급한다. 그러면서도 그들이 자기 책에서 전하는 말을 진지하게 들어주길 바란다.

자유주의로 기우는 현상을 상세하게 논한 그의 책을 읽고도 평등주의를 지지하기 원하거나 그루뎀의 설명에 문제를 제기하기 원한다면, 공적으로 합당한 논리를 가지고 논의하기 원한다(27쪽).

나아가 자기 책을 읽고 극단적인 반응을 보여 극단적인 보수주의에 빠지지 않기를 소원한다. 여성이 할 수 있는 사역까지 다 막고 그들의 재능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는 율법주의에 빠지지 말라고 당부한다.

저자는 본격적으로 2부에서 성경의 권위를 직접적으로 부인하는 15가지 평등주의자의 주장, 그리고 3부에서 성경의 권위를 실질적으로 훼손하는 열 가지 주장을 다뤘다.

남성과 여성이 똑같이 교회의 인도자와 교사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평등주의자가 기록된 성경의 말씀, 곧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딤전 2:12)” 등과 같은 말씀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지에 관한 주장들이다.

어떤 학자는 본문의 내용이 성경에 들어있지 말아야 할 필사자의 메모였다고 주장하고, 어떤 평등주의 리더는 바울의 가부장적인 태도가 묻어있는 오류 있는 본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본문의 ‘여자’가 그냥 모든 여성이 아닌 거짓 가르침을 전하는 영지주의 교사라고 말하고, 그래서 바른 교리를 전하는 여성은 여기에 해당 사항이 없다고 말한다.

사도 바울은 창세기 1장 천지창조의 순서를 가지고 남성의 권위를 설명하는데, 평등주의자 중에서는 창세기 1장은 신화라서 그런 원리를 도출하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고 말한다.

웨인 그루뎀의 성경과 정치
▲저자 웨인 그루뎀 박사. ⓒ유튜브
그루뎀은 왜 이런 변칙적인 해석을 계속해서 만들어내는지 그 이유를 묻는다. 그리고 이렇게 묻는다.

“우리는 이런 추세에 깊은 우려를 느껴야 마땅하다. 평등주의 지지자들은 과연 성경의 권위를 가장 우선적으로 생각할까? 혹시 그들의 내면 깊은 곳에 페미니즘이 먼저이고 성경은 나중이라는 생각이 도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평등주의 지지자들의 논증을 많이 접할수록, 이 사람들이 ‘나는 평등주의가 옳다고 확신해. 성경에서 이것을 지지할 방법을 찾을 수 있는지 살펴봐야겠어. 하나의 방식이 효과가 없으면 다른 방식을 시도하고, 스물다섯 가지 방식이 모두 효과가 없으면 스물여섯 번째 방식을 찾아볼 거야. 평등주의가 틀렸다는 것을 인정할 수는 없으니까’라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지는 않나 하는 궁금증이 더욱 증폭된다(288쪽).”

결국 그루뎀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이다. 그래서 이 책의 고발의 결말을 ‘궁극적으로는 성경이다’로 삼았다.

모든 평등주의자가 자유주의를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주장하는 평등주의자가 구사하는 논리가 성경의 권위를 “거듭 훼손함으로써 교회를 조금씩 자유주의로 기울게 만들고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기 때문이다(341쪽).

책의 말미에 페미니즘을 지지하는 미국 주요 교단이 같은 논리로 동성애를 수용하는 현실을 보면, 그루뎀의 우려가 단지 과장된 것이 아니란 걸 알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만일 독자가 평등주의를 지지한다면 그루뎀이 지적한 25가지 왜곡된 성경 해석에 어떻게 성경적으로 대답할 것인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복음주의 기독교의 특징은 성경의 무오성과 충분성을 믿는 것이다. 여성 사역자나 교사가 자기 은사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복음에 무슨 해가 될지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오히려 남자나 여자나 그리스도 안에 다 하나라고 선포한 그리스도의 복음은 제한보다는 자유를 교회에 선물하지 않을까? 하지만 그루뎀이 제기한 문제처럼 가장 큰 문제는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셨는지 제대로 아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내 교회를 세우리라”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이 원하신 품위와 질서가 무엇인지 성경을 통해 분명히 그리고 충분히 밝히셨음을 믿는 것이다.

성령께서 지금도 영감으로 쓰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리스도가 머리 되신 교회를 은혜와 진리로 인도하신다는 것을 믿고 순종하는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문화와 사회가 교회가 무엇을 할지 결정한다면, 유행하는 사람들의 사상과 의견이 교회가 무엇을 가르치고 믿어야 할지 정한다면, 동정과 공감이 교회가 바라고 추구하는 것을 바꾼다면, 교회를 어떻게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인가(딤전 3:15).

그루뎀은 마지막으로 독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어느 길을 선택할 것인가? 일평생 성경의 가르침에 순종하는 길이 참된 축복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고 믿고 그 길을 충실하게 걸어갈 것인가? 아니면 복음주의 페미니즘으로 돌아서서 한 걸음씩 자유주의의 길로 나아가 성경의 권위를 갈수록 더 많이 부인할 것인가(341-342쪽)?”.

그루뎀의 고발은 독자의 반응을 강력하게 요구한다. 상호 보완주의 안에 있는 복음주의 신자이거나 평등주의 나아가 자유주의를 지지하는 복음주의 신자라도, 그루뎀의 고발 앞에 결정해야 할 것이다. 성경으로 자기의 입장을 변호해야 할 것이다.

자신이 비탈길로 내려가고 있는지, 아니면 비탈길에서 벗어나 굳건한 반석 위에 설 것인지 결단해야 할 것이다. 그런 면에서 그루뎀의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이 시대 꼭 필요한 책이다.

하나님께서 이 생생한 고발 앞에 독자의 영혼을 그분이 원하시는 뜻대로 움직여 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