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리 중요하다면서, 진리 사수 위한 전쟁 참전하지 않아
너무 쉽게 진리 거스르는 것 무릅쓰고 사랑 선포 나서나

구해줘
▲드라마 <구해줘>의 사악한 이단 교주 백정기(조성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처칠의 명언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교회사를 통해 보여주신 교훈을 등한시하지 않고, 책임감을 가지고 다른 이들이 같은 오류에 빠지지 않도록 알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이단들이 다시금 옷만 살짝 바꿔 입고 재등장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해 아래 새로운 것이 없듯, 되돌아보면 이미 등장했다가 사라졌거나 근근이 명맥을 이어오던 가르침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시대는 이들보다 광명한 천사로 등장하는 이들이 더욱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전국적으로 엄청난 팔로워를 거느리고 엄청난 대형교회를 목회하는 목사님이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선언한다면, “저 사람이 미쳤나보네”, “에이, 한때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하고 많은 사람들이 떠나고 별 영향력을 미치진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리의 선포에 있어 슬쩍 곁길을 내주는 행위를 한다면, 그 영향력과 위험성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너무 쉽게 그 가르침에 동조하는 모습입니다.

예를 들어 위에서 언급한 목사님이 성경이 명확히 금하는 말씀에 대해 “음… 이것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겠네요. 성경의 시대엔 맞는 내용이지만 지금은 시대가 변했으니…”라고 한다거나, 유명한 성경신학자가 성경의 창조를 논하며 “나는 성경을 믿지만, 창조는 신화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유신진화론도 일리가 있습니다”고 한다거나, 존경받는 보수 신학자가 “자유주의 신학이 말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 많지만, 그 중 일부는 우리가 받아들일 필요가 있습니다”고 말한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은 자신이 그리스도라고 말하는 큰 장애물을 제시하는 것이 아닌, 단지 진리 옆의 쪽문을 슬쩍 열어 사람들에게 “너무 꽉 막힌 사고는 좋지 않습니다. 이 정도는 괜찮지 않습니까? 받아들여도 문제는 없습니다. 저는 여전히 진리를 사랑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유형들은 보편적으로 인품이 좋고 실상 복음이 없지만 복음처럼 보이는 것을 가지고 있고, 따뜻함을 앞세워 많은 이들에게 인기를 끄는 이들을 통해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저는 이런 말이 듣기 힘들 때가 많습니다. “본질만 잘 붙들면 문제가 없지 않을까요?” 사실상 본질에서 멀어지면서 이런 주장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듯 별 것 아니라고 하는 것들은 사실은 수 세기 전 어떤 이들의 목숨과 맞바꾼 교리이며, 그 명백한 오류들과 싸운 종교개혁자들, 청교도들, 스펄전, 그레샴 메이첸, 코넬리우스 반틸, 박형룡 박사 등 진리의 일꾼들이 평생을 걸쳐 오류의 파도를 막기 위해 쌓았던 방파제를 촉발시킨 내용이었습니다.

작금의 많은 사람들은 진리가 중요하다고 말하면서, 진리를 사수하기 위한 전쟁에 참전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참전하는 사람들을 골칫거리로 여기기까지 합니다.

아타나시우스, 그레샴 메이첸과 같은 신실한 주님의 용사들에게 가장 싸우기 힘들었던 적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회유와 비웃음이었습니다.

오늘날 우리는 포용을 너무 쉽게 앞세우고 있지 않습니까?? 너무 쉽게 진리를 거스르는 것을 무릅쓰고 사랑을 선포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진리가 아닌 곁길의 문을 슬쩍 열어놓는 자들과 그들의 행위에 너무 관대한 모습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내가 별 생각 없이 너무나 쉽게 내뱉는 포용과 진리를 거스르는 사랑이, 한 마디 진리를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희생하신 신앙의 선진들 앞에 큰 모욕이라는 것을….

김성욱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삼송제일교회 중고등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