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망, 희망, 말씀, 위로, 환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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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4장 25-26절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와 메시야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과 사마리아 여인의 대화는 주제가 점진적으로 더 높은 개념으로 발전되고 있습니다.

처음 물에서 생수에 대해, 생수와 영원한 생명에 대해, 그리고 예배와 메시야에 대해 주제가 진전되고 있습니다. 오늘은 메시야에 대해 집중하게 됩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메시야 곧 그가 오시면’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메시야가 오신다고 들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절)”.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가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막연하게 전해 들어 알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를 두고 우리는 막연한 기대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행동 역학 구조에서 보면, 생각은 곧 행동이라 볼 수 있습니다. 생각이 행동을 유발하는 원동력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행동을 유발하는 생각이 가장 활성화되면, 바로 생각의 흐름이 동기 부여를 유발하게 됩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는 기대감을 갖게 됩니다. 기대감(期待感)이란 어떤 일이나 대상이 원하는 대로 되기를 바라고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인간은 기대감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고, 기대감을 통해 인간관계를 형성합니다. 기대감은 정신적으로 일정한 힘을 갖게 만드는 특성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기대감은 잘못된 일을 바르게 고치게 만들기도 하고, 기대감을 갖게 되면 잘못된 인간관계를 개선시켜 나갈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면, 어떻게 될까요? 그다지 되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막연한 기대감을 가지면, 무모하게 행동으로 옮길 때가 많습니다.

물론 운이 좋아서 제대로 생각한 대로 맞아 떨어지는 경우도 간혹 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대부분 막연하게 기대했던 일들이 현실화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기대가 구체적이지 않고 명확한 생각에 바탕을 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이고 추상적이며 모호한 것에 근거를 둔 막연한 경우라면, 제대로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하기 때문입니다.

2. 메시야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25절에서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가 중요합니다. 여기에는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를 은근히 기다리고 있음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여인이 메시야를 기대하는 것은 아마도 자신의 형편이 더 나아지라는 이유 때문일 것입니다. 직역하면 “그가 오시면 나의 형편이 나아질 것이다”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은 신앙적인 이유라기보다, 순전히 삶의 조건이나 여건이 더 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너무나 많이 속고 살아서 사람에 대한 기대감이 그다지 없는 터에, 메시야는 뭔가 다를 것이라는 심리가 속에서 더 자란 결과이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는데, 세월이 머리 위로 많이 흘러 그렇게 변하게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이 여인도 노을 비치는 강가에서의 추억이 있을 것입니다. 그 머리를 감겨 주겠다는 그 말 한 마디에 마치 큐피드(Cupid)의 화살이 심장에 맞은 듯 정신이 아득해져서, 순정을 송두리째 걸었던 지난날이 있었는지 모릅니다. 꽃가루 하나가 강물 위에 떨어지는 소리마저 언뜻 엿보일 만큼 그렇게 티 없는 영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은 어쩌다가 설명하기 조차 힘들만큼의 삶이 되어, 말 못하는 아픔을 감내하고 살고 있는 처지가 되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이 여인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이유라고 볼 수 있습니다.

3. 모든 것이 좋게 해결될 것을 믿고 있다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25-26절)”.

이 말씀은 메시야가 오시면, 나의 문제와 모든 민족의 문제가 말끔하게 해결될 것으로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이 믿음은 아마도 구원하는 믿음이라기보다, 지금보다는 생활이 더 나아지리라는 믿음입니다. 이는 생활이 힘들고 지친 괴로움이나 결핍이 만들어 내는 보상심리라고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대개 열등감의 약점을 카버하기 위해 일어나는 무의식적인 작용을 ‘보상 작용(compensation)’이라고 말합니다. 인간 존재에 보편적인 열등감이나 무력감과 이를 보상 또는 극복하려는 권력에의 의지, 즉 열등감에 대한 보상 욕구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로 아들러(Alfred Adler)는 보상 욕구 또는 보상 심리가 인간에게 미래를 개척하는 원동력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청각장애에도 불구하고 위대한 음악가가 된 베토벤, 언어장애를 극복하려고 위대한 웅변가가 된 데모스테네스, 생후 19개월에 성홍열을 앓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헬렌 켈러가 노력 끝에 교육가와 저술가가 된 것이 모두 보상 심리의 결과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나이가 들수록, 인생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주어진 환경과 여건을 잘 활용하여 주님을 의지하는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주님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주님을 바라는 마음으로 살게 하소서, 더 나아가 주님을 온전히 믿고 살아가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주님만을 온전히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