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과 문화 사이
복음과 문화 사이

대니얼 스트레인지 | 정성묵 역 | 두란노 | 224쪽 | 12,000원

이 책을 소개하는 데 가장 도움이 되는 건 저자 대니얼 스트레인지가 프롤로그에서 밝힌 책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안을 보지’ 않고도 세상 ‘안에’ 있을 수 있다. 세상에 ‘속하지’ 않고 세상을 닮지 않고도 세상 ‘안에’ 있을 수가 있다. 분노와 자기 의가 아닌 진리와 은혜로 세상에 참여하는 것이 가능하다.

정신이 팔려 어리둥절해서 아무것이나 받아들이는 대신, 문화를 잘 소비하는 것이 가능하다. 텔레비전을 보고 소설을 읽고 비디오 게임을 하면서 믿음이 시들기는커녕 더 좋아지는 것이 가능하다.

당신(그렇다, 바로 당신!)이 친구와 지난밤 축구 경기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로 마무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 책을 통해 그렇게 될 수 있다(26-27쪽).”

많은 크리스천들이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부분이다. 특별히 갈수록 세상에 ‘플러그 인’하는 부분이 다양해지고 쉬워지는 만큼, 크리스천은 그들이 보고 읽고 즐기는 것에 신앙을 접목하는 법을 배우고 연습할 필요가 있다(이 책의 원제이다, Plugged In).

하지만 실제로는 많은 크리스천이 자신이 속한 문화에 스스로 담을 쌓고 살기 위해 노력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문화에 잠식되어 별다른 차이 없이 살아간다.

중간 지점을 찾는 이들도 많이 있지만, 적당히 즐기고 적절히 주의하면 괜찮을 것이란 막연한 방침을 가지고 살아갈 뿐, 저자가 이 책을 통해 제시한 것처럼 문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며 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목적을 추구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런던 오크힐신학교에서 문화, 종교, 공공신학을 가르치며 이스트핀칠리 침례교회의 장로로 교회를 섬기고 있는 대니얼 스트레인지 교수는 이 책을 통해 독자에게 크리스천은 반드시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우리가 문화 참여를 피할 수 없고, 주님이 창조하신 세상에 살면서 주님을 충성스럽게 따르기 위해 문화에 참여해야 하며, 복음을 전하는 사명에 충성하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반드시 문화에 참여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크리스천의 문화 참여는 선택이 아니다. 저자가 정의한 문화, 곧 “우리가 세상에 대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전하는 이야기들”이 (마치 에덴에 세워진 수많은 우상처럼) 세상에 혼란스럽게 섞여 있다면, 그 이야기들 속에서 살아가는 크리스천들은 하나님이 들려주신 참 이야기, 유일하고 진실한 그 이야기가 세상의 거짓 이야기들 속에 어떻게 왜곡돼 있는지 말해야 한다.

더구나 복음 이야기가 그 왜곡된 부분의 온전한 모양을 어떻게 보여줄 수 있는지 말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마치 사도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해 말해준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문화 속 우상 숭배자들을 보며 마음에 격분하여야 한다(행 17:16).

그러면 어떻게 문화에 참여할 것인가? 때로 유명한 영화나 드라마, 이슈를 소개하며 복음의 이야기를 풀어내려 애쓰는 글을 읽을 때, 조금은 억지스럽다고 느낄 때가 있다. 정말 세상 사람이 이런 욕구를 이 문화적 요소를 통해 드러내고 있는지 잘 몰라서 그렇다.

이 책의 세 번째 파트, ‘문화 크리에이터로서 예수 복음으로 세상을 리뷰하다’에서 저자가 직접 풀어낸 ‘좀비 영화(8장)’, ‘컬러링북(9장)’, ‘들새 관찰(10장)’, ‘타문화(11장)’에서도 그런 의문이 생긴다.

정말 사람들이 좀비 영화나 컬러링북을 즐기면서 이런 생각들을 하고 이런 욕구를 보이는 것일까? 들새를 관찰하는 것에서 복음을 풀어내는 것이 자연스러운가? 타문화(책에선 일본의 화장실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로 충분하다는 메시지를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

하지만 어떤 면에서 저자가 문화를 분석하고 탐색하고 그 속에 복음을 풀기 위해 노력하는 부분이 어색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우리가 저자가 소개하는 문화 참여의 과정을 거의 경험하지 못했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쉽게 말하면 문화를 수용할 것과 버릴 것으로 구분하는 것만 해봤을 뿐, 세상 문화에 젖어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그들이 속한 문화가 어떤 면에서 아름답고 선하고 옳은지, 반면 어떤 면에서 뒤틀리고 잘못되었으며 엉뚱한 대상에게 마음과 정서를 쏟아붓고 있는지 말하지 않고 살아왔다는 말이다.

2020년 극장 개봉 기독교 영화
▲왼쪽부터 '어 뷰티풀 데이 인 더 네이버후드', '오버 커머', '브레이크 쓰루우' 영화의 포스터 ⓒ문화선교연구원 제공
스트레인지가 이 책을 통해 독자를 일깨우듯 우리는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는 법만 배우고, 같은 복음을 다양한 문화 속에 어떤 방식으로 효과적으로 전달할 것인지 제대로 배우거나 충분히 연습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스트레인지는 성경신학적 관점으로 ‘창조, 타락, 구속, 영원’이 문화의 ‘창조, 타락, 구속, 영원’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탁월하게 요약하여 설명한다.

그는 4장에서 ‘이런 영화는 봐도 되나요?’라는 질문의 답을 매우 구체적으로 제시한다. 실질적인 지침 외에도 그는 오직 은혜, 오직 그리스도, 오직 믿음, 오직 하나님께 영광, 오직 성경이라는 종교개혁의 핵심을 가지고 이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들을 도출해, 독자가 스스로 문화를 잘 선택할 수 있도록 시금석을 제공했다.

독자들은 그가 제시한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많은 질문을 통해, 좋은 문화와 피해야 할 문화를 지혜롭게 선별할 수 있고 다른 사람과 건설적인 토론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또한 7장에서 문화 참여자로서 크리스천이 네 가지 단계를 통하여 어떻게 ‘전복적인’ 문화 참여를 이루어낼 것인지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1단계, 들어가기: 세상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2단계, 탐색: 좋은 면들을 찾고 관련된 우상과 연결 짓기
3단계, 드러내기: 우상의 거짓됨과 파괴적인 특성을 밝히기
4단계, 전도하기: ‘전복적인 성취’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달하기).

8-11장은 7장에서 제시한 네 단계 문화 참여의 원리를 실제로 적용한 예시들이다. 독자는 이 단계를 스스로 연마하고 훈련하여 자신이 속한 문화와 이웃이 살아가고 있는 ‘타당성 구조’ 속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효과적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저자는 ‘타당성 구조’에 관하여 “사회 전체의 마음과 정신 속에 깊이 박혀 있어서 그 구성원들이 진위를 따지지 않을 정도로 무의식적으로 혹은 굳게 믿는 믿음들의 집합”이라고 정의했다.

해외 사이트 중에는 출시된 거의 대부분의 영화를 기독교 관점으로 분석하여 복음의 은혜를 잘 반영한 부분과 왜곡하는 부분을 구체적으로 평가하는 곳이 있다(흥미롭게도 그 사이트의 이름이 https://www.pluggedin.com이다).

많은 사람이 그곳에서 전문적으로 글을 기고하고 있는데, 어쩌면 모든 크리스천이 각자 처한 곳에서 그런 역할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이 든다.

편안한 마음으로 즐기는 문화생활을 경찰관처럼 통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함께 그 문화 속에 있으면서도 그 문화가 표현하는 이야기가 얼마나 진짜 이야기를 닮았는지 말해줄 수 있는 전문가로서 말이다.

문화라는 작품을 감상할 때마다 그 작품을 만드신 창조주가 어떤 분인지 알고, 경험한 이들만이 얼마나 그 작품이 작가의 성품과 능력을 잘 반영하고 있는지 혹은 왜곡하는지 말해줄 수 있지 않겠는가.

대니얼 스트레인지가 오늘날 크리스천을 일깨우며 말한다. 우리는 적극적인 문화 참여자로서 보고 읽고 즐기는 것 안에서 복음을 힘껏 외칠 수 있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그 사명과 책임감을, 이 책을 통해 모든 크리스천이 충분히 느끼게 되기를 기도한다.

조정의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유평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