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물 한 방울 생수 구원 물줄기 청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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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요한복음 4장 15-16절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자에게 대응하는 장면입니다. “목이 마르지 않는 그런 물을 달라!”는 사마리아 여인의 요청에 주님께서 대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 여인의 요청에 조건을 제시하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요청에 대한 답변보다는 조건에 응하면, 답을 하시겠다는 의도입니다. 그 조건이 바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입니다. 이 배경을 중심으로,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1. 영생수를 마실 준비를 하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그런 물을 내게 주사 목마르지도 않고 또 여기 물 길으러 오지도 않게 하옵소서 이르시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14-15절)”.

사마리아 여인은 “목마르지 않게 하는 그런 물을 내게 주사 여기 물 길러 오지도 않게 하소서!”하고 요청했습니다. 그때 주님은 곧바로 답하지 않으시고,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응답을 전제로 제시하신 조건입니다. 남편에 대한 말을 어떻게든 하게 되면, 답변해 주겠다는 의도입니다. 영생수를 마시는 데는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 모든 것에는 준비가 필요합니다. 중요한 일일수록 잘 성사되도록 더 많은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합니다. 일을 잘 모르고 시작하면, 그르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 속담에 “개머루 먹듯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속 내용을 잘 모르고 건성으로 아는 체 하거나, 일을 건성으로 하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하는 말입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대충 하다 보면, 필경 잘 성사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생수를 마실 수 있도록 마음의 준비를 하도록 이끄셔야 했던 이유입니다.

2. 영적인 갈증을 인식하라

14-15절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님은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이는 언뜻 보면 동문서답(東問西答)처럼 보입니다. 생수를 달라는 여인에게 갑자기 “남편을 불러오라!”고 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주님의 깊은 의도가 들어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관심의 변화를 유도하는 상황이기 때문입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오로지 보이는 물에만 관심이 있지만, 주님은 영원한 생명수에 대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지금 사마리아 여인은 신체적 목마름만 생각하고 있지, 영적 갈증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영적인 갈증에 대해서 인식시켜야 했습니다.

지금 사마리아 여인에게 우선적으로 필요로 하는 것은 신체적인 물이 아니라, 마셔도 금방 목이 마르게 되는 세상적인 물, 즉 욕망이었습니다.

미국 극작가 테네시 윌리엄스(Tennessee Williams)는《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 A Stre- etcar Named Desire》를 발표하여 유명해졌습니다. 이 희곡이 연극과 영화로 제작되어 오래도록 인기를 끌며 상연되었습니다.

명문가 출신의 여주인공이 허황된 육체적 욕망을 채우기 위해 온갖 생을 다 허비하다, 나중에는 허언증에 걸려 죽고 만다는 비극적인 내용입니다. 이는 인간의 채울 수 없는 깊은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의도한 작품입니다.

주님은 지금 사마리아 여인이 바로 그런 상태임을 모르고 있다는 것을 인식시키려 하는 것입니다. 이는 영적인 갈증이 중요한 이유입니다.

3. 아픈 부분을 시인하라

주님은 “네 말이 맞다, 그렇게 할 것이다”고 먼저 답변하지 않고,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고 하셨습니다. 대화가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것 같지 않고, 조금은 엉뚱하게 이어지는 것만 같습니다.

그런데 이는 주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가장 은밀한 부분, 아픈 부분을 시인하게 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여인의 남자관계는 복잡하기에 쉽게 드러낼 수 없는 부분이기 때문입니다.

아픈 부분을 가리켜 우리는 ‘상처’라고 합니다. 마음에 아픈 부분을 트라우마(심리적 상처)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아픈 부분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것을 빨리 해소하지 못하면, 평생 깊은 상처로 남게 됩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사실 골이 깊은 상처를 가지고 살아가고 있은지 오래되었습니다. 굳이 아픈 부분을 들추시려는 주님의 의도는 그 상처를 치유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호기심을 갖게 하려는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숨기고 싶은 내면을 환히 들여다보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 앞에 자신의 아픈 부분을 시인하고 드러내야 치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픈 부분을 치료해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김충렬
▲김충렬 박사. ⓒ크리스천투데이 DB
4. 정리

가는 인생의 길에, 채워도 채워도 다함이 없는 욕망의 노예가 되지 마시고, 주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수를 마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십시다!

“주님! 영혼의 목마름을 인식하는 우리가 되게 하소서, 아픈 상처를 드러내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아픈 상처를 드러내 고백하는 사람에게 반드시 복을 내리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김충렬 박사(한국상담치료연구소장, 전 한일장신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