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학 지도 그리기
예배학 지도 그리기

문화랑 | 이레서원 | 248쪽 | 16,500원

성도는 예배를 드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성도만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은 예배자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예배하고 무엇을 위해 예배하는지 그 대상과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우리는 기도할 때 새로운 예배를 드려야 하고, 예배가 살아야 하고,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고 자주 고백한다. 새로운 예배란 무엇이고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예배란 도대체 무엇인가?

예배는 신학자마다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자신만의 정의를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필자가 내리고 싶은 정의는 예배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시간이고 또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시간이며,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주로 믿는 자들이 자신과 공동체의 신앙을 표현하는 결정체이다.

예배는 콘서트가 아니고 쇼도 아니며 인간의 만족을 충족시켜 주고 감정을 해소해 주는 심리적 도구가 아니다.

오늘날 새로운 예배를 드리기 원한다거나 예배가 회복되어야 한다는 기도는 혹시 나의 감정과 만족을 채워주는 예배가 되어야 한다는 인간중심적인 기도가 아닌지 점검해 보아야 할 것이다.

더구나 요즘에는 코로나19로 인해 많은 교회가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그동안 우리가 드렸던 예배의 문제점은 무엇이고 진정한 예배가 무엇인지 질문하게 된다.

이 책은 이러한 현실에 맞춰서, 우리의 예배를 바르게 세우는 일에 도움을 준다.

예배의 대상

인간은 예배자이고, 성도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하고 그분의 성품에 감사하는 자이다. 우리가 예배하는 대상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이 분명하다.

입례와 부름과 선언, 기도와 사도신경과 찬양 등 예배 모든 순서는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목표 아래 하나님의 큰 일이 계시되고 선포되며, 인간의 반응과 감사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예배는 인간 중심이 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이 중심이 되어서 인간을 만나주시는 현장이다.

기본적으로 예배는 성도가 드릴 수 있는 것이고,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대해 무지하거나 하나님을 무시하는 자는 할 수 없는 행위이다.

드라이브인 예배
▲‘드라이브인’ 예배를 드리는 미국 한 교회 모습. ⓒ유튜브
물론 예배에는 교회에 처음 온 새가족이나 초신자들을 위한 배려가 당연히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을 위한 이해와 배려는 좋으나, 예배의 대상이 흐릿해지는 일은 결코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예배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만드신 제도이긴 하지만, 궁극적인 대상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에 오는 사람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정말 자신이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합당한 예배자인지 점검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의 욕망을 위해 예배하고, 자신의 교양과 품격을 위해 예배하는 자들이 많이 있는 현실을 본다.

하나님을 위해 예배하고 하나님의 구속을 찬양하고 하나님의 성품에 감사하는 예배자는 어디 있을까? 우리의 예배 대상이 분명해지길 기도한다.

예배는 정체성을 형성한다

필자에게는 이 책의 5장이 개인적으로 매우 유익했다. 제임스 스미스가 말하듯이 우리는 육체라는 컨테이너 속에 의식을 가진 자가 아니라, 우리의 몸과 행동이 곧 자아이다. 즉 우리의 예배는 반복을 통해 성품과 인격이 형성되고, 예배를 배움으로 예배자가 된다는 것이다.

지식과 교리에 초점이 맞춰진 지금까지 우리의 예배와 교육과 비교해 볼 때, 몸으로 예배를 익히고 그것이 우리의 성품이 된다는 것은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그러나 필자는 이 점에서 한 가지 의문이 있다. 신앙에 있어 몸의 중요성과, 진리를 체험하여 자신의 행동으로 신앙을 고백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초대교회에서는 교리를 먼저 세우고 예배한 것이 아니라, 공동체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중에 성부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성자 하나님에 대한 역할과 보혜사 성령님에 대한 것을 알게 되었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래서 예전의 시행이 신앙의 형성을 돕고 공동체의 기억을 활성화한다고 한다.

새에덴교회 온라인 예배
▲‘코로나19 시대’ 새에덴교회의 예배 모습. ⓒ페이스북
하지만 필자가 볼 때 예전의 반복이 메시지를 강화시키고 그것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물론 교리가 체계화되기 전에 예배를 경험함으로, 지식이 생기고 감동이 되어 변화를 받은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은 초대교회가 아니라, 2000년이 흐른 현대를 살고 있다. 반복과 훈련이 중요하고 참여함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지식과 교훈이 있겠으나, 이것이 공부와 지식 없이 참여하는 것이라면 매번 몸으로 반복해도 무의미한 사건일 것이다.

그래서 현대 교회가 성경공부와 교리에 치중한 나머지, 몸으로 배우고 예전을 하는 것에 약해졌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 지금은 몸으로 무엇을 더 할 수 있도록 도와주기보다 성경과 교리를 더 잘 가르쳐야 할 것 같고, 그 중에 몸으로 행하는 예전의 필요성과 중요함을 포함시켜야 할 것 같다.

아무튼 몸으로 행하는 예전을 통해 신앙을 배우고 정체성이 형성된다는 것은 필자도 인정하는 바이다.

예배는 아름다운 것이다

우리는 매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예배를 드리고 우리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을 기뻐하는 것이다.

예배는 자신이 출세하기 위해 드리는 것도 아니고,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한 굿도 아니다. 예배라면서 신천지처럼 인간 신을 만들어서 경배하는 것도 아니고, 콘서트처럼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좋은 강연을 듣는 시간도 아니며, 문제를 해결하고 소원을 이루기 위한 방법을 찾는 굿도 아닐 것이다.

예배는 성도가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되고 성장하고 온전해지는 것이다. 개신교 예배가 보수적 교단에서는 하나님의 초월성에 집중해 개인의 내면과 믿음에 초점이 맞추어졌다면, 진보적 교단에서는 하나님의 내재성에 집중해 민중과 사회 변화에 관심을 많이 가졌다.

그러나 예배는 어느 하나만 강조되는 것이 아니라, 두 가지를 향하는 목적이 있다. 예배는 자신의 변화와 성숙을 통해 더 나은 시민이 되어, 더 밝은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윤리적이고 정치적이다. 그래서 예배를 잘 드리는 사람은 성도이고 성숙한 시민이다.

예배는 자신의 성공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주위에 약자를 돌아보고 사회의 성숙을 이바지하는 도구가 된다. 예배를 통해 바벨탑의 정신이 남겨지는 것이 아니라 성육신의 원리가 새겨지는 것이다.

사랑의교회 8일 온라인으로 주일예배 드리는 성도들
▲각 가정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성도들(본 사진은 해당 기사와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사랑의교회 제공
“예배에 목숨을 건다”는 말을 많이 하는데, 자신의 뜻을 이루기 위한 목숨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려는 옛 자아를 죽여야 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는 자기 사랑이 죽고 삼위일체의 사랑으로 살아가며 조화를 이루는 아름다운 것이다.

현대 교회에 완벽한 예배양식과 세부적인 규칙은 없다. 각 교단마다 정해놓은 예배 모범은 있지만, 지역 교회마다 교회의 상황과 특성에 맞게 순서는 제각각이다.

필자는 이것을 부정하게 여길 필요가 없다고 본다. 교회는 그 시대와 문화, 그 구성원의 특성에 맞게 예배 순서를 적절하게 구성하여 은혜롭게 드리면 된다. 순서마다 삼위 하나님의 구속과 성품을 잊지 않고 성도의 고백이 들어가도록 지혜롭게 구성해야 할 것이다.

끝으로 예배는 교회 성장의 도구가 아니다. 교회마다 사람에게 만족을 주기 위해 예배를 기획하고 회의를 하고 변화를 준다. 그야말로 예배 전쟁 시대이다.

물론 이런 고민이 필요한 시도이고, 도전이기도 하다. 그러나 누구를 향한 것이고 무엇을 위한 것인지, 끊임없이 질문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성도들이 드리는 예배가 무엇인지, 우리의 예배가 어떠해야 하는지 도움이 되길 바란다. 여전히 어려운 과제이지만, 은혜로운 예배를 향한 고민은 계속돼야 할 것이다.

방영민
크리스찬북뉴스 편집위원, 서현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