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두천 두레마을 트리하우스
▲동두천 두레마을 트리하우스.
이승만 박사는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관계가 아주 우호적이었을 때, 일본이 미국에 전쟁을 걸어올 것을 예측하여 발표하였습니다.

미국의 지도자들이나 국민들은 아무도 이승만 박사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1941년 12월 7일에 일본의 진주만 습격을 받고서야 이승만을 재평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후 미국이 소련과 동맹국으로 독일과 싸울 때, 이미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이 미국의 적이 될 것을 예측하였습니다.

1945년 해방 이후 미국은 소련과 합작하여 한반도에 좌우합작 정부를 세우려 하였습니다. 이에 이승만 박사는 이는 공산화되는 지름길이라 하여 강경하게 반대하였습니다. 미국은 이런 반대를 몹시 언짢게 여겨 한때는 이승만을 제거할 계획까지 세우기도 하였습니다.

당시 이승만 박사의 강력한 반공정신과 반공투쟁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우리는 공산 치하에서 살고 있을 것입니다.

이승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폴란드, 헝가리, 체코 등의 동구권 나라들이 공산화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대한민국의 공산화를 막는 데 인생을 걸었습니다. 이런 이승만의 태도와 노선을 미국은 물론 대한민국의 좌익세력들은 백방으로 반대하였습니다.

이승만 박사는 1945년에 귀국 후 행한 연설에서 공산당을 일컫기를 양의 무리에 섞여 사는 이리라 표현하며, 공산당의 위험을 온 국민들에게 깨우치는 연설을 하였습니다.

그는 자유와 반공노선을 확고히 언급하였습니다. 이승만의 반공 반소 정신을 미국 국무부는 몹시 못마땅히 여겨 이승만을 제거하려 하였습니다.

이승만을 제거하고 소련과 연합하여 조선에 좌우합작 정부를 세우려 한 것입니다. 김구 선생이 이끄는 임시정부 안에서도 김규식, 김무봉 등이 공산주의 노선에 동조하여 좌우합작 정부를 세우는 데 동조하였습니다.

이런 때에 확고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는 이승만 박사의 신념과 투쟁이 없었더라면, 우리 대한민국이란 나라는 세워지지 못하고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 체제에서 살고 있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