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퍼내추럴
▲OTT 서비스 초자연주의 TV 시리즈 중 최장기간 방영기록을 세우고 있는 <수퍼내추럴>(Supernatural).
탈-기독교적 초자연 세계로의 전환

◈초자연 세계와 기독교: 톨킨과 루이스가 주도하던 기독교적 환상문학

미국 문화계에서 초자연 현상, 퇴마, 이면 세계 등을 다룬 문학 및 미디어 콘텐츠는 통상 기독교적 상징과 모티프를 중심으로 캐릭터와 플롯을 형성해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예외가 있다면 기독교 문화의 정반대편에서 서구 이교 문화의 명맥을 이어가던 오컬티즘에 깊게 영향을 받은 콘텐츠 정도였다.

기독교 문화에 기원을 둔 초자연주의 콘텐츠들은 피, 구원, 부활, 영생, 천사, 악마 등 서구인들에게 친숙한 성경적 소재들을 차용해 왔다. 대표적인 작품은 현대 환상문학의 고전이라 불리는 <반지의 제왕>이다.

옥스퍼드 대학교 영어학 교수였던 J. R. R. 톨킨은 어린 시절 부모를 모두 잃고(아버지는 네 살 때, 어머니는 열두 살 때) 어머니가 다니던 교구를 담당하던 가톨릭 사제의 양자로 들어가 청소년 시절을 보냈다. 그는 평생 가톨릭 신앙을 고수했고, 소설을 쓸 때도 성경적 요소들을 적극 활용했다.

그의 환상문학을 대표하는 세 작품, <실마릴리온>, <호빗>, 그리고 <반지의 제왕> 모두는 표면적으로 고대 켈트족과 게르만족 종교 색채를 짙게 띠고 있지만, 내면적으로는 창조에서 종말로 이어지는 성경의 구원사 전체를 각색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인간의 창조, 에스겔서에 묘사된 마귀의 타락, 요한계시록에 예언된 하나님의 최후 심판과 마지막 전쟁 등이 톨킨 환상문학의 세계관을 지배하고 있다.

역시 옥스퍼드 대학교 교수였던 C. S. 루이스는 톨킨에게 여러 모로 영향을 받았다. 무신론자였던 루이스는 절친했던 동료 톨킨의 신앙에 자극을 받아, 영국 국교회 신자로서 기독교 신앙을 가지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톨킨이 자신의 아들을 위해 소설 <호빗>을 쓴 것을 보고, 루이스도 자신의 자녀들을 위해, 특히 신앙 교육을 위해 <나니아 연대기>를 쓴 일화는 유명하다.

<나니아 연대기>는 톨킨이 “너무 직접적으로 성경 속 상징과 서사를 모방해서 문학적 가치가 떨어진다”고 평가할 정도로 기독교적 색채가 강했다. 사자 아슬란이 구원 사역을 감당하고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표현한 캐릭터라는 것은 어린아이들이 봐도 쉽게 인지할 수 있을 정도였다.

두 거장의 환상문학 이후, 초월적 세계, 이면 세계를 배경으로 삼는 서구 문학 대부분은 기독교적 상징들, 아더 왕의 전설에 나오는 중세 기사문학의 소재들, 그리고 켈트-게르만 문화의 이교적 오컬티즘 모티프를 적절히 섞어 사용하는 방식으로 플롯을 꾸려 왔다.

반지의 제왕
▲현대 서구 초자연주의 환상문학의 대가 톨킨의 작품 <반지의 제왕>의 한 장면. 영화화된 뒤로 서구만 아니라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었다. <실마릴리온>에서 <반지의 제왕>으로 이어지는 톨킨 세계관은 기독교의 창조-구원-종말 서사를 주된 모티프로 삼는다.
이교 오컬티즘을 환상적으로 묘사한 초자연주의 작품 <해리 포터> 시리즈조차 그리스도의 구원사역을 주요 모티프로 삼고 있을 정도로, 서구 대중문화계에서 기독교 상징과 서사의 힘은 확고한 위상을 지키고 있었다.

주인공 해리는 머글 세상으로 피신한 후, 자라서 초자연 세계 호그와트로 귀환한다. 이후 악의 마법사 볼드몰트와의 대결 중 죽고 부활하여, 머글 세계와 호그와트 전체에 평화를 가져온다. 이 서사는 많은 문학비평가, 문화비평가들로부터 그리스도의 생애를 모방한 서사로 평가되고 있다.

기독교 서사의 전달 도구로서 환상문학이 가진 가능성과 매력이 워낙 큰 까닭에, 톨킨과 루이스의 뒤를 이으려는 작가들이 아직도 존재한다. 현 시대 대표 복음주의 신학자 중 한 사람인 알리스터 맥그래스도 그 중 하나에 속한다.

그는 통상 복음주의 기독교 교의 및 신학과 과학의 대화를 주제로 학술서를 써온 연구자이지만, 2013년 루이스의 명맥을 잇겠다는 포부와 함께 <에이딘 연대기>(The Aedyn Chronicles)라는 환상문학 작품을 써서 호평을 받은 바 있다.

◈초자연 세계와 탈-기독교: 기독교 색채를 거부하는 초자연주의 콘텐츠

그러나 현재는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최근 OTT를 통해 방영되는 초자연주의 미디어 콘텐츠, 특히 이면 세계를 그려내는 작품들 대부분은 더 이상 기독교적 상징과 서사에 연연하지 않는다. 단지 표면적으로만 아니라 근본적으로 서사 전체가 기독교와 무관한 초자연 세계를 선보이는데 주력한다.

이런 흐름이 뚜렷하게 포착되기 시작한 것은 넷플릭스의 장수 TV 시리즈 <수퍼내추럴>(Supernatural)부터라고 할 수 있다. 단편 옴니버스 형식으로 퇴마사 형제의 모험을 그린 <수퍼내추럴>은 드문드문 기독교적 소재를 채택하기는 하지만, 거의 대부분 기독교적 서사와 전혀 무관한 귀신과 영적 존재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이 시리즈가 호평을 받고 흥행에 성공한 후부터, 현대인의 현실에 직접 맞닿아 있는 새로운 형태의 초자연 세계와 영적 존재들을 그려내는 작품들이 점차 활발하게 제작되기 시작했다.

이 작품들의 특징은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 조류를 반영하듯 기독교 중심의 문화적 전통에서 탈피하고, 온갖 문화 요소들을 다채롭게 뒤섞은 초자연 세계와 내세를 그려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기존에 볼 수 없었던 기상천외한 이면 세계, 영적 세계를 그려내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발전된 CG 기술 활용이 일반화된 점, 그리고 여러 유형의 미디어 콘텐츠 간 크로스오버가 일반화된 점 역시 이런 경향을 더 확고하게 만들었다.

CG 기술은 새로운 모양새의 기괴한 이면 세계를 훨씬 정교하게 그려낼 수 있게 해주었고, 게임과 같이 기존에 영화화나 TV 시리즈화 되기 어려웠던 콘텐츠들도 쉽사리 영상화되는 분위기가 정착되면서 초자연주의 작품들의 참신성이 더 극대화되는 효과를 가져왔다.

기묘한 이야기
▲초자연주의 미디어 콘텐츠 최고 인기작 <기묘한 이야기>.
<기묘한 이야기> 류의 시리즈들이 그려내는 이면 세계는 처음에는 매혹적이지만, 깊게 관여할수록 현실에서의 삶을 위협하고 파괴하는 모양새로 다가온다.

초월적 세계, 영적 세계, 내세가 구원과 천국에의 참여라는 최고의 소망에 맞닿는 기독교적 세계관은 완벽하게 배제된다. 결국 이 작품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초자연 세계, 영적 세계, 내세를 멀리하고 현실의 삶에 충실하라는 것이다.

이는 현대 실존철학이 주장하는 바를 대중적으로 희석한 메시지나 다름없다. 실존철학은 인간 실존, 즉 현실적 삶을 바라보게 한다. 실존철학의 대표자 가운데 하나인 하이데거가 강변한 바는 죽음 너머를 바라보고 사는 자들은 본연의 삶의 의미와 가치를 찾는 데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죽음은 죽음 너머가 아니라, 그 죽음에 의해 위협받고 그래서 소중하게 여겨지는 현실적 삶 전체를 바라보게 한다는 것이 하이데거 인간이해의 핵심 주장 중 하나였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조류를 탄 영화가 크게 흥행한 적이 있으니, 바로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다. <곡성> 역시 영적인 세계를 결코 범접해서는 안되는 위험하고 악독한 세계로 그려내고 있다.

물론 나홍진 감독은 기독교적 신앙 배경을 갖고 있어 영화 제작 시 성경의 소재를 많이 차용하긴 했지만, 그 메시지는 미국발 OTT 콘텐츠에서 자주 발견할 수 있는 실존철학적이고 탈-기독교적인 성격을 강하게 띠고 있다.

이는 미디어 업계에서 초월의 세계를 그려낼 만한 문화적 역량을 가진 제작자나 작가들 가운데 기독교인들이 급감하고 있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라 볼 수 있다.

톨킨이나 루이스 같은 기독교 신앙인들이 환상문학의 흐름을 주도하던 시기에는 초자연 세계가 단지 죽음과 두려움만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정의와 구원이 실현되는 희망의 세계로도 묘사되고 있었으며, 성경적 상징과 소재를 적극적으로 차용한 설정을 따르고 있었다.

그러나 현재는 문화계 전반, 특히 미디어 콘텐츠 업계 전반이 탈-기독교 성향을 마치 표준처럼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고, 초월의 세계에 대한 소망을 구시대적인 것으로 간주하고 있다.

곡성 OTT
▲한국에서 크게 흥행한 초자연주의 영화 <곡성>. 기독교적 소재를 차용했으나, 핵심 메시지는 미국 초자연주의 콘텐츠들과 마찬가지로 실존철학적이고 탈-기독교적이다.
이와 같은 문화적 현실은 톨킨이나 루이스가 건재하던 이전 세대보다 더 강력한 문화적 역량을 가진 기독교인 콘텐츠 제작자들의 등장을 요청한다.

개선된 CG 기술과 진보된 상상력은 단지 탈-기독교적 문화인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이것들은 기독교적 서사와 신앙 요소를 더 정교하고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도구로 활용될 수도 있다.

고도의 신학적 통찰들을 보다 구체적으로 반영해 영상화하려는 관심과 의지만 있다면, 이런 도구들을 기독교 문화의 발전적 계승을 위해 선용할 수도 있다.

탈-기독교화된 초자연주의 미디어 콘텐츠의 흥행은 기독교 문화의 영향력 쇠퇴로 인해 방향성을 잃어버리게 된 일상 속 종교성의 기형적 발로 현상이라 볼 수 있다.

이처럼 세속주의, 과학주의 시대에도 사람들 사이에 결코 누그러뜨릴 수 없는 초월 열망이 발출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하지만 이런 열망이 신앙이 아니라 기괴한 상상력에 집중되고 있는 현실은 교회와 신앙인들이 관심을 갖고 대처해야 할 중요한 과제 가운데 하나이다.

기독교의 창조-구원-종말 서사는 고리타분하지 않다. 얼마든지 창의적인 형태로 더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위대한 서사이다. 이 위대함을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기독교 문화 콘텐츠의 개발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다.

박욱주 박사(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

연세대학교에서 신학을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조직신학 석사 학위(Th.M.)와 종교철학 박사 학위(Ph.D.)를, 침례신학대학교에서 목회신학 박사(교회사) 학위(Th.D.)를 받았다. 현재 서울에서 목회자로 섬기는 가운데 연세대 연합신학대학원 겸임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기독교와 문화의 관계를 신학사 및 철학사의 맥락 안에서 조명하는 강의를 하는 중이다.

필자는 오늘날 포스트모던 문화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교회가 보존해온 복음의 역사적 유산들을 현실적 삶의 경험 속에서 현상학과 해석학의 관점으로 재평가하고, 이로부터 적실한 기독교적 존재 이해를 획득하려는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최근 집필한 논문으로는 ‘종교경험의 가능근거인 표상을 향한 정향성(Conversio ad Phantasma) 연구’, ‘상상력, 다의성, 그리스도교 신앙’, ‘선험적 상상력과 그리스도교 신앙’, ‘그리스도교적 삶의 경험과 케리그마에 대한 후설-하이데거의 현상학적 이해방법’ 등이 있다.

브리콜라주 인 더 무비(Bricolage in the Movie)란

브리콜라주(bricolage)란 프랑스어로 ‘여러가지 일에 손대기’라는 의미를 갖고 있다. 이 용어는 특정한 예술기법을 가리키는 용어로 자주 사용된다.

브리콜라주 기법의 쉬운 예를 들어보자. 내가 중·고등학교에 다니던 학창시절에는 두꺼운 골판지로 필통을 직접 만든 뒤, 그 위에 각자의 관심사를 이루는 온갖 조각 사진들(날렵한 스포츠카, 미인 여배우, 스타 스포츠 선수 등)을 덧붙여 사용하는 유행이 있었다. 199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냈다면 쉽게 공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