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 15장 1-8절

김재욱 연애는 다큐다 83 연인 미안 사랑 포옹
접속의 시대

1965-1976년 사이의 세대를 X세대라고 합니다. 저는 X세대입니다. 그리고 X세대의 자녀세대를 K세대라고 부릅니다. K세대는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로 현재 청소년기와 청년기에 있는 세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K세대에서의 K는 Katniss Everdeen(캣니스 에버딘)의 앞글자 K를 의미합니다. 캣니스 에버딘은 실제 인물은 아니고, 수잔 콜린스의 소설 『헝거게임』 시리즈 3부작의 여주인공인 가상의 인물입니다.

한국에서는 덜했지만, 구미에서는 캣니스 에버딘 캐릭터에 대한 엄청난 팬덤이 형성되었고, 그 세대가 놓인 사회적 상황에 대한 하나의 상징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K세대’라는 용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경제학자인 노리나 허츠는 K세대의 주된 특징을 이렇게 요약했습니다. “I connect, therefore I am(나는 접속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한 마디로 K세대는 접속세대라는 것입니다.

K세대만이 아니라, 우리나라를 보면 전 세대가 접속하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마트폰 하나로 길거리에서 언제든지 인터넷을 접속할 수 있습니다. 게임을 할 수 있고 전화도 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 접속하여 더 많은 사람들과 자주 만날 수 있고 온라인 인맥 또한 우리가 원하는 만큼 늘릴 수 있습니다. 대부분의 지식도 온라인상에서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접속의 폐해

온라인 접속은 우리에게 많은 편리함과 유익을 주고 있지만, 온라인 접속이 다 좋은 것이 아닙니다. 얼마 전 코로나19만큼이나 한국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 터졌습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입니다.

25세의 조주빈이 미성년자을 비롯한 여성들을 협박해서 성착취물을 만들어 텔레그램 비밀대화방을 통해서 판매하다가 경찰에 잡혔습니다.

뉴스에서는 그 행태가 너무나 끔찍해서 다 말로 표현할 수 없다고 이야기합니다. 조주빈은 평범한 대학생이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이후 그가 잘못된 것에 접속하였을 때, 악마로 변하고 말았습니다.

지난 3월 27일에는 조주빈이 운영하던 ‘박사방’ 가담자로 추정되는 남성이 한강에 투신까지 했습니다. 투신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박사방 때문에 죄책감이 들고 불안하다. 가족에게 미안하다.”

경찰은 이 남성 외에 3만명이 넘는 사람이 접속한 것으로 추정을 하고 있습니다. ‘n번방’사건은 나쁜 것에 접속했을 때 어떤 결과가 초래되는 지를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접촉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시대

이 시대를 보면서 안타까운 것은 우리의 삶에 접속이 많아지다 보니, 접촉이 많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입니다.

접속과 접촉은 언뜻 보면 비슷한 것처럼 보이지만 차이가 있습니다. 접속은 일방적이고 자기중심적입니다. 간접적입니다. 내가 접속을 하고 싶으면 하고 하기 싫으면 안 하면 됩니다.

이에 반해 접촉은 일방적이 아니라 쌍방적입니다. 직접적으로 만나야 가능합니다.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사람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반응하면서 그 분위기를 함께 누립니다.

지금 우리는 코로나19 때문에 접촉을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거리두기’라고 해서 2m씩 떨어져서 생활하라고 합니다. 우리는 접속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접속하기보다 접촉하며 살아야 합니다.

여성의 평균수명이 남자보다 높은 이유

보통 여성의 평균 수명이 남자보다 6-8년 정도 더 길다고 합니다. 물론 평균수명 차이에 대한 생물학적 증거가 없기 때문에, 정확하게 그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캐나다 출신의 발달심리학자 수전 핀커라는 분이 <빌리지 이펙트>라는 책에서 그 이유가 대면 접촉에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여성들은 남성들보다 작은 모임을 더 선호하고, 그들과 끈끈한 유대관계를 맺습니다. 여성분들, 계모임 같은 것 많이 하지 않습니까? 이 유대관계는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관계입니다.

여성은 미혼이든 기혼이든 아니면 남편과 사별을 한 후든 이 관계는 계속 유지가 됩니다. 반면에 남자는 결혼을 하고 나면 이런 작은 모임의 유대관계를 맺기보다, 아내에게 의존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래서 남성이 아내와 사별하고 혼자 남게 되면 더 이상 끈끈한 유대관계를 찾지 못하고 단명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우리 주변에서 할머니가 먼저 돌아가신 경우, 할아버지들이 얼마 있지 않아서 돌아가는 경우들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여자들과 남자들에게 적용되는 경우는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남자들도 대면 접촉을 많이 하면 장수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장수하고 싶으면 접촉을 많이 하셔야 합니다.

접촉이 아니라 접속하며 살아야 한다

우리는 접속을 무시할 수 없는 시대에 살아가고 있지만, 접속만 하면서 살아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살아 있는 인격체입니다. 살아있는 인격체이기에 접촉이 필요합니다.

교육자 루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산다는 것은 단순히 숨 쉬는 것이 아니다. 산다는 것은 행동하는 것이며 우리 신체의 살아 있는 부분을 통해 삶을 느끼는 것이다. 존재의 의미는 살갗의 느낌에 있다.”

인격과 인격이 만나는 접촉이 삶을 풍성하게 만듭니다. 행복하게 만듭니다. 접촉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접촉하게 하는 촉각은 인간의 오감 중에서 제일 민감한 감각입니다. 촉감은 생명이 잉태된 직후부터 발달되는 근원적인 감각입니다.

엄마와 어린 생명은 촉감을 통해서 대화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은 어머니의 자궁에서 시작된 접촉의 경험 때문에 평생 동안 따뜻한 접촉을 그리워합니다.

우리는 사람과 접촉도 잘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예수님과 접촉을 잘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접촉해야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께서 당신은 참포나무요 하나님 아버지는 농부이고, 하나님의 자녀들은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포도나무 비유를 통해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은 이것입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4-5)”.

예수님께서 가지된 우리가 열매 맺는 비결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가지가 자기 잘났다고 스스로 떨어져 나가 열매 맺겠다고 해봐야 열매를 맺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가지는 포도나무에서 떨어져 나가는 순간 이미 살아 있는 가지가 아닙니다. 죽은 가지입니다. 죽은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잠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죽은 가지는 결코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불쏘시개 밖에 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과의 접촉을 끊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예수님께서는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주님 안에 거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면 예수님은 당연히 내 안에 거하시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 거하라는 것은,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으라고 하는 것은 곧 예수님과 접촉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접촉하면 열매 맺을 수 있습니다. 삶이 풍성해집니다. 삶이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코로나19라는 어려운 상황 가운데 놓여 있지만, 코로나19가 우리와 주님의 접촉을 끊어놓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예배당에서 함께 예배드리지 못하고 있지만, 이것이 우리와 주님의 접촉을 가로막을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어떤 장소, 어떤 상황 가운데서도 예배함으로, 기도함으로 예수님과 접촉할 수 있습니다.

접촉이 중요한 이유

접촉이 중요한 이유는 접촉이 사랑의 매개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접촉을 통해 사랑을 전달합니다. 접촉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표현합니다.

접촉은 사랑을 표현하는 언어입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접촉을 통해 사람과 사람과의 소통이 이루어지고, 예수님과 우리와의 소통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1995년, 미국에 있는 메모리얼 병원에서 쌍둥이 여자아이들이 태어났습니다. 이 아이들의 이름은 카이리 잭슨과 브리엘 잭슨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두 자매는 예정일보다 12주나 빨리 세상에 나와서 몸무게가 1kg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동생인 브리엘은 심장에 결함이 있었습니다. 의사들은 모두 브리엘이 오래 살지 못하리라 예상했습니다.

두 아기는 인큐베이터에서 생존을 위한 투쟁을 벌였습니다. 다행히 언니 카이리는 날이 갈수록 건강을 되찾았지만 동생 브리엘은 예상대로 점점 쇠약해졌고, 수차례 죽음의 문턱을 넘나들었습니다.

담당 의사도 더는 손쓸 방법이 없어서 브리엘의 부모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브리엘은 얼마 남지 않은 듯합니다.”

제대로 안아보지도 못한 딸의 사형선고 앞에 잭슨 부부는 망연자실하며 눈물을 쏟았습니다. 아이의 부모도 지켜보던 의료진들도 모두가 아기의 죽음을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브리엘을 돌보던 게일이란 간호사가 브리엘이 아픈 몸으로 ‘무언가 간절히 말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게일 간호사는 담당 의사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습니다. 카이리와 브리엘 두 자매를 인큐베이터에 함께 있게 해보자는 것이었습니다.

담당 의사는 의료 규정에 어긋난다며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하지만 19년 경력의 게일 간호사는 쌍둥이를 같은 인큐베이터에 눕히는 해외의 사례를 소개하며, 마지막으로 두 자매를 함께 있게 하자고 애원했습니다.

결국 담당 의사와 부모의 동의를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게일 간호사가 두 아기를 같은 인큐베이터에 눕혀졌을 때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습니다.

언니가 천천히 몸을 돌리더니, 아픈 동생의 등을 감싸 안는 것이었습니다. 두 아기들의 포옹을 경외의 눈으로 지켜보던 의료진은 곧 더 놀라운 일을 겪게 되었습니다.

포옹을 하고 있는 사이에, 위험 수위에 있던 동생 브리엘의 혈액 내 산소 포화도가 정상화된 것입니다. 의료진은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킨 줄 알았지만, 각종 수치들이 차례로 정상으로 돌아오고 브리엘이 숨을 고르게 쉬기 시작했습니다.

그제서야 의료진은 기적의 한가운데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마침내 브리엘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두 자매는 지금 건강하게 잘 살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언니가 동생을 살릴 수 있는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접촉이었습니다. 이 접촉은 동생을 향한 사랑이었습니다. 아직 핏덩어리에 불과한 아기이지만, 언니는 사랑으로 동생을 껴았습니다. 그 사랑이 동생을 살렸습니다.

현대 의술로 손쓸 수 없어 포기한 생명을 접촉을 통한 사랑이 살린 것입니다. 사람과 사람의 접촉도 이런 기적을 만들어 낸다면, 우리가 주님과 제대로 접촉할 때 어떻게 되겠습니까?

가전제품은 전기와 접촉해야 제 기능을 한다

가전제품들은 그 자체로 아무런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전기와 접촉을 해야 합니다. 전기와 접촉하는 순간, 가전제품들은 자신의 기능을 하기 시작합니다.

전기와 접촉하는 순간 냉장고는 물을 얼음으로 만듭니다. 에어컨은 시원한 바람을 내 뿜습니다. 전열기는 열을 발합니다. 형광등은 빛을 발합니다. 세탁기는 빨래를 합니다.

이 외에 모든 가전제품들은 전기와 접촉하는 순간 사람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들을 합니다.

예수님과 접촉하면 변화된다

제가 여러분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수 있는 것은 주님과의 접촉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감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입니다. 너무나 더럽고 추한 죄인에 불과합니다.

주님과 접촉하고 주님의 살아계심을 경험하셨기에 그 은혜로 오늘 제가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주님과 접촉하므로 저는 변화되었고 인생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저만 그렇습니까?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고 잡아 죽이기까지 했던 바울도, 주님과 접촉하고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 했던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생명을 내어놓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 아니십니까? 아니, 이 세상 가운데 주님과 제대로 접촉한 사람은 모두 다 변화되었습니다.

코로나19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주님과 접촉하고 있다면, 이 상황을 이겨나갈 수 있습니다. 이런 어려운 상황 가운데, 우리는 감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접촉의 은혜요. 능력입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주님과 거룩한 접촉을 할 수 있습니다. 말씀으로 접촉할 수 있습니다. 기도를 통해 접촉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과 접촉하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과 연결됩니다. 연결되면 우리의 삶이 변하게 됩니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은혜가 부어집니다. 우리의 삶이 풍성해집니다.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예수님과 접촉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낸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8)”.

우리가 주님과 접촉해서 열매를 많이 맺으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뿐만 아니라 그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지금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입니다. 3월 28일 기준 확진자가 9만 2,472명이고, 사망자는 10,023명입니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 있는 이탈리아에서 얼마 전 그리스도인들에게 잔잔한 감동의 선물 준 사람이 있습니다. 이 사람은 이탈리아 롬바르디아주에서 코로나19와 싸우고 있는 의사 율리안 우르반(Iulian Urban, 38)입니다. 이 분은 무신론자였는데요. 이 분의 간증문이 이탈리아 기독교뉴스에 실렸습니다.

“수많은 어두운 악몽 같은 순간들을 지나왔지만, 지난 3주 동안 우리 병원에서 발생한 일들을 내가 직접 보고 경험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 악몽은 현재 실제로 흐르고 있고 또 더욱 거대해져만 가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몇 명이 병원으로 실려 왔고 그다음은 몇십 명, 그리고 몇백 명이 몰려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의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저 ‘누가 살 수 있고, 누가 죽음을 맞으러 집으로 보내져야 하는가’를 결정하고 라벨(표식)을 붙이는 사람들에 불과합니다.

2주 전까지만 해도 나와 내 동료들은 무신론자였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 같은 것을 믿지도 의지하지도 않았고 그저 사람을 치료하는 논리적 학문인 의학을 배웠습니다. 나는 언제나 내 부모님이 교회에 나가는 것을 비웃었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9일 전 코로나19 확진을 받은 75세의 한 목사님이 우리 병원에 도착했습니다. 그는 자신도 고통 가운에 있으면서 주위의 죽어가는 이들의 손을 잡아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성경을 읽어주곤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깊은 인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우리가 처음 그가 전하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는 모두 그저 피곤함에 눌리고 낙담한 의사들이었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끝난 것 같은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고백할 수 있습니다. 한낱 무력한 인간인 우리들은 매일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이 상황에 대하여 더 이상 무엇을 할 수도 없는 한계에 이르렀습니다. 우리는 지쳤고 우리의 동료 2명은 사망했으며 다른 동료들은 이미 바이러스에 확진되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끝나는 상황에서, 우리는 ‘하나님이 필요함’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짧은 몇 분의 휴식 시간이 주어질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서로 이야기를 나눕니다. 치열한 무신론자였던 우리가 지금 매일 우리의 평강을 구하고 우리가 환자들을 잘 돌볼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주님께 구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믿을 수가 없노라고 말입니다.

어제 75세의 그 목사님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더는 찾지 못했던 ‘평강’을 선물로 주고 가셨습니다. 현재 상황이 계속 이어진다면, 아마 우리도 곧 목사님의 뒤를 따를 것입니다.

나는 지금 이 땅에서 나의 무익함을 깨닫지만, 나의 마지막 호흡을 다른 이들을 돕는데 줄 수 있기 원합니다. 나는 나의 동료들의 죽음과 그들의 고통에 둘러싸여 내가 하나님께로 돌아온 것에 대한 기쁨이 넘칩니다.“

하나님과 접촉하고 있는 한 목사님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무신론자인 의사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는 열매를 맺게 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코로나19라는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접촉된 사람들을 통해 일하십니다. 열매 맺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십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하나님은 인간과 접촉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보내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접촉하시기 위해, 이 땅 가운데 예수님을 보내셔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셨습니다. 예수님이 만일 십자가에 죽지 않으셨다면, 하나님과 단절된 인간은 다시 하나님과 연결될 길이 없습니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과 접촉하는 것이 너무나 쉽게 느껴집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인간과 접촉하기 위해, 자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못 박는 엄청난 대가 지불을 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놀라운 이 사랑과 희생에 감사해야 합니다. 이 사랑을 갚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 사랑을 갚는 길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을 예수님과 접촉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접속의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접속보다 접촉하며 살아야 합니다. 사람과도 접촉해야 하고 무엇보다 주님과 접촉해야 합니다.

참포도나무이신 주님과 접촉할 때 우리는 열매 맺게 됩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을 얻게 됩니다. 우리의 삶이 풍성해지고 행복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영광 받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이재영 대구 아름다운교회
▲이재영 목사는 “인문학 독서를 신앙생활이나 예수님과 연결할 수 있다”며 “글쓰기를 처음 배웠을 때는 폭이 좁다며 혼도 많이 났다”고 말했다. ⓒ이대웅 기자
이재영 목사
대구 아름다운교회 담임
저서 ‘말씀이 새로운 시작을 만듭니다’ ‘동행의 행복’ ‘희망도 습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