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준 장로.
▲이효준 장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로마서 12장 1-2절은 구원 얻는 자들이라면 성도의 영적 예배(禮拜), 즉 우리의 영혼과 전 인격을 포함한 예배를 뜻하는 ‘삶의 제사’를 드리며 살아가라고 말씀해 줍니다.

특히 구약에서는 자신의 온 몸을 제물로 바쳤듯이, 성도는 생활의 전 부분에서 예배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예장 통합 총회헌법 제4편 ‘예배와 예식’ 제2장 두 번째에 명시되어 있는 것처럼, 예배는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의 응답이며 구체적인 행위입니다.

‘이 예배는 인위적인 행사로 되는 것이 아니며 성경 말씀의 증거와 성례전 가운데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보여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총을 깨닫는 믿음 가운데서 이룩되어야 한다’.

네 번째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의 손으로 만든 지정된 장소에 제한된 하나님이 아니시기에 예배의 장소도 자유로울 수 있다. 그러나 예배는 성별된 장소인 예배당에서 드리는 예배가 필수적이다.’

제3장 ‘주의 날’을 보십시오. ‘사도 시대부터 우리 주님께서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일주일의 첫날을 우리 기독교는 거룩한 안식일로 정하여 지켜오고 있다. 이 날을 거룩하게 지키기 위하여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의 생업을 중지하고 모든 가족이 예배당에 나아가 성도들과 함께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은혜를 받으며 하나님의 자녀 된 특권을 누려야 한다.’

그렇다면 예배란 성경을 읽고 기도와 찬송으로 하나님에 대한 존경과 믿음으로 나아가는, 거룩하고 성스러운 존경의 대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리이며, 하나님과의 깊은 교제가 이루어지는 순간, 세상의 시간, 일상의 시간과 다른 구별된 시간, 구별된 장소 그 거룩한 자리가 바로 예배의 자리가 아닐까요?

특히 요즘 같이 우한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로 교회가 문을 닫고 영상예배로 대체하거나, 아니면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니면 자칫 그런 핑계로 예배를 게을리하다 자칫 신앙에 멍이 들어, 마귀 사단이나 사이비 이단들의 꾀임에 빠지지 않을까 심히 염려가 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흔히 우리가 드리는 ‘좋은 예배’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 온전히 영광 돌리는 예배,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느끼며 하나님을 경험하는 예배일 것입니다.

그 예배 속에서 하나님께서 지금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강력한 선언과 고백이 뒤따라야 합니다. 찬양을 부를 때나 기도할 때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인정하고, 말씀 가운데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을 순종으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좋은 예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삶 속에 찬양과 기도와 말씀이 함께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삶과 예배가 일치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배는 단지 교회 안에서 정해진 시간과 정해진 프로그램에 따라 드리는 것만이 아닙니다.

예배란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삶 그 자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로 인해 주님께서 주신 기쁨을 주변에 선포하게 되는 복음의 통로가 될 수 있는 예배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지방에 들어가셔서 죄 많은 한 여자와 대화하시면서, 영생과 참된 예배의 의미와 자신이 메시아임을 밝히시면서 하신 말씀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靈)과 진리(眞理)로 예배할 지니라(요 4:24)”.

예수님과 대화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께 예배드리는 장소에 대해 질문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여인의 질문과 동떨어진 대답을 하십니다.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여인은 예배를 드려야 할 장소를 물었지만, 예수님께서는 어떻게 예배드려야 하는지를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예배는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드려야 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특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 속 삶의 모든 자리에서 영과 진리로 예배를 드려야 한다는 중요성을 선포하는 말씀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개별적 인격이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귀한 시간이며, 그를 통해 가장 소중한 것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고 고백하고, 예수님의 은혜가 늘 필요하다고 간구하며 겸손한 순종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교회 예배 문제로 세상의 조롱거리가 된 것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일이자 참으로 속상한 일입니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나 싶고, 우리의 믿음을 깊게 점검해 보는 시간과 성찰이 필요한 때인 것 같습니다.

더구나 예배는 구원받은 자가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임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예배라고 보기 힘듭니다. 하지만 예배를 통해 구원을 받는 경우도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진정한 의미의 예배자란 회개를 통해 죄 사함을 경험하고 성령의 도우심을 경험하며, 결국 예수님을 닮아가려는 모습을 삶 속에서 나타내는 신앙인들을 뜻합니다.

물론 예배를 드리는 장소는 교회이지만, 성경의 역사를 보면 처음부터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던 것은 아닙니다.

인간이 처음으로 예배를 드린 것은 대홍수 사건이 끝난 후, 노아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데서 시작됐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이곳 저곳 유목생활을 하며 떠돌아다니면서 제단을 쌓아 제사를 드렸습니다.

모세 역시 광야를 떠돌면서 성막이 등장했고,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다윗의 도움으로 성전을 세우게 되어, 그 성전에서 처음으로 제사를 드리게 되었습니다.

이 모두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나무 형틀에서 단 한 번의 속죄물이 되셨기 때문에, 더 이상 짐승의 피를 흘려 드리는 희생의 제물이 필요 없게 된 결과입니다.

삶이란 인간들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는 동안 살아가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어, 주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살아갈 수 있느냐에 초점이 모아집니다.

그래서 신앙인들의 삶은 예배와 일치해야 합니다. 요즘 코로나19 바이러스로 인하여 자칫 신앙에 큰 상처를 입어 실족할 수 있는데, 이런 때일수록 하나님께 더 나아가 성심을 다하여 기도하며 찬송해야 하겠습니다.

예배는 장소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

인생 가운데 좋지 않은 환경이 밀려와 고통스럽더라도 참고 인내하며, 주님을 향한 시선으로 주님과 함께 하는 예배만이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 아닐까요?

그리고 그 기쁨의 열매를 맺기 위해 내 이웃을 향한 긍휼의 시선이 함께할 때, 우리 신앙인들의 삶은 주님께서 원하시는 진정한 예배가 될 것임을 믿어야 하겠습니다.

또한 삶의 자리에서 최악의 변수로 인하여 핍박으로 이어지더라도, 예배만은 반드시 지켜야 ‘닭 울기 전 주님을 배신하는 일’이 없을 것임을 명심해야 하겠습니다.

이효준 장로(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