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페스트

알베르 카뮈 | 최윤주 | 열린책들 | 424쪽 | 12,800원

임진왜란, 이름 없는 의병들 우리 땅 지켜
나라 구한 건 한 사람의 영웅 아닌 백성들
페스트, ‘우리’의 힘으로 전염병 견딘 소설

나라는 영웅이 구하지 않는다.

임진왜란 때는 영웅 이순신 장군이 있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수많은 의병들이 일어나고, 백성들이 몽둥이와 낫을 들고 일어섰다. 나랏님과 조정의 대신들은 한양을 버리고 도망갈 때, 백성들은 우리 집과 우리 땅을 지켰다.

이순신 장군의 승리도 수군의 승리이기 전에 어부들의 승리다. 백성들이 팔 걷어붙이고 만든 배. 그들이 가져다 준 군량. 나라가 이순신을 버렸을 때도, 백성들은 이순신을 버리지 않았다. 나라를 구한 것은 영웅이 아니라. 백성이다. ‘그 한 사람’이 아니라 ‘우리 모두’였다.

‘우리’의 힘으로 전염병을 견딘 이야기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다. 1947년 발표된 이 소설은 전체 5부로 구성돼 있다.

1부는 페스트의 출현과 도시의 봉쇄 이야기다. 2부는 봉쇄된 도시에서 페스트가 확산되고, 도시는 페스트와 싸우기 시작한다. 3부에 접어들어 페스트는 도시 전체로 퍼지고, 시민들은 희망을 잃어간다. 4부에서 여전히 페스트 전염은 계속되지만, 사망자 증가세가 멈춘다. 5부에서 페스트는 후퇴하고, 결국 도시에서 사라진다. 이후, 도시의 봉쇄가 풀리면서 이야기는 끝난다.

1부

194X년 4월 16일, 알제리에 있는 도시 오랑.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자신이 사는 건물 계단에서 죽은 쥐 한 마리를 발견한다. 며칠 뒤 거리 곳곳에서 더 많은 쥐들이 죽고, 4월 28일에는 죽은 쥐를 8천 마리나 수거한다.

이어서 사람들도 이유를 알 수 없는 병으로 죽기 시작했다. 죽어가던 환자들을 진찰한 리유는 당국에 ‘페스트’ 가능성을 보고한다.

보건 당국은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여러 조치들을 발표하지만 사망자는 계속 늘어난다. 결국 페스트임을 받아들이고 중앙 정부에 보고한 후, ‘페스트 발병을 공표하고 도시를 폐쇄하라’는 공문을 받는다.

2부

당국이 페스트 발병을 발표하고, 도시는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다. 도시가 폐쇄된지 3주째. 한 주 동안 발생한 사상자 302명. 이 숫자는 인구 20만 도시에 사는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와 닿지 않았다.

여전히 사람들은 거리를 활보했고, 오히려 도시가 폐쇄된 것에 대한 답답함을 풀기 위해 더 많은 사람들이 카페로, 극장으로 향했다. 사람들은 도시가 폐쇄된 것에는 큰 불편을 느꼈지만, 정작 ‘페스트’에 대한 공포는 크게 느끼지 않았다.

도시가 폐쇄되고, 파리의 신문사 기자인 랑베르가 리유를 찾아온다. 그는 페스트 발병 전 잠시 취재차 ‘오랑’에 들어왔다가, 도시가 폐쇄되어 돌아가지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 리유를 찾아온 이유는 ‘건강 증명서’ 발급 때문이다. 폐쇄된 오랑에서 나가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수단을 강구하고 있었다.

흑사병
▲중세 흑사병을 표현한 그림.
페스트는 6월이 되자 점점 심각해진다. 오랑 시민들은 불안감을 느끼고, 성당 기도모임에 참석했다. 그때 신학자이자 신부인 파늘루가 ‘페스트’는 신이 내린 형벌이라는 설교를 한다. 사람들에게 회개와 반성의 기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력하게 설교를 했다.

“형제 여러분, 죽음의 사냥이 우리 도시의 거리를 휩쓸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반성할 시간이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죄 많은 도시들마다 재앙이 찾아들었듯이 여러분에게도 재앙이 찾아들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의 설교는 철저히 타인을 향한 설교였고, 그 설교 이후 사람들은 두려움에 빠지기 시작했다.

한편 ‘장 타루’라는 남성이 리유를 찾아와 ‘자원봉사대’를 만들자고 제안한다. 타루가 조직한 자원봉사 보건대는 페스트 환자 이송, 왕진 의사를 돕는 일, 도시 구석구석 소독 등. 쉽지 않은 업무들을 도맡아서 했다.

그 즈음 늙은 의사 카스텔은 혈청 제조에 몰두한다. 중앙 정부에서 보내주는 혈청이 턱없이 부족할 뿐더러, 효과도 없었기 때문이다.

3부

8월 한복판에 이르자 페스트의 힘은 절정에 달한다. 페스트 감염자는 곧 사망자가 되었고, 장례 절차는 간소화 되었다. 처음에는 시신을 개별 관에 담아 이송했지만, 점점 관이 부족해 시신을 관에도 담지 못한 채 한꺼번에 옮기기 시작했다.

매일 몇 백 명이 넘는 사망자가 생기자, 공동묘지가 부족해졌다. 결국 화장을 해야 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의 눈에는 희망이 사라지기 시작했고, 주변 일들에 무심해졌다. 이 모습을 카뮈는 이렇게 표현한다.

“그들은 침착하면서도 무심해 보였고, 심지어 어찌나 지루해하는 눈빛인지 그들 덕분에 도시 전체가 대합실과도 같았다.”

또 한편에서는 방화, 반란, 폭동, 약탈, 도시 밖으로 탈출 시도 등이 간헐적으로 일어났고, 당국은 진압해 나갔다. 시민들에게 불행은 일상이 되었고, 절망이 삶이 되었다.

4부

한참 더운 8월이 지나고 9월이 접어들자, 페스트 감염 증가 수는 멈춘다. 날짜별로 차이는 있었지만, 전체적 평균으로는 사망자가 일정하게 유지되었다. 특별한 이유를 알 수는 없었지만, 답보 상태를 유지했다.

그때까지 파리의 기자 랑베르는 계속 오랑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력하며, 탈출 전까지 보건대와 리유를 돕는다. 그 과정에서 본인이 더 이상 오랑 시의 이방인이 아님을 느끼고, 탈출을 포기하고 보건대에 남는다.

늙은 의사 카스텔은 새로운 혈청을 만들어낸다. 아직 실험 단계인 혈청을 회생 가망이 없던 아이에게 투여해 본다. 새로운 혈청을 투여받은 아이는 더 오랜 시간 고통을 받고, 결국 죽는다.

혈청의 결과를 알기 위해 리유와 카스텔, 보건대원들, 그리고 파늘루 신부는 그 과정을 생생히 지켜봐야 했다.

그 모습을 지켜본 파늘루 신부의 설교가 달라진다. 자신의 이전 설교가 얼마나 자비가 없는 설교인지 고백했다. 그러면서 하나님이 페스트를 ‘여러분’에게 보내신 이유를 말하기보다, ‘우리’에게 찾아온 페스트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렇게 12월이 되었다. 그 즈음부터 도시에 다시 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4월에 쥐들이 죽은 이후, 도시에서는 더 이상 쥐를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런 쥐들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망자 통계도 줄어들기 시작했다.

5부

페스트가 후퇴하는 조짐들로 시작한다. 3주 연속 사망자 수치가 하락하고, 사람들 마음 속에 희망이 싹트기 시작한다. 그렇게 페스트는 이유도 없이 찾아와 기승을 부리더니, 이유도 없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당국은 페스트가 사라질 것이라고 선언하고, 2주 후에 폐쇄를 풀 것이라고 했다. 그 폐쇄의 문이 열리기 불과 며칠 전, 보건대를 처음 조직했던 타루가 결국 페스트로 죽는다. 재앙이 퇴장하기 전, 마지막 희생자들 중 한 명이 된 것이다. 이후 오랑시는 다시 문이 열리고 이전 모습을 되찾게 된다.

‘영웅’은 없다, 묵묵히 자기 일 하는 사람들뿐
보건대, ‘특별한 아름다움’보다 ‘객관적 만족’
영웅 아닌, 누군가는 반드시 할 일, 했을 일들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에는 영웅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모든 이야기를 서술하는 의사 ‘리유’조차 재앙을 막는 영웅이 아니다. 단지 의사라는 직책을 충실히 수행하는 한 사람일 뿐이다.

자원봉사로 결성된 ‘보건대’ 역시 그렇다. 카뮈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말한다.

“이 보건대에 큰 중요성을 부여하지 않겠다. 수많은 사람들은 보건대의 역할을 과장하려는 유혹에 빠질 것이다.”

역병과 신앙
▲흑사병으로 죽어가는 이들을 돌보는 수도사들을 그린 중세의 그림. 당시 이런 풍경은 오래가지 못했는데, 그 이유는 병자들을 돌보던 사제들과 수도사들도 곧 전염되어 죽어갔기 때문이다.
타루가 결성한 보건대를 보면서, ‘특별한 아름다움’이 느껴지기보다 ‘객관적 만족감’이 느껴진다고 말한다.

보건대의 헌신 또한 ‘전염병이 우리 곁에 있으니 맞서 투쟁하기 위해 마땅히 할 일을 묵묵히 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모두가 그런 선택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반드시 할 일이고 했을 일이라고 말한다.

혈청을 배양하기 위해 쉬지 않고 연구하는 늙은 의사 카스텔을 보는 시선도 같다. 단지 기존 혈청이 소용이 없기 때문에 대안을 찾는 과정일 뿐이라고 말한다.

카뮈의 입장에서는 리유도 타루의 보건대도, 혈청을 만든 카스텔도 그 누구도 영웅이 아니다. 그러나 그 모두가 연대하고 결속해 함께할 때 ‘우리’가 영웅이 된다.

또한 파리의 기자 랑베스가 이방인에서 ‘우리’가 되어 합류하는 모습, ‘여러분’으로 설교하며 정죄하던 신부가 ‘우리’가 되어 함께 고통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우리’를 완성해 간다.

대한민국, 어느 곳보다 ‘우리’ 강한 민족
IMF, 기름유출… 이번 코로나19도 ‘우리’
이러한 때일수록 한 마음으로 함께 대응

대한민국은 그 어느 민족보다 ‘우리’가 강한 민족이다. 가족도 ‘내 형’이 아니라 ‘우리 형’이고, ‘내 누나’가 아니라 ‘우리 누나’다. 심지어 남편을 지칭할 때도 ‘내 남편’이 아니라 ‘우리 남편’이라고 말한다.

그 ‘우리’ 정신은 1997년 IMF를 극복하게 만들었고, 서해 기름 유출 사건을 세계가 깜짝 놀랄 만한 속도로 회복시켰다.

이번 코로나 19 바이러스 때 역시 ‘We are Asan!’ 우리가 아산이다. 라는 말로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그 감동은 우리 주변에 있다.

확진 판정을 받고 오로지 집에만 있던 환자. 검사 대기 기간 중 철저히 마스크와 장갑 착용으로 단 한명의 2차 감염자를 만들지 않은 확진자. 모두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함께 극복해 나가는 ‘우리’ 영웅이다.

물론 생각지도 못한 곳 ‘신천지’에서 시작된 슈퍼 전염은 모두를 당혹스럽게 한다. 그러나 이러한 때일수록 ‘우리’가 한 마음으로 함께 대응해야 한다.

힘내요 우리
▲밀알복지재단이 코로나19 감염취약계층을 대상으로 긴급구호사업을 실시한다. ⓒ밀알복지재단 제공
온라인 예배, 지역사회 소중히 여기는 마음
여전히 예배, 철저한 관리속 사모하는 마음
기독교, 예수님 머리로 하는 한 몸 공동체
서로 판단하고 비난한다면 ‘딴 몸’ 공동체

많은 교회들이 자발적으로 온라인 예배로 대처했다. 예배를 소홀히 여기는 마음이 아니다. 지역사회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이다. ‘우리’라는 연대에 동참해 2차, 3차 감염을 막기 위한 배려다.

또 어떤 교회는 여전히 예배를 드린다. 아집이라 말할 수 없다. 철저한 관리 속에서 이루어지는 사모함이다. 나라를 위해 한 마음으로 기도하고자 하는 간절함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한 마음이다.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한 몸 공동체다. 그 어떤 연대보다 강하며, 그 어떤 공동체 보다 강한 결속력과 힘을 가진다. 대응하는 모습과 형태는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서로를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이야 말로 ‘한 마음’이 아니라 ‘딴 마음’이고 ‘한 몸’이 아니라 ‘딴 몸’이다.

이유도 영문도 모른 채 왔다가 사라진 페스트
결국 사람 이야기, 연대한 ‘우리’가 견뎌낸다
코로나19, 크고 작은 아픔 있지만 지나갈 것
그러나 ‘지금 우리’의 민낯이 드러나게 될 것

또 하나 카뮈의 <페스트>에서 주목 할 것이 있다. 소설 속에서 ‘페스트’는 사람이 물리친 것이 아니었다. 함께 모인 ‘우리’가 페스트를 물리치지 않는다. 리유의 노력이 페스트를 물리치는 것도 아니다. 카르텔의 혈청이 기가 막힌 대안이 되지도 않는다. 보건대의 노력이 극적인 효과를 가져 오지도 않는다.

페스트는 그냥 이유도 모른 채 왔다가 영문도 모른 채 사라진다. 페스트가 중심 주제이지만, 페스트는 아무런 영향 받지 않고 왔다가 간다.

결국 사람 이야기다. 페스트가 왔다가 가는 동안 사람들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가? 많은 사람들이 좌절했고, 많은 사람들이 두려워했지만, 결국 함께 연대한 ‘우리’가 페스트를 견딘 모습을 보여준다.

2009년 신종플루. 10만 7천명이 넘는 확진 감염자와 260명의 사망자가 나왔다. 치사율 0.24%. 교통사고 사망률 보다 낮은 사망률이었다. 결국 백신은 개발되었고, 그 사태는 지나갔다.

코로나19 바이러스. 지금은 많이 당황스럽고 힘들다. 크고 작은 아픔과 상처는 남겨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지나가게 될 것은 분명하다. 단지, 이 시기에 우리의 민낯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신천지로 인한 슈퍼 전파 이전만 해도, ‘우리’라는 이름으로 아름답게 극복하고 있었다. 그러나 갑작스럽게 늘어나는 감염으로 인해 잠시 혼란을 겪고 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유들이 넘치며 서로를 공격한다. ‘여러분’과 ‘우리’가 구분되고, ‘우리 편’과 ‘너희 편’이 갈라서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은 폐렴보다 무서운 분열에 감염되어 있다. 이 때 교회는 그 무엇보다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결국 우리는 이 사태를 통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보는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을 보게 될 것이다. 또한 한국교회의 민낯을 보게 될 것이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

화평케 하는 것. 이것이 이 시대에 하나님 자녀들인 주의 백성들의 사명이다. 나라의 하나 됨을 위해 기도할 때다.

박명수 목사
사랑의침례교회
저서 《하나님 대답을 듣고 싶어요》

출처: 아트설교연구원(대표 김도인 목사)
https://cafe.naver.com/judam11